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부작의 1권이다. 중국 근현대사를 보면서 중국 공산당 정치구조의 각 부에 대해서는 드러난 단면만 봤지 그 운용원리를 구체적으로 들여다보지는 못했다. 중국공산당 영도의 원칙으로부터 조직구조, 당원의 구성, 실질적 작용을 통해 당이라는 조직의 이념과 실제를 들여다본다.
제1부 공산당 영도체제와 원칙
1장 공산당 영도 체제
중국은 당-국가 체계로 조직되는 나라이다. 여기에서 핵심은 당에 있다. 그렇다면 당의 영도는 어떤 배경하에 성립되는가, 먼저 당이 있었고, 홍군이 있었고, 그 다음으로 국가가 있었다. 당 조직은 국가와 유기적으로 결합되어 기층 소조로, 영도위원회로 행정 일반과 민생 제반을 통솔한다. 국가의 정책과 제도 역시 당의 통제 하에 구축된다. 그렇다면 이런 체제는 구체적으로 어떤 원칙하에 움직이는가.
마오 시대의 중국 공산당은 당-국가가 일체화된 통합형 국가였고, 개혁개방은 이와 같은 체제의 변모를 촉진시키는 분기점이었다. 기존의 당-국가 체계는 인치에 의존했고, 규정에 의거한 처리는 기대할 수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민영의 성장은 가능하지 않았고, 따라서 당과 국가의 관계는 시대에 따라 변모를 거듭했다. 당과 국가는 '공산당 영도 체제'와 '국가 헌정 체제'로 구분되며, 당의 영도는 개별 소조를 통해 국가 기구에 침투하여 이를 당의 노선에 맞게 운용한다. 양자의 혼재와 <헌법>과 <당장>이라는 규율에 의한 통치가 오늘날의 절충형 체제를 구성하는 원리이다.
<당장>에 따르면 중국 공산당은 "중국 특색 사회주의 사업의 영도핵심이다." 중국에서 집권은 공산당이 정치권력을 장악하여 통치하는 행위를 말하고, 영도는 공공의 이익을 위한 노선을 제시하고, 인민을 조직하고 인도하며, 올바른 노선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는 일련의 활동이다. 노선에 맞는 인민의 인도와 집행. 그것이 중국 공산당의 영도이다.
이와 같은 영도는 모든 분야에 적용되므로 공산당의 전면 영도이다. 이를 분야별로 구분해보면 '정치영도', '조직영도', '사상영도'로 나뉜다. '정치영도'는 노선을 제시하고 그에 따라 정책을 구축하며 이를 위해 국가와 사회를 충괄하고 통솔하는 활동이다. 당의 전면 영도는 민영기업으로부터 사회단체까지 모든 것을 포괄하지만, 그 중에서 절대영도를 받는 조직이 크게 두 분류가 있다. 하나는 '무장역량', 즉 인민해방군과 무장경찰 등 무력이고, 다른 하나는 정법기관, 공안부, 국안부, 검찰과 법원이다.
예를 들어 전국인대는 헌법상 최고기관이지만, 전국인대의 실제 운용은 당의 '감독'과 '영도'하에 놓여있다. <당장>과 <헌법>에 명시된 공산당 영도 원칙은 당이 영도하면 전국인대는 그것을 수용해야만 하도록 한다. 법률적으로 전국인대는 중국 공산당의 하부기관이 아니지만, 전국인대 내 당조는 중공 중앙의 영도에 복종할 의무가 있다.
헌법으로 통치되는 국가 헌정 체제는 당의 탈법과 위법을 제한할 권리를 법률 상으로는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인신의 자유는 당 중앙의 영도에 복종할 의무에 후행하므로, 실질적으로 당에 대한 저항과 반발은 당의 탄압으로 묵살된다. 시민의 권리와 종교의 자유는 보장된다. 공동체의 이익을 위한 당의 영도 하에서만. <행정소송법>에서도 당이 피고로 서는 것은 원천적으로 봉쇄되어있다. 정부의 정책에 대해 이의를 제기할 수는 있지만, 실질적으로 그 정책을 양도한 공산당은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절대영도를 박는 무력기관과 정법기관은 전국인대의 감시로부터도 자유롭다. 절대영도의 해당기관은 중앙당의 감독을 받고, 중앙당의 감독은 전국인대의 감독에 우선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영도체제는 마오쩌둥 치세에서 당-국가의 일체화를 통한 통합적 체제로 먼저 구축되었다. 그러나 통합적 체제는 그 구성원리에 따라 필연적으로 인치의 형태를 띄게 되고, 개인에게 권력이 집중되며, 제도와 법률에 따른 통치가 아니게 된다. 마오쩌둥 사후 개혁개방으로 나아가는 과정에서 법과 제도에 의한 통치가 이루어지지 않는 점이 민영 성장의 문제로 지적되고, 정치개혁의 요구에 맞춰 당-국가 양자간의 분리가 시도된다. 그러나 이는 국가에 대한 당의 통제력 약화와, 이원화된 권력으로 인한 당과 행정의 갈등으로 표출되고, 결국 1990년대 개혁개방이 진전되며 의법치국과 의법집권의 원칙에 따라 법제화된 절충형 체제로 나아가게 된다. '공산당 영도 체제'와 '국가 헌정 체제'의 혼재와 이 과정에서 국가에 대한 당의 영도 관철, 일반적 상황에서 규범에 의한 통치가 확보되며 '시회주의 법치국가'라는 구호 아래 일련의 체제가 정비된다.
