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첫장의 이름들이 주는 무게감이 있다. 예전에 연재분을 구해서 봤던 기억이 있어서 내용이 익숙하다. 진보란 무엇인지, 오늘날 진보정당이 어디에 기초해서 무엇을 자라봐야 하는지 다시 되새겨볼 시점이 왔다. 그런 의미에서 역사를 한번 돌아본다.
독일 사회민주당으로부터 시작한다. 라살주의자들과 연합하고, 고타강령 비판이 나오고, 탄압에 의해 강경 노선으로 당 내가 정립되고, 탄압에도 불구하고 활발한 대중운동으로 당세를 유지하며 이후 선거에서 승리한다. 의회주의적 경향이라는 말이 처음으로 등장하게 되는 계기를 만들고, 이데올로기적 균열 속에서 베른슈타인의 수정주의가 등장한다. 지금시점에서 당대의 수정주의를 돌아보면, 그건 세계체제와 자본주의 계서제 속에서 중심부, 그리고 주변부 국가 사이에서 민주주의의 발달정도에 따라 다르게 채택할 수 있는 다양한 전술의 하나였다. 당대의 이론은 사회변화와 정당전술에 대해 충분히 구체화되지 않았고, 실적으로 증명된 수정주의를 반드시 혁명적으로 기각할 필요도 없었다. 역사의 순간에서야 판단이 갈리겠지만, 지난 역사를 돌아보는 순간에서도 핏대를 올릴 필요는 없다.
중간에 프랑스 사회당이랑 장 조레스가 스쳐지나간다. 물론 훌륭한 정당이고 열성적으로 활동했고... 그런에도 불구하고 특기하기 어렵다. 사회당이 진정으로 주체적인 위치에서 주도적으로 정부를 이끌어나간 적이 과연 있었나 싶다.
사람들이 볼셰비키 뭐 100명정도 되는 전위조직인 줄 아는데 프라우다 판매량이나 조합에서의 지지 정도를 보면 볼셰비키는 이미 대중정당이었다. 대중정당 좀 하고 다른 이야기도 할 수 있는거다. 머릿속에 구만리장천 큰그림 그려놔봐야 현실의 물적 조건이 뒷받침되어주지 않으면 말짱 허사다.
좌익 소아병의 이 문구가 정확히 무슨 말인지 되새겨야 한다.
"우리는, 갈수록 다양해지고 사회생활의 모든 부문과 갈수록 더 밀접해지며 한 부문씩 한 분야씩 부르주아지로부터 빼앗아와야 하는 실천적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현대국가는 행정국가를 기본으로 한다. 그리고 행정에 대한 이해 없이, 법치와 치안과 국가안보와 경제에 대한 이해 없이 통치할 수 없다. 모든 부문에서 철저한 이해 없이 대안의 도출도 가능하지 않다. 그리고 사실은 이 점에서 많은 이들은 거꾸로 가고 있음.
이론의 빈곤이 오늘날의 문제만은 아니다. 대공황이라는 사건 자체가 미증유의 파문을 일으켰지만, 수정주의자나 좌파나 당대의 경제적 난국에 대한 뚜렷한 전망도 해법도 없었다. 당대의 이론적 역량으로는 극족할 수 없었던 문제이기도 하고. 문제는 이것이다. 오늘날에는 저 10%도 안됨... 위기에서 비전을 제시할 수 없는 이들을 누가 믿고 의지하겠나.
53, 122, 130, 141p
어릴때야 아 그렇구나 하면서 읽었는데 지금 시점에서 다시보니 이때 이양반들도 정세판단 못하고 맹동주의적이고 조직의 권위도 존중 못하고 무엇보다 경제에 대한 생각이 없군. 파시즘은 약진하는데 좌파는 분열하고 우왕좌왕한다. 칼을 뽑았으면 칼을 맞을 각오도 해야한다. 그래도 무솔리니가 감옥에 보내줘서 옥중수고는 썼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대체 뻬뽀네는 어떤 노선이었을까가 궁금해졌다.
