카테고리 없음

<경제발전의 이론>, 조지프 슘페터

stingraykite 2026. 2. 9. 09:32

 
왜 우리는 이론을 공부하는가. 복잡한 것은 아무리 단순화하더라도 복잡한 그대로 하나하나 명제를 쌓아올려가며 설명할 수 밨에 없다. 왜 경제발전의 이론인가, 경제는 장주기의 요동이고, 개별 상에서 수행되는 균형의 연속이다. 하나의 균형상태에서 다른 균형상태로 이동하는, 정태적 분석이 아닌 동태적 분석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의 말을 인용한다.
"당신의 주위를 바라보십시오. 그러면 강신은 사물들의 실태를 알게 될 것입니다."
1부. 일정한 조건에 제약받는 경제의 순환.
경제주체로부터 정의를 시작한다. 그를 농부로 잡는 것에서 향취가 느껴진다. 생산활동은 어떤 정보를 기반으로 이루어지나. 누적된 경험을 통해 생산비를 추정하고 노동과 토지투입을 정의하며 생산물에 대한 교환이 이루어진다. 그렇다면 이는 영원히 정적인 상태일까. 여건은 변화하고, 주체들은 변화한 여건에 적응한다. 관행을 유지하려는 관성은 피치못할 경우에만 환경의 압박에 '양보'한다.
"따라서 경제의 모습은 매 순간 변동하는 것이 아니라, 매 순간 이전의 상태와 연결되고 있는 것이다."
경제의 모든 요소는 노동용역과 토지용역 두가지 성분으로 분해된다. 노동투입이란 무엇인가. 생산적-비생산적 노동이나 숙련-비숙련 등등의 구분은 결과적으로 이 분해에서 무의미하다. 지도하는 노동과 지도받는 노동과의 구별, 독립 자영업자의 노동과 임금 노동자의 노동의 구별만이 중요한 구분을 말하기 위한 출발점으로 의미를 가진다. 말하자면 생산으로부터 교환까지 넓은 범위를 포괄하며 기획하기 위한 노동, 기획노동이 경제적 주체의 순환에서 특이점이 되는 것이다.
이러한 노동공급은 어느 점에서 균형을 갖는가. 수요에 대한 욕구가 노동의 동기가 된다. 그러나 이 욕구는 어느 지점에서 수확체감하고, 그 지점을 넘어서는 분의 노동은 비효용으로 나타난다. 효용과 비효용의 교차점에서 총 노동공급의 선이 그어진다.
완전한 균형체제에서 생산은 어떤 가치를 창조하는가. 생산투입이 온전히 노동과 토지로 분해될 수 있다면, 생산은 아무런 가치도 창조하지 않는다. 완전정보조건 하의 교환이라면 교환 그 자체는 +a를 만드는 활동이 아닌 것이다. 완전균형에서 차액이 영이 된다는 것은 어떠한 결과도 낳는 일 없이 생산이 이루어지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그 결과가 완전히 본원적 생산요소에 흡수된다는 의미이다.
요는 완전균형이란 존재하지 않고, 위험과 손실은 우연하게도 발생한다는 점이다. 우연적으로 생산비용이 줄어들거나, 소비의 시점에서 균형의 틀어짐이 발생한다. 손실과 이윤의 원천, 차액이 발생한다. 더하여, 시간이 있다. 정태적 상황에서 생산수단은 본질적으로 소비재의 총합으로 노동과 지대에 의해 분해되는 단위이지만, 소비와 생산의 시차에 의해 별도의 구분되는 특성을 갖는다. 현재재와 장래재의 차액, 미래 소비재로써의 잠재된 가치가 생산수단을 소비재와 구분한다.
"즉, 각 경제 기간에서는 선행하는 경제기간에서 생산된 생산물만이- 소비재 혹은 생산재로서 - 소비된다고 하는 것과 다음 경제 기간에-소비재 혹은 생산재로서-소비될 생산물만이 생산된다는 것이다. 경제기간을 이처럼 '상호 접합하는 것'은 쉽게 확인할 수 있는 것처럼 어떤 사물의 본질을 바꾸는 것은 아니다."
"전체적인 교환경제에 대해서도 비교환경제와 마찬가지로 동일한 연속성이 성립하고또 동일한 가정 아래서는 항상성이 성립한다. 단순히 과정의 연속성과 항상성뿐만이 아니라 가치의 연속성과 항상성도 존재한다."
경제주체로부터 단위용역으로의 분해, 소비재와 생산수단, 교환 일반이나 정태적인 완전균형, 시간에 의한 흐름과 차액의 발생까지는 이해하겠는데 화폐 부분은 좀 어렵고, 단위 경제주체들의 집합과 계서에 의한 가치체계의 구분까지는 어렴풋이 들어온다. 단위 개념들을 정의하고, 개념들간의 관계를 설명하고, 관계를 축적하며 모델을 구축하는 작업들은 왜 필요한가.