'인치'의 폐단이 당정분리의 필요성을 부각시켰지만 당정분리는 당의 영도를 흔들었고, 인치에서 법치로의 전환이 요구되면서 법치 내에서 당의 영도를 관철할 제도적 기반이 필요했다. 절충형 체제는 그 대안이었던 것이다. 이 과정에서 싱가포르의 인민행동당은 유효한 전범을 제공한다. 물론 당의 영도는 하향식으로, 일방적으로 집행되며 견제받지 않는다. 이런 구조에서는 부패가 자리할 수 밖에 없다. 따라서 정법기관을 통한 주기적인 일탈행위의 통제가 필요하다.
그렇다면 그 영도의 원칙은 무엇인가. 네가지 주요한 원칙은 다음과 같다. 공산당의 전면 영도, 민주집중제, 당관간부, 그리고 통일전선이다. 이 영도는 어떻게 집행되는가, 중앙-지방-기층으로 구성되고 영도기관과 사무기구로 구분되는 각급 당부에 의해 집행된다. 집행의 수단은 무엇인가, 공산당의 통제기제이다. 인사/조직/사상/무력/경제에 대한 통제를 통해 당의 영도는 사회 각부에 관철된다.
2장. 공산당 영도 원칙
당의 영도체제란 절충형 체제인 당-국가 체제에서 국가는 헌법으로 통치하고, 당은 국가를 당장으로 영도하는 것이다. 당의 기층 조직은 각게 분야를 총괄하고, 당장과 당의 정치노선에 따라 인민을 인도한다. 인도의 과정에서 사용되는 것이 인사, 재정, 무력을 동원한 통제기제이다.
당장 서문의 <총강>은 공산당의 성격과 목표를 다음과 같이 말한다.
“중국공산당은 중국 노동자계급의 선봉대고, 동시에 중국 인민과 중화민족의 선봉대다. [또한 공산당은] 중국 특색 사회주의 사업의 영도 핵심(領導核心)으로, 중국 선진 생산력의 발전 요구를 대표하고, 중국 선진 문화의 전진 방향을 대표하며, 중국의 가장 광범위한 인민의 근본이익을 대표한다. 당의 최고 이상과 최종 목표는 공산주의의 실현이다.”
혁명당, 전위당, 포괄정당으로써 공산당의 특징이 규정된다. 혁명을 지향하고, 혁명 노선을 결정하고 국가를 영도하며, 그 과정에서 군중을 포괄할 수 있는 인민의 총의로 당의 의지를 관철하는 것이 중국 공산당이다.
2002년 16차 당대회의 삼개대표 중요사상이 <당장>에 삽입되며 포괄 정당으로써 공산당의 목표를 분명히 한다.
- “선진 생산력의 발전 요구, 선진 문화의 전진 방향, 가장 광범위한 인민의 근본 이익”을 대표해야 한다는 주장이 바로 그것이다. -
그리고 이 과정에서 사영 자본가 역시 당의 일원으로 자격을 허여받는다.
그렇다면 당의 정치노선은 무엇인가. 덩샤오핑의 하나의 중심 두개의 기본점(一個中心 兩個基本點) 으로 요약된다. 경제발전을 하나의 중심으로 놓고, '개혁개방의 견지', '사항 기본원칙의 견지'에 따라 당의 입장을 결정한다. 개혁개방을 견지한다는 것은 사유화, 시장화, 개방화, 분권화의 원칙을 지킨다는 의미이다. 사항 기본원칙은 1)공산당 영도 2)인민 민주주의 독재 3)마르크스-레닌주의와 마오쩌둥 사상 4)사회주의의 길 이라는 방향을 견지한다는 의미이다.