아까도 썼지만, 리프크네히트와 룩셈부르크가 죽은 건 칼을 뽑으면서 칼을 맞을 각오를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나는 로자 룩셈부르크의 최후에 관한 이와 같은 서술이 당대의 오판즐을 탈각하고 그를 피해자화하는 편향이 있다고 본다. 잘못된 판단이 조직을 비극적인 결말로 몰고간다. 당대 정세에서 자행되던 폭력과 긴장을 고려할 때 접든지 싸우든지 양단간에 결정을 내렸어야 했다.
독일 사민당 노령화 놀리지만 사민당은 덩치라도 크지 노령화 경향 자체는 남 보고 깔깔댈 때가 아님. 당 평균연령이 높다는 건 몇년지나면 당 자연사한다는 뜻이다. 재정균형이 10%만 깨져도 적자재정이고 긴축해야함. 긴축재정 들어가면 하나만 무너지는 게 아니라 연쇄적으로 무너진다. 당대 평의회주의의 요구안들을 보면 이거 다 들어줬으면 대공황에도 심연이 있음을 재차 확인할 수 있었을 것 같다.
그리고 시계는 프랑스로 돌아간다. 다른 나라 깨지는 꼴을 보니 우리 프랑스 친구들도 정신머리라는 걸 장착하고 인민전선으로 나아가며 기록적인 승리를 구가한다. 근데 이기는 게 꼭 좋은 일이 아니다... 조합들은 경제주의를 극대화하고 당은 이런 개별 기층의 분출을 통제하지 못한다. 통제해야된다는 생각도 없었음. 전체 물가와 외환과 금리에 대한 이해 없이 경제정책을 집행하면 어떻게된다? 당연히 자본유출이 일어나고 물가가 터져나가고 사람들은 신음하고 정당은 실권하는 것이다. 어려운 내용이 아니고, 지금 이 책을 본다면 왜 저 꼴이 났는지 경제적인 면에서 되새겨보며 저꼴나면 안된다는 생각을 해야한다. 스페인에 대한 지원 역시 마찬가지다. 어떤 경우에는 통치를 하지 않고 현존함대전략을 추구하는 편이 오히려 최대억지력을 가져다줄 수도 있다. 한번 실제로 통치를 하고 찐빠를 내게되면 그 다음에는 기회가 없다.
168, 179, 186, 204p
인민전선의 실패는 단순히 모략에 의한 실패가 아니다. 그간의 보수 우파 정부도 정새의 변화에 명확한 답을 내놓지 못하기는 마찬가지였지만, 인민전선 정부 역시 파쇼화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다가오는 갈등 속애서 재무장을, 전국민적 희생을, 그에 기반한 유산계급 자산행사의 제한을 요구하며 칼을 벼렸어야 했던 시기였다. 엘랑하고 파리를 따였을 때 과연 누가 책임을 졌나. 내부로부터의 중상이라는 비난으로부터 얼나나 자유로울 수 있나. 명백하게 갈등이 점증하고 세계대전의 기운이 무르익던 시절 안보에 대한 비전 없이 경제적 실패로 진입하고 책임을 지지 않을수는 없다.
미국 사회당, 유진 뎁스로부터 시작된 제3정당운동을 다룬다. 1장부터 느꼈지만, 대중의 생활과 경제적 변화, 당대 국가들의 계급적 구성과 당의 운동으로 변모한 경제적 사안들에 대한 설명이 충실하지 않다. 책의 목표가 다른 곳에 있더라도 당대의 삶을 규정했던 수들, 경제적 상황의 분석에 대해 외면하고 당의 흐름만을 보여주는 것으로는 시대적 변화를 잘 짚어낼 수 없다. 대체 당의 물질세계는 어디에 있나?