현상을 설명하는 것은 아마추어적이고, 이를 엮어낼 수 있는 논리의 성을 쌓는 것이 이론경제학이기 때문이다. 중농학파로부터 애덤 스미스, 리카도로 이어지는 이론적 축적이 지향하는 바와 그 속에서 정태적 경제라는 용어에 대한 개인적 정의를 심어주며 1부는 마무리된다. 슘 교수님 진도가 너무 빠른데요... 주해서 별로 안좋아하는데 이건 주해서를 껴야겠다...
제2장 경제발전의 기본현상.
I.
경제 발전은 경제사의 대상이며, 경제적 변화는 그에 선행하는 경제적 조건만의 함수가 아니다. 경제적 변화는 사회적 총체에 의해 도출되는 결과값이지만, 동시에 하나의 상대적 자율성을 갖는 대상으로, 이에 따라 경제사가 구분되는 대상으로 도출된다.
그렇다면 경제발전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앞서 말한 정태적 균형의 연속 속에서 발생하는 교란이라는 동태적 요소의 작용이다. 이러한 교란은 그 자체로 본질적인 경제적 현상이며, '자기 스스로에게 위임된' 경제에서 일어난 변화이고, 정태적 균형의 미분불가능한 도약이다. 인구의 상승에 의한 자연스러운 성장, 경제 구조의 균형속에서의 점진적인 성장이 아니라, 혁명적인 변화, 구조 자체를 새로 쓰는 단절이야말로 경제 발전의 본질이다.
II.
"이와 같은 순환 제도의 자발적 및 비연속적 변화와 균형중심점의 변동은 산업 생활과 상업 생활의 영역에서 나타난 다. 그것은 최종생산물 소비자의 소비생활 영역에서는 나타나지 않는다."
이와 같은 생산 요소의 새로운 결합, 비가역적 변화는 기존 생산구조 내의 행위자에 의해 이루어질 수도 있지만, 생산구조 바깥의 사람들로부터 유발되기도 한다. 이는 병행될 수 있지만, 대체로 구질서의 성원들은 체제 속의 변혁을 수행할 맹아가 될 힘을 갖지 못한다. 전자를 1종 비연속성(궤도의 변경)이라고 한다면 후자는 2종 비연속성(발전 담당자의 변경)으로 구분할 수 있다.
이들 2종 비연속성은 기존 체제 내의 유동성흐름에 접촉할 수 없다. 생산수단을 소유하고 차익을 낼 수 있는 경제적 주체사 아닌 행위자는 미래가치를 담보로 신용을 차입해야만 한다. 이들에게 신용을 공여하는 것이 '자본가'라는 경제주체들의 기능이다. 이와 같은 금융의 원천은 어디에서 발생하는가. 저축이라든지, 축적된 유동성은 그 근원이 될 수 없다. 누군가의 수중에 있던 구매력의 이전이 아니라 무(無)로부터 창조된다. 밑도끝도없는 사업은 밑도끝도없는 신용으로부터 탄생하는 것이다.
III.
새로운 결합의 수행, 사회 형태의 여하에 따른 강권적 명령 또는 신용, 그리고 그 핵심이 되는 경제주체인 기업가가 맞물려 균형으로의 순환이라는 궤도로부터 이탈한다. 새로운 결합을 수행하여 그것을 기업체등에 구체화하는 것을 기업(Unternehmung)이라 부르고 새로운 결합을 능동적으로 수행하는 것이 자신의 기능인 경제주체를 기업가(Unternehmer)라 부른다.
기업가의 기능은 교차되어 나타난다. 기사로부터 자본가, 판매와 구매의 최고 책임자, 노동자와 직원들의 감독자, 일상 업무의 수행자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의 본질적인 기능은 '새로운 결합을 수행하는' 것이며, 또한 그럴 때에만 기업가라고 불릴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기업가는 창조적 활동이 일어나느 일시적인 상태를 의미하며, 이는 결코 전기간에 걸쳐 지속되는 종류의 것은 아닌 것이다. 순환과 궤도변화는 때로는 점근하고 때로는 멀어진다. 기업가의 상 역시 일상 업무의 최정 결정권자로부터 생산의 재조직자 사이를 요동한다.
경제주체는 대개 관행적이고, 관행으로부터의 궤도 이탈은 외부적 산란에 의해 '양보'로 이루어진다. 이 과정, 생산의 재조직은 미지에의 탐구이고, 불확정성의 이론화이다. 따라서 그는 이론가이다. 동시에 생산을 재조직하는 것은 권위와 카리스마에 의한 지도가 필요하다. 따라서 기업가는 지도자이기도 하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서비스 노동의 가치는 명확해진다. 불확정성에 대한 보험인 것이다. 관행의 관성이 클수록, 새로운 재조직의 보상도 올라간다. 서비스업의 팽창과 이윤율의 증대 역시 같은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다.
"우리의 입장에서 본 과학적인 사태는 세 쌍의 서로 대비 되는 짝에 의헤 특징지을 수 있게 된다. 121 첫 번째는 두 가지의 실체적 과정, 즉 순환 혹은 균형 경향성과 순환 궤도 의 변경 혹은 경제체제 내부료부터 일어나는 경제 전의 자발적 변화의 대비다. 두 번째는 가지의 이론적 도구, 즉 정태(靜態)와 동태(動態)의 대비다.78 세 번째는 현실에따라서 경제주체의 두 유형으로 간주될 수 있는 행동의 두 가지 유형, 즉 단순한 관리자와 기업가의 대비다."