모순되는 목표들의 상충에서 당은 어떻게 해법을 내놓는가. 결국은 소유권의 문제이다. 모든 소유권은 당에 귀속되어 있으므로, 사용권의 임차는 사유화와 시장화, 사회주의 집산제의 길과 모순되지 않는다. 당이 민주적으로 토론하여 집중적으로 집행하는 일이므로 결국은 당의 망 안에서 일어나는 일인 것이다.
<당장>의 지도이념은 각 세대 지도자의 통치 이념이다. 마오쩌둥으로부터 덩샤오핑, 장쩌민과 후진타오 그리고 시진핑까지 본인의 통치이념을 <당장>에 게재하며 시대적 소명을 공표하고 본인의 시대를 정의한다. 그렇다면 당의 전면 영도란 무엇인가.
- 공산당은 “당(黨)·정(政)·군(軍)·민(民)·학(學)과, 동(東)·서(西)·남(南)·북(北)·중(中)에서 일체(一切)를 영도한다.” 마오쩌둥은 1962년 2월에 개최된 중앙 확대 공작회의에서 이렇게 선언했다. “공업(工)·농업(農)·상업(商)·문화와 교육(學)·군대(兵)·정부(政)·정당(黨)의 일곱 개 방면에서 당은 일체를 영도한다.” -
사회 제반의 일곱개 방면과 국토 전반에 대한 영도가 당의 전면 영도이다. 공 농 상 학 병 정 당 칠대 조직이 영도 조직의 기본이다.이는 개혁개방기 일시적으로 후퇴했다, 시진핑 시대에 다시 <당장>에 삽입된다. 저자는 이를 당의 자신감의 발현으로 보지만, 역으로 생각해보면 그만한 영도 관철의 여력이 약해졌기에 <당장>에 다시 게재함으로써 노선의 재천명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고도 볼 수 있지 않나 한다.
국가는 의법치국(依法治國)의 원칙에 따라 헌법으로 전반을 조율하고, 당은 의법집권(依法執政)의 원칙에 따라 국가를 영도한다. 그 영도의 원리는 민주집중제이다. 당원들간의 민주적 토론으로 노선을 결정하고, 결정된 노선은 집중적으로 관철된다. 여기서 집중적으로 관철된다는 의미는, 당원은 민주적으로 결정된 노선에 복종할 의무를 진다는 뜻이다. 민주집중제에서 네개의 복종, 개인은 조직에, 소수는 다수에, 하부는 상부에, 전 당원과 조직은 당 중앙에 복종할 것을 요구하는 것은 바로 그런 의미이다. 법과 규율은 있지만, 그중 가장 우선하는 것은 당 중앙의 결정이다. '민주'적으로 선출되고 논의된 당 중앙의 결정에 복종하는 것. 그것이 민주'집중'제의 요지이다.
-이것이 공산당의 ‘정치 원칙(政治原則)’이자 ‘당성(黨性)’이다. -
공산당 영도기관은 집단지도 원칙에 따라 운용된다. 서기 한사람의 목소리가 당 조직 전체를 지배하지 않도록, 각 조직은 충붐히 민주적인 다원성을 함유하고 다양한 갈래의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원칙적으로는 그렇다. 여기에서도 '집중'이 강조된다. 모든 영도간부는 '두개의 수호(兩個維護)'를 견지해야 한다. 당중앙의 권위와 집중통일 영도, 시진칭 총서기의 당 중앙 핵심 및 전당 핵심 지위에 대해서는 타협이 없다. 기본적인 가이드라인이 정해지고, 그 위에서 자율에 따라 각개 소조의 운용이 전해진다. 군중노선 역시 이 과정에서의 포괄정당으로써의 원칙을 지키기 위한 지도노선이다.
이 조직들을 운용하는 핵심은 누구인가. 오직 당에만 중성하는 당정간부이다. 당정간부는 당 외에는 책임을 따지지 않는다. '간부직무명칭표‘(幹部職務名稱表, nomenklatura) 의 간부들은 오직 당에만 충성하며 당의 영도 노선을 각급 통재기제와 조직을 통해 관철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그리고 통일전선의 원칙이 있다. 당의 영도는 통일전선 전체를 아우르는 포괄적, 전면적 성격을 띈다. 이 통일전선의 구성체로는 기타정당과 중화민족의 중흥을 위해 힘쓴느 모든 사람뿐만 아니라, 중국 외의 중국인과 '대만인', 그리고 전 세계에 거주하는 화교가 포함된다. 일단 명목상으로는 그렇다.