차라리 오스트리아의 사례는 참고가 된다. 대중조직과 당의 통일성을 유지하며 빈에서부터 실물적인 전책으로 실질적인 변화를 일으키며 누적시킨다. 물론 마찬가지의 패턴이 반복된다. 우파의 반동이 너무 강했고 거기에 적절히 단호하게 대처하지 못했고... 아니다. 대공황에 대한 대안이 없었고 현장을 실물적으로 장악하지 못했고 단호하게 결의된 조직된 이들이 없었던 것이다. 숫자로 드러나지 않는 실망의 누적이 타성적 지지로, 무기력한 패배로 귀결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이유는 물질세계와의 연결에서 찾아야만 한다. 이제는 정책 전개하는 것만 봐도 뭐가 어떻게 연쇄작용을 해서 실물적으로 조져졌는지 좀 알것도 같다...
214, 244, 260p
스웨덴 친구들의 조직태나 방향이 오늘날에 주는 시사점이 있다. 민중의 집 모델도 유사한 지향을 갖춘 모델이었고. 물론 오늘날 그런 이상이 온전히 실현되었다고 조기는 어렺지만, 추구해야 할 하나의 전범으로써 기능하는 면이 있다. 통화정책을 둘러싼 혼란이나 습변기에 대한 이론적 대안의 부재는 이 시기를 지나는 어느 정당에서나 보이는 것이었다. 비그포르스의 계획경제나 예테보리 강령 초안은 이 시기를 돌파하는 하나의 전범이 될 수 있었다. 공공의 개입을 강조하며 산업을 유지하고 고용을 지원하며 경제적 안정 속에 강력한 분배정책으로 민생을 안정시킨다. 이는 이후 스웨덴 사민당이 장기집권을 할 수 있는 발판이 된다.
이탈리아 공산당의 혼란, 구조개혁을 둘러싼 진통, 소련에 대한 입장들은 당 내의 갈등을 보여준다. 이탈리아 경제의 약진에도 줄구하고 공산당의 입장에서 산업에 대한 고민이 뚜렷이 드러나지는 않는다. 차라리 잉그라오의 주장이 자발성의 강조라는 측면에서는 시사점이 있지만, 이후의 대응이나 공산당의 몰락, 그리고 다시 인민전선으로의 수렴을 보면 사실 방향을 제시하는 이념과 정치-경제적 분석은 전후 한번도 실증적으로 평가를 받아본 적이 없었다고 보는 게 맞다. 사회에 대한 과학적 분석과 미래에 대한 전망 없이 즉자적 대응으로 연명한 결과가 이후의 몰락이었다.
279, 286, 292, 323p
칠레의 국면에서 왜 아옌데가 우파들과 손을 잡았는지 생각해봐야한다. 칠레의 초 인플레이션이 우파와 미국의 공작에 의해 유도된 것이었나? 그게 가능했으면 베네수엘라 앞바다에 지금 미국 군함 안떠있다. 행동이 실제로 일어난 일들을 설명한다. 군부에 대한 나이브함 역시 지적되는 부분이다. 군부를 섹터별로 나눠서 장악하지 못한 것이 결정적인 실책이었다.
벤좌파의 시도와 이후의 전개는 역설적으로 벤좌파의 정책에 대한 시민의 평가이기도 하다. 우파로부터의 마타도어와 당내의 중상모략에 책임을 전가하는 것이 옳은 태도는 아니다. 당대의 경제적 현황에 미루어봤을 때 과연 벤좌파의 정책이 시대적 현실과 조응하는 일이었을까? 대체 신용화폐란 무엇이었을까? IMF 쌩까고 독자노선을 가자는 말이 가진 함의에 대해 진정으로 책임질 수 있는지 자문해봐야 한다.
코빈 얘기 나올때마다 한숨나온다. 코빈이 지낸 시간이 있고 그에게 주어진 기회가 있었다. 여러번.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에 이르른 궤적 속에서 내재적 요인을 따지지 않을 수 없다.