일반적으로 재화의 획득에는 수확체감의 법칙이 작용한다. 이는 여느 기업가나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어떤 경우 눈깜짝할 사이에 거대한 재산을 지배하면서도 끊임없이 나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그것은 탐욕의 발로인가? 창조를 향한 예술적 정동일까? '수요'는 '공급'으로부터 독립된 요인이 아니다. 생산의 재조직이 수요의 증가로, 사치품으로부터 생필품으로의 전환으로도 나타난다. 이에 대한 개인적 동기는 어떻게 나타나는가?
"즉, 먼저 사적 제국을 건설하려는, 반드시 필연적이지는 않지만 대다수의 경우에 자기 왕조를 건설하려는 꿈과 의지가 그것이다."
"다음으로 승리지가 되고자 하는 의지가 있다. 한편으로 투쟁 의지가 있고 다른 한편으로 성공 그 자체를 위한 성공 획득 의지가 있다. 경제생활은 어느 쪽에 대해서도 본래 무차별적 기반인 것이다."
"마지막으로 창조의 기쁨은 앞서 서술한 동기 집단중 세 번째 것이며, 이것은 확실히 다른 경우에도 나타나지만 이 경우에만 행동의 원리를 결정한다. 이것은 한편으로는 행 위자체에 대한 기쁨이다."
사적 지배의 욕구, 경쟁에서의 호승심, 창조의 기쁨이 각각의 비율을 갖고 교차되어 나타나며 연속적인 생산의 재조직으로 이어지는 경우를 우리는 종종 목격한다. 무한한 부에 대한 추구는 단지 부 만을 목적으로 경주할 때 일어날 수 있는 종류의 것은 아니다. 생산 그 자체를 재조직함으로써 변화와 그 너머에 대한 비전을 보여줄 수 없다면, 생산의 각 부를 자기의 영지에 넣고 상관하며 합을 이룰 수도 없다. 요는 혼돈 앞에서 그 너머를 관철할 비전과, 이를 통한 사회적 지도이다. 여기서 당의 영도가 겹쳐보이는 게 기분탓인가...
각주에 나오는 1판에 대한 비판과 그에 대한 시시콜콜하고 구구절절한 반박들이 종종 한페이지 두페이지 넘게 나오는데 각주로 키배뜨시는 모습이 참 훌륭하시다 트위터 있었으면 하셨을 듯.
요는 균형상태의 교란이야말로 경제 발전의 원천이요, 교란에 대해 생산의 재조직을 이루는 것이야말로 생산의 요체이며 차익의 핵심이다. 그 일을 수행하는 경제주체는 기업가로, 그는 이론가이며 지도자이고 그가 발휘하는 창조적 역량이, 관행으로부터 불확정성으로 걸어들어가는 원초적 과정이 변화의 원동력인 것이다. 이는 비단 경영주에게만 해당하는 일은 아니다. 과정의 단계 단계에 있는 직원, 서비스 제공자, 노동자들까지도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고 관행화하는 과정에서 미시로부터 거시까지, 가치가 생산된다.
3장. 신용과 자본
1절. 신용의 본질과 역할
경제발전이란 본질적으로 존재하는 노동용역과 토지용역을 다른 것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기업가는 구매력을 필요로 하지만, 그의 현재적 소유로 미래적 사업을 구축하기 위해 필요한 자금을 조달할 수는 없다. 그것은 '차입'되어야만 한다. 바로 그렇기에 기업가는 발전 과정의 내적 필연성으로 채무자가 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가계신용, 기업경영신용은 그 본질에 있어서 신용의 본래적 의미대로 소용되는 것이 아니다.
"원리적으로는 기업가만이 신용을 필요로 하고 산업발전을 위해서만 신용은 본질적인 역할을 한다."
"즉, 신용의 공여는기업가가 필요로 하는 생산수단에 대한 수요를 일으키면서 이것을 과거 용도에서 빼내어 경제를 강제적으로 새로운 궤도에 오르게할 수 있다는 데 있다. 이리하여 신용은 재화흡수의 동력이 된다."
"이것에 반대해서 새로운 결합을 수행합 즈음 에는 확실히 극복해야 될 그와 같은 필연적인 괴리가 존재한다. 이 괴리를 극복하는 것이 신용공여자의 기능이며 그는 특별히 창조된 구매력을 기업가의 자유처분에 말김으로 써 이 기능을 충족하는 것이다. 이 경우 생산수단의 공급자는 '기다릴' 필요가 없으며 기업가도 그들에게 재화나 현존하는 '화폐'를 선불할 필요도 없다."
"편만 아니라 이것에 의해 기업가는 거래은행에 대한 자신의 부채 -신용원금과 이자-를 변제 하고 통상적으로 순환의 구매력기금중에서 회수된 차변잔고(=기업가 이윤)를 획득한다. 이 잔고와 은행의 지불 이자 만이 필연적으로 유통과정에 남아 있고 신용금액은 소멸한다."
기업활동은 생산을 재구조화하는 작업이다. 생산은 왜 재구조화되는가. 미래와 현재의 괴리, 정태로부터 새로운 정태로의 이동, 동태에서 그 변화가 발생한다. 요는 시간이고, 시간의 흐름에서 차익이 발생한다. 신용이란 무엇인가. 미래지향적인 기업활동을 현존케하는 과정이다. 미래를 담보로 미래의 수요를 일으키기 위한 구매력을 경제주체가 자립적으로 축적할 수는 없다. 미래의 가격을 신용이 대신 지불해주고, 이를 구체화시킴으로써 차익이 발생하며, 이는 차주와 채무자에게 분배된다. 인플레이션과 디플레이션도 이 과정에서 신용의 흐름에 연관된다.
2절. 자본
이론이라는 게 핵심 개념을 잡으면 깔대기처럼 개념으로 빨려들어간다. 경제 발전의 이론에서 핵심은 무엇인가. 정상 순환으로부터의 궤도이탈이다. 궤도이탈을 누가 하는가, 기업가가 한다. 궤도이탈은 미래가치의 현재적 차용이고, 여기에서 신용이 미래가치를 현재로 당겨온다. 그 수단은 무엇이냐, 구매력의 총합이자 무로부터 창출되는 신용의 매개물, 자본이다.
"자본이란 기업가가 필요로 하는 구체적 재화를 그의 지배 아래 둘 수 있도록 하는 지렛대이며, 또한 새로운 목적을 위해 재화를 처분하기 위한 수단 혹은 생산에 새로운 방항을 지시하는 수단인 것이다."
이러한 자본은 생산수단으로 전환된다. 이는 불가역적인 변화다. 생산수단은 다른 생산수단으로 전화할 수 없다는 점에서, 자본은 일시적 상태로 존재하는 것이다. 기업가처럼, 자본 역시 항구적 상태가 아니다. 오직 궤도 이탈에 소용되는 순간에만 자본은 본래적 목적에 부합하게 드러난다.
"자본은 재화조달의 수단이다. 그것은 기업기와 재화 세계와의 사이에 서서 유풍경제에 있어 생산에 필요한 제3의 요인이다. 그것은 양자사이의 가교를 형성한다. 그것은 생산에 직접 참가하지 않고, 그것 자체는 '가공'되지 않는다. 그것은. 오히려 기술적 생산을 개시하기 이전에 해결되어야 할 과제를 수행하는 것이다."
"일반적 구매력의 모든 형태는 자본이라는 말이 구체화된 측면에서 나타나지 않고 있다. 그들은 단순히 교환수단이며 관행의 거래를 수행하는 기술적 수단에 불과한 것들이다. 그들의 역할은 여기서 그것으로 꼽난다. 그것은 이와 같은 기술적 역할 이상의 것을 다하지 않기 때문에 아주 본질적인 것을 간과함이 없이 그러한 것들을 무시합 수 있다. 이와 반대로 새로운 결합의 수행에 있어서는 화폐 및 그 대체물은 본질적인 요인이 된다. 바로 이 요인을 표현하기 위해 우리는 이것을 자본이라 명하는 것이다. 우리의 견해에 따르면 자본은 발전의 한 개념이고 순환적 흐름에서는 이것에 상응 하는 것이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이 개념은 경계과정 중 발전에 의해서만 시사되는 측면을 구체화한 것이다."
정태와 동태, 순환과 궤도이탈, 기업가와 신용, 그리고 그 매개로써의 자본까지. 모든 정의는 엄밀한 순간에만 기능을 갖는다. 구매력의 집합에서 발전의 매개로, 발전의 불연속점들이 모여 다시 거대한 순환을 구성한다.
"그래서 우리는 자본이란 언제라도 기업가의 자유에 맡겨지는 화폐 및 기타의 지불수단의 금액이라 정의할 수 있다."
3절. 금융시장.
생산의 요소들, 노동과 토지는 각각의 시장에서 거래되며 소비재 역시 자신의 교환세계를 갖는다. 그렇다면 생산수단으로 전환되는 자본은 어떤 시장을 갖는가. 금융시장이다.
"금융시장은 항상 이른바 자본주의 경제의 중앙본부이며 거기서부터 각 부문에 명령 이 내려지는 것이며 여기에서 논의되고 결정되는 것은 항상 국본적으로는 다음 발전 계획을 확정하는 것이다."
4장. 기업가 이윤 혹은 잉여가치
기업가 이윤이란 무엇인가, 비용을 초과하는 잉여요, 수입과 지출의 차액이다. 이는 기업활동, 즉 생산의 새로운 결합으로부터 온다. 역직기의 도입으로 이를 설명한다. 역직기의 도입은 기술발전의 결과로, 생산성을 향상시켜 동일 노동투입에 대해 더 많은 생산을, 초과이윤을 가능하게 한다.
"그렇다면 그들은 무엇을 한 것일까? 무언가의 재화를 축적한 것도 아니고 본원적 생산수단을 창조한 것도 아니다. 기존의 생산 수단의 용도를 변경하고 이것을 더욱 적절하고 유리하게 이용한 것이다. 그들은 '새로운 결합을 수행'했던 것이다."