왜 일본의 사회당은 급격하게 몰락했는가. 일본의 진보운동이 겪었던 분기마다, 그리고 90년대 이후 급격한 경제의 수축이 부여한 과제들이 있었다. 과연 그 과제들에 성실히 임해서 결과를 내놓았는지. 산업구조의 변동과 변화하는 고용현황을 정확히 진단하고 브레이크를 걸 수 있었는지. 이건 일본공산당과 사회당에 동시에 던져야 할 질문이다. 히키코모리들 앞에서, 당들이 무엇을 할 수 있었을까. 이건 오늘날 우리들에게 현재적 질문이기도 하다.
355, 379, 394, 424p
나는 이 부분에서는 명백하게 평가가 다름. 긴축정책과 외채상환은 세계경제와의 조응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일이었다. 소농을 위한 분배정책이 아닌 기업농을 위주로 한 발전전략 역시 당댜 브라질 경제 상황을 보면 필요한 일이었고. 1차산업 중심의 발전이 이루어졌다고는 하지만 이건 오늘날 1차산업의 성격이 어떠한지에 대한 구체적 평가가 결락된 단면적 분석이다. 1차산업의 고도화는 그 자체로 유관된 2차, 3차산업의 증가를 초래할 수 밖에 없다. 그리고 이는 브라질의 경제성장률로 드러난다. 볼사 파밀리아는 추앙하면서도, 그를 뒷받침할 수 있었던 배경의 경제적 변화에 대해 공정하게 평가하지 못한다면 그건 브라질 노동자당과 룰라에 대한 올바른 인식이 아니다. 브라질이 밟아온 좌파 개발주의의 길이 오늘날 제 3세계 국가들에게 제시하는 방향을 본다면 더욱 더. 그래도 차마 지금 시점에서 차베스 칭찬을 할 수 없다는 인식이 있다는 점에서는 낫긴 하다.
포데모스의 입장문에 고용 몇번나오는지 세봐야한다. 이는 멕시코 민주혁명당의 방향과도 조응하는 부분이 있다. 국가의 건설, 산업의 발전, 고용의 확대가 오늘날 혁신 좌파들의 정책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성장과 개발과 산업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고용에 기반하여 지속가능한 부의 재분배를 이루어야 한다.
461, 493p
맑스주의가 지나간 이념이라도, 그 핵심에는 몇가지가 있다. 역사유물론, 정치경제학, 노동중심성이 그것이다. 오늘날 역사유물론은 경제사에 대한 분석으로, 정치경제학은 세계체제와 그 안에서 개별 국가의 역동으로, 화폐와 인플레이션에 대한 고찰로, 노동중심성은 산업구조변동에 따른 고용과 노동조건의 향상으로 나타난다. 여기에 더해서 국가의 역할에 기반한 사회 공공성이 다양한 층위에서 구현되고, 자율성과 정당정치 역시 이 구조속의 주체이다.
정당운동사이니만큼 정치에 집중하여 약사를 소개하려는 의도는 알겠지만, 오늘날 우리는 이를 넘어서 새로운 비전을 제시할 책임이 있다. 경제사 전반에 대한 이해를 통해 현대 경제의 구조와 그 속에서 한국이라는 국가의 산업구조, 그리고 이 구조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그리고, 그 속에서 고용, 특히 불안정고용과 청년고용, 지역의 산업생태계가 자생성을 갖고 충분히 환류될 수 있는 방안에 대해 고민해야한다. 경제 없이 정치 없고, 개발과 성장 없이 분배도 없다.
어떻게 성장과 고용을 증진하면서 소득 불평등과 자산 불평등을 개선하며 사회 자체의 지속가능성을 담보할 것인지 대안을 제시하려면, 그만큼 오늘날의 사회를 바로 보고 실물에 밀착하며 그 속에서 길을 찾아나가야 한다. 한계를 넘어서서 공간을 마련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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