이와같은 변화는 확산되고, 이는 개별 기업으로부터 업종 전체로, 기업가로부터 노동자로까지 추가이윤을 분배한다. 혁신은 또다시 새로운 균형상태로 접어들고, 혁신으로 인한 이윤 증가분은 확산되어 평형을 이룬다. 이 관점에서 전근대와 근대를 나누어본다면, 전근대의 혁신은 그 빈도와 확산에서 근대의 그것에 비해 간헐적으로 이루어진다.
상업자본주의의 팽창 역시 생산의 새로운 결합을 통한 세계의 확장이라는 점에서 바라보면, 시장의 팽창은 생산의 새로운 경합이 수행될 수 있는 모수를 높이는 역할을 한다. 모수가 높아지며 혁신이 시도될 확률이 늘어나고, 창조적 파괴가 축적되며 혁신의 연쇄를 낳는다. 이는 사회적으로 축적되며 전사회적 역량이 점진적으로 발전하고, 또 새로운 성장의 촉매가 된다. 혁신이 군집을 이루어 일어나는 것이다.
"기업가는 결코 위험부담자가 아니다. 이것은 우리의 몇가지 예로 볼 때, 아주 분명하다. 만약 일이 실패하면 손실을 입는 것은 신용공여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업가의 이윤은 오롯이 그가 수행한 생산의 새로운 결합, 즉 혁신의 결과이다.
"따라서 모든 노동 용역 및 토지 용역의 가치는 이에 따라 상승합 것이다. 그러나 이 상승은 이미 새로운 결합의 수행에 즈음해 생긴 것과는 구별되어야 한다. 단순히 정도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종류에 따라서 구별되어야 한다. 후자는 용역의 가치 규모의 증대틀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그 한계효용의 증대를 의미하는 것에 불과하다."
"생활이 합리화, 평준화, 민주화되면 될수록 또 특정의 사람들과- 특히 가족 관계에서-특정한 사물- 한편으로는 특정한 공장, 다른 한편에서는 특정한 조상전래의 가옥-에 대한 각 개인의 관계가 점점 사라져 가면 갈수록 제2장에서 하나하나 열거한 동기의 다수는 그 의미를 상실하고 또 기업가의 이윤에 대한 집착은 힘을 잃어버리게 된다."
대처를 비롯한 신자유주의자들이 가족간의, 개인간의 결합을 강조한 것도 바로 이런 이유이다. 혁신의 동력은 어디에서 오느냐, 역설적으로 그 개인이 지고있는 책임, 가장 기초적인 사회적 관계로부터 출발한다. 자조를 강조하는 것이 오늘날 새로이 강조되는 것도 역설적으로 사회의 해체 속에서 여전히 가장 강고한 사회적 단위는 가족이기 때문이다.
요는, 생산의 새로운 결합으로 발생한 소비재의 가치는 전래의 틀에서 결정될 수 없고, 따라서 분배의 과정에서 잉여를 발생시킨다. 이는 혁신을 수행한 사람, 증 기업가의 지도자 역할에 대한 임금이기도 하면서, 국민경제의 한계를 넓혀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혁신은 균형에 접어들며 보편이 되고, 그 속에서 새로운 혁신이 탄생한다. 그것이 정태에서 동태로, 다시 정태로 접어드는 순환의 과정이기도 하다.
5장. 자본이자.
정태적 모델과 균형상태에서 이윤의 부재, 균형에서 다음 균형으로의 교란과 발전의 원천으로써의 생산의 새로운 결합, 이에 대한 금융시장에서 신용과 자본의 매개, 시업가 이윤의 원천에 대해 혁신을 기준으로 정리하고 기존 학설들에서 주장한 바에 대해 하나하나 룰아웃시키며 논리의 핵심을 견지한다. 자본이자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자본이자를 소비적 이자와 생산적 이자로 구분하고, 고래로부터 존재해왔던 소비적 이자와 생산적 이자가 무엇이 다른지를 규명한다. 생산적 이자란 선순환으로부터, 생산의 새로운 결합으로부터 비롯되는 이자이다. 하지만 요는 이것이다. 생산의 새로운 결합이 생성하는 순잉여는 시간에 따라 수확체감한다. 그런데 어떻게 이자는 일정하게 발생하는가.
순수 잉여가치, 또는 가치 프리미엄이란 생산물 가치가 그 안에 포함된 비용재의 수량가치를 초월한 초과분이다. 대체 가치 프리미엄이란 무엇이고, 어떻게 정의될 수 있는가.
"첫째, 이자는 근본직으로 이제 막 다루었던 가처프리미엄으로부터 흘러나온다. 그것은 그 밖의 어떤 것으로부터도 흘러나올 수 없는 데, 왜냐하면 정상직인 경제생활의 과정에서는 다른 어떤 가치잉여도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명제는 전형적인 이자의 원천은 독점적 수입에 있지 않다고 가정한다. 그러나 내가 이미 말했듯이, 이것은 아마도 충분히 분명할 것이다. 그러므로 발전이 없다면, 언급된 조건에서는 어떤 이자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이자는 발전이 경제 가치들의 바다에서 발생시키는 거대한 파도들의 한 부분이다."
"두 번째로, 발전이 없는 경제에서는 생산물과 생산수단들 간의 결정적인 가치차이들 을 확립하기 위한 다양한 시도들이 지탱될 수 없다는 인식에 근거하고 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제국의 확장한계, 경제의 악순환과 선순환이라는 과정으로도 검증가능하다. 저지대 독립전쟁에서 에스파냐는 전형적인 소비적 경제구조를, 네덜란드는 생산적 경제구조를 보여주며 군산복합체들간의 충돌은 최종적으로 저지대의 승리로 돌아간다. 이는 응집성의 차이이면서, 또 생산적 이자활동의 결과이기도 했다. 합스부르크 제국의 정복활동이 대부금에 대해 생산의 새로운 결합을 수행할 수 없는 종류의 소비적 이자 지불이었다면, 저지대의 대 합스부르크 전쟁은 시장의 확장을 통한 생산의 새로운 결합으로 연결되는 생산적 이자 창출이었던 것이다.
"두 번째, 우리가 살펴본 것처럼, 발전에 의한 가치프리미엄은 두 가지 그룹, 하나는 기업가 이윤, 하나는 발전의 반작용을 보여 주는 가치프리미엄으로 나뉜다."
"이 세가지 명제들, 즉 하나의 거대한 사회적 현상으로서 의 이자는 발전의 한 산물이라는 것, 이지는 이윤으로부터 흘러나온다는 것, 그리고 이자는 구체적인 재화들에 부착되지 않는다는 것은 우리의 이자론의 기반이다."
"즉, 순간적이며 항상 변동하고 있는 기업가 이윤, 말하자면 확실히 항상 존재하고 있지만 개별적으로는 항상 일시적이고 또한 확실히 지속적으로 나타나지만 개별적으로는 지속적으 로 체감해 가는 기업가 이윤에서 어떻게 끊임없이 동일한 자본에 대해서 무한하게 지속할 이자소득이 나타나는 것일까?"
"이자는 생산재에 대한 지배수단으로서 간주되는 구매력의 가격 요소다."
정독하는 것 만으로는 내용이 영 안들어온다. 각잡고 필기해가면서 읽든지 해야지... 논증의 요를 파악하는 것도 어려운데 적층해가며 흐름을 면밀히 보는 게 어려움. 읽어도 영 아리송하다. 구조적으로 명제를 쌓아가면서 성실하게 필기를 하든가 반복을 해야되는데... 일단 일회독 먼저 하고... 특히 이 장이 구조적으로 긴 흐름이라 한번에 흡수가 어려운 듯.
6장. 경기의 순환.
"새로운 기업의 대량출현 (이 단계에서는 이미 설명되고 있다)이 구기업의 생존조건에 미치는 영향과 국민경제의 관행화된 상태에 미치는 영향이 그것이다. 그경우(제2장에서) 설명된 사실, 즉 통상적으로 새로운 것은 오래된 것에서 싹트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오래된 것과 함께 등장해서 오래된 것을 도태시키고 모든 관계를 변화시켜서그결과 하나의 특수한 질서화의 과정'이 필요하게 된다고 하는 사실을 고려해야 한다."
새로운 생산의 결합은 독립적으로, 연속적으로 나타나지 않고 집합적으로, 불연속적으로 나타난다. 단계별로 팽창하며 신용을 흡수하고 고용을 팽창시키며 소비를 증가시킨다. 기존의 기업으로부터 나타나기보다는 새로운 조직에 의해 기존의 생산과 병존하며 선구자들의 지도적 활동에 의해 시작되고 2차적으로 3차적으로 한계에 이를 때까지 확산된다.
"그러나 다른 경과는 산업발전을 그 궤도에서 일탈시킨다고 하는 성질을 갖고 있다. 그래서 이러한 사정은 그것들의 경과에 큰 흥미를 준다. 이 사정이 의미하고 있는 것은 그것들의 경과가 단순한 우발사건으로서 생기는 것이 아니며, 경제생활의 선행상태의 결과임과 동시에 그 후속상태의 조건으로서 이해되어야 하는 발전의 국면으로서 나타난다고 하는 것이다."
즉 공황은 호황으로부터 내재되는 필연적 결과이다. 생산의 새로운 결합이 생산구조 전체를 교란하며 차액을 발생시키고, 이는 한계까지 확장하며 기존 생산구조를 밀어내고, 이들 기존 구조는 지대 밎 준지대를 통해 탈락을 순연시키며 변화한 구조에 적응하지만 호황은 생산단가의 하락으로, 디플레이션으로 나타난다. 경제의 잉여들이 시장압력으로 퇴출되고, 구조개혁의 결과로 조정이 나타난다.
"실제로 현실이 우리에게 보여 주는 것은, 모든 정상적인 경기호황은 하나 혹은 두세 개의 산업부문 (철도건설, 전기공업, 화학공업 등)에서 시작되며, 그것은 무엇보다도 이러한 산업부문에서의 혁신을 통해서 이루어진다는 특징을 보여 주고 있다. 그러나 '선구자'는 '추종자'를 위해 장애를 제거하지만, 그것은 단순히 '선구자'가 출현한 생산부문에서뿐만이 아니라, 이러한 장애의 성질 때문에, 사실상 기타의 생산부문에서도 대부분의 장애가 제거된다."
"'호황' 현상의 유일한 원인인 기업가의 집단적 출현은 연속적이고 시간적으로 균등하게 분포된 기업가 출현이 국민경제에 미치는 영향과는 질적으로 다른 영향을 갖는다. 즉, 그러한 출현은 균형상태의 연속적이면서, 그때그때 눈에 띄지 않는 교란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거대한 단속적인 교란, 즉 차원을 달리하는 교란을 의미한다."
반대로 이야기하면 연속적이면 호황이 아니다. 단속적인 집단적 출현, 이로 인한 거대한 교란이 호황의 특징이고, 이는 그만한 반동으로 새로운 균형을 낳는 반대의 단속적 조정, 공황으로 이어진다. 새로운 기업가 집단의 출현은 기업가의 인구압을 높이며 기존 구조의 도태로 이어지고, 팽창의 한계 도달은 생산비의 하락으로, 디플레이션으로, 신용의 축소로 나타나며 2차, 3차로 확산된 신규 기업가 내에서, 더하여 기존 기업가중 비용 한계에 도달한 이들에 대한 조정을 통해 새로운 단속적 붕괴를 유발한다.
"세 번째로 새로운 기업이 계획대로 나타나는 성과는 신용 디플레이션을 초래한다. 왜냐하면, 기업가는 이제 부채를 변제할 수 있는 입장에- 그리고 동기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즉, 다른 신용수요자가 대신에 나타난다고 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재화의 대응물이 존재하고 이후 순환적 으로 끊임없이 반복 생산이 이루어질 수 있는 경우에는, 부채의 변제는 틀림없이 새롭게 창조된 구매력의 소멸을 초래 하는 것이다."
신용의 축소, 가격의 하락은 호황으로 인한 생산력 발달의 귀결이다. 이 부분에서 대차대조표 불황과 연결되는 부분들도 읽힌다. 국민경제의 틀 내에서 서술되는 것과 세계경제라는 틀이 보여주는 통합성과 국지성의 차이는 공황의 성질 역시 다양하게 분화시킨다. 공황의 양의 국면과 음의 국면은 팽창과 수축이라는 이론적 특성과 어떻게 조화되는가.
"(디플레이션은) 호황이 충분히 멀리 다 지나갔을 때는 객관적 상황논리에 의해서 자동적으로 항상 나타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이 이론은 발전의 과정에서는 가격 수준이 점차적으로 '장기적으로' 하락헤야 한다는 결론을 유도하는 것이지만, 이론에 대한 곧 주목해야 합 가치가 있는 하나의 실종은 실제로 19세기의 물가의 역사에 의해 주어지고 있다."
디플레이션은 공황의 특징이기도 했지만 근자에 들어서는 간과되는 측면이기도 하다. 지속되는 디플레이션은 드물게 관찰된다. 20세기 후반에 들어 디플레이션이 본격적으로 나타나지 않았던 이유는 무엇일까.
"호황은 그 자체 내적 필연성을 갖고 다수의 기업에 손실을 초래하고 디플레이션을 별도로 하더라도 가격저하를 야기하고, 게다가 신용수축에 의한 디플레이션을 야기한다. 이것들의 현상은 사태의 경과 속에서 모두 2차적으로 강요된다. 게다가 자본투자 및 기업가 활동-그 자극은 이미 다 이해되고 있다- 의 감퇴, 그것과 아울러 생산수단의 산업에 있어서 침체, 슈피토프 지표(철강소비량)와 미국의 철강 트러스트의 주문 잔고처럼 이것과 유사한 바로미터의 저하가 명확해진다. 생산수단에 대한 수요의 저하에 따라, 게다가 만약 위험요소가 없어지 면, 이자율과 노동자의 취업률이 저하된다. 마지막으로 화폐소득총액의 저하-이것은 파산 등에 의해 강요된다하더라도, 근본적으로는 디플레이션으로 회귀한다- 에 따라, 모든 다른 상품에 대한 수요가 저하되고, 그리하여 이 경과 는 국민경제 전체에 영향은 미치고, 불황의 국민 경제적 전모가 나타나는 것이다."
호황의 내적 필연성으로의 불황, 생산성 향상과 과잉 생산의 결과로써의 불황, 신용 팽창과 수축의 과정으로써의 디플레이션, 그리고 이것이 야기하는 종국적인 생산비표의 위축과 국민경제에의 영향이 말끔하게 도식화되어 들어온다. 창조적 파괴는 그 자체로 국민 경제의 성장이면서 쇄신인 것이다.
"불황기가 개별 범주의 경제주체에게 무엇음 주고 무엇을 빼앗아가는가- 여기에서는 문제가 되지 않는 비정상적인 경과의 현상은 제처 놓고- 를 생각해 본다면, 불황기의 참된 성격을 알 수 있다. 불황기는 기업가 및 모든 모방자, 특히 호황의 가격상승 덕택에 우연하게 혹은 투기적인 방법으로 이득을 본 사람들로부터 이윤가능성을 빼앗아간다."
즉 투기꾼이 골로가는 것이 불황이다.
"불황과정의 경제적 본질은 호황의 성과가 균형으로의 접근 메커니즘에 의해 국민경제 전체로 확산되는 것에 있다는 것, 그리고 이 근본적 특징을 숨기는 것은 단지 일시적이고, 단지 부분적으로만 체제에서 필연적인 반작용뿐이라는 것, 그리고 이러한 반작용은 '불황'이라는 단어로 표현된 분위기와 마찬가지로 화페•신용•가격의 영역에는-혹은 그것만으로는- 속하지 않고, 단순히 자동적 디플레이션을 반영하는데 불과한 경기지표 자체만을 나타내고 있는 후퇴를 낳는다는 것이다."
이거 아직 대공황 안맞아봐서 이런 말씀 하시는 듯... 이전의 공황들에게는 적용될 수 있는 내용이었고, 대공황 역시 같은 측면에서 설명할 수 있는 부분들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동시에 이 틀만으로는 바라볼 수 없는 부분들 역시 존재했다.
생산의 새로운 결합, 여기에 작용하는 주체로써의 기업가, 새로운 생산수단의 매개체로써의 신용과 자본, 그리고 이를 통한 기업이윤 또는 잉여가치의 생성, 그것이 구축하는 생산적 이자, 그 팽창에 의한 호황과 줄황으로 전체 경제의 이론적 토대를 구축한다. 해설을 읽고나니 좀 명확히 머리에 들어오긴 하는데 여전히 이걸 보고도 봤다고 말할 수 있나 싶은 부분들이 없지않다. 기본적으로 책 자체가 불친절하게 쓰여진 것도 있지만, 이때는 아직 무슨 말을 하고싶으신지 본인도 잘 모르셨군... 자본주의 사회주의 민주주의가 단순히 대중서는 아니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후학들이 발전시킨 일련의 이론들에 대한 강력한 영감으로써 원전을 정립한다. 자본주의는 지속적인 위기에도 불구하고 왜 존속할 수 있는가를 이론적으로 정립한다는 점에서 기념비적인 업적이다. 그리고 생산의 새로운 결합이라는 관점에서 바라보면 더 잘 보이는 부분들이 분명히 존재한다.
부록을 보니 좀 이해가 된다. 슘페터의 일반이론 사랑이나 마르크스주의 일반에 대한 이해와 그 반전은 그와 오스트리아 마르크스 주의자들과의 교분에서 비롯된다.
"카를 마르크스(Kal Marx)의 자본주의 경제발전 이론으로부터 상당한 영항을 받은 것으로 생각되는 습페터에게는 자본주의가 본질적으로 변화하는 진화 과정이라는 인식이 깊이 자리잡고있다. 이것은 그가 후일 <자본주의, 사회주의, 민주주의> 에서 자본주의는 본질적으로 경제 변화의 형태 혹은 방식이며 정태적이지도 않고 정태적일 수도 였다고 서술하고 있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마르크스적이기도 하지만 헤겔적이지. 정반합이잖어. 정태로부터 교란 그리고 다음 정태로의 이행으로 경제발전의 이론을 서술한다는 점에서 기존 이론경제학에 대한 도전이면서, 마르크스주의의 도식을 기업가를 중심으로 이론경제학의 토대에 따라 재도시한다. 4장을 기업이윤 혹은 잉여가치라고 쓴 것은 그 반증이다. 기업가야말로 역사의 주체요 잉여가치의 생산자라는 뜻으로 읽힌다.
"그러한 이유 때문에 슘페터는 그의 작품에서-특히 <경기순환론>에서 보여준 바와 같은- 체계적 혼란이나 개념의 모호성을 피할 수가 있었다. 그의 문장은 일반적으로 길 고 수많은 제한 구절과 보충어가 붙어 있으며 의미상 난해하 다는 것이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독일어로 된 저작에서는 그의 복잡한 정신 구조에 걸맞은 복잡한 문장구조를 뚜렷이 찾이볼 수 있다."
내가 빡대가리가 아니다! 슘선생이 글을 어렵게 쓴거다!
정말 읽는 내내 뭔말인지 감이 안잡혀서 진도 안나가고 고생했는데 해설을 보니 그래도 좀 차분히 정리가 된다. 경제사를 이정도로 판 사람을 두고 관념적이라고 하는 게 온당한 비판은 아니지만, 마르크스의 적대자로써 그의 사상의 핵심인 정치경제학, 그 중에서도 경제학의 원리에 대해 그만큼 진지하게 반박을 한 사람도 손에 꼽으리라. 그리고 오늘날의 사회를 바라보면, 그 통찰이 일리가 있다. 왜 자본주의는 지속적인 위기 속에서도 그 생명력을 다시 움터내느냐, 왜 격차의 확대에도 불구하고 생산성의 증가가 보편적으로 확산될 수 있나. 이에 대해 가장 설득력있는 이론적 골조를 구축해준다. 이제 경제분석의 역사 본다. 다 보고나서는 자본주의 사회주의 민주주의나 다시 정독해봐야겠음.
320x1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