2부. 공산당 조직
1장. 공산당 중앙의 영도기관과 사무기구
1절. 전국대표대회(당대회)
당 중앙은 당대회, 중앙위원회, 중앙정치국, 중앙정치국 상무위원회와 총서기 등으로 구성된다. 이들이 중국 공산당의 영도기관이고, 줄여서 '당중앙'으로 지칭되는 이들이다. 전국대표대회는 전국 약 2000명의 대표들이 모여 당의 주요 의제를 토의하고 인준하지만, 그 기간은 1주일이다. 당연히 실제 논의는 다른 곳에서 일어나고, 이는 '통과의례'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국 대표대회는 그 구성에서, 그리고 형식에서 강력한 권위를 갖는다. 전국대표대회의 후보는 차액선거 방식으로 결정되며, 그 차액비율은 20%로 규정되어있다. 일단 당원들의 참여로 선출은 되지만 그 결정은 성급 당 위원회에서 이루어진다.
당대회 대표는 당원 수에 따라 결정되며, 당원 수는 매년 200만명씩(!) 증가하므로 1992년의 2,035명에서 조금씩 증가했다. 반면 중앙위원회는 정위원 200명, 후보위원 150~170명으로 350명에서 370명 선으로 유지된다. 정위원은 투표권을 갖는 실수이고 후보위원은 ... 후보위원이다. 그래도 간부니 좋겠어. 결국 일상업무는 정치국과 상무위원회에서 이루어지고 그 수는 각각 25명, 7명이다.
전국대표대회는 노동자•농민,기층간부 등 '일선대표' 30%이상 할당 규정에 의해 일선대표 30%, 여성 20%, 소수민족 10%를 할당한다. 군에서 300명(13%), 국가기관과 당 중앙에서 184명과 108명이 할당되고 국유기업과 금융기관에서 나머지를 채운다. 전국대표대회에서는 정치보고를 확인하고, 지도부를 '인선'하고, 주요 노선을 결정한다. 그러나 안건은 사전에 중앙위원회에서 심의되고 보고된다. 말 그대로 '결정'만 하는 것이다. 중앙 최고 지도부의 선출 역시 중앙위원과 정치원로들 400인에 의해 추천선거로 결정되고, 목록이 중앙위원회의 추인을 받아 당대회에서 공표된다.
대표성은 갖지만 발의도 못하고 올라온 의안 검토도 안되고 오직 추인만 할 수 있다. 의안을 제출하는 것도 제도적으로는 가능하다. 제도적으로는. 실제로는 의안 역시 상무위원회와 중왕위원회의 검토를 거쳐야만 상정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국대표대회는 그 대표성으로 당 중앙의 영도에 정통성을 부여해주고, 그 준비의 과정에서 당 중앙으로부터 기층까지 당의 노선에 대한 실질적인 민주적 합의를 구축한다.
2절. 중앙위원회.
항상 중국 현대사를 보면서 궁금했던 의문이 풀렸다. 왜 맨날 뻑하면 3중전이냐, 3중전이 제일 중요한 중전임. 1중전은 당대회 이후 중앙 영도기관의 지도부가 추인되는 자리이다. 정치국원, 정치국 상무위원, 총서기가 선출되고, 서기처 서기 인선안이 인준된다. 2중전은 전국인대와 겹친다. 전국인대는 국가의 최고기관이다. 그 위상은 당대회와 같다. 전국인대는 2중전에서 조율된다.
그리고 3중전이 열린다. 그 회기의 가장 중요한 정치의제들이 3중전에서 결정되고 구체화되며 다음 회기에 평가되고 반영된다. 개혁개방, 도시개혁과 기업개혁, 그리고 시장경제 체제정비 등 몇차건 3중전은 일종의 중간평가와 노선조정의 역할을 한다.
5중전에서는 그간의 5개년 계획이 검토되고 차기 5개년계획의 초안이 상정된다. 6중전에서는 정치노선과 이념, 사상지도노선이 결정되고... 7중전과 8중전에서는 당대회 준비를 한다.
이런 중앙위원회는 지방, 군부, 그리고 당 중앙으로 구성된다. 지방의 비율은 차수에 따라 계속 감소되어 왔으며, 군은 정위원의 일정 수를 지속적으로 점유한다. 이들 중앙위원은 5년마다 62%가 교체되며, 이는 중국의 핵심 엘리트들이 연령과 임기제한에 따라 매우 젊게 유지된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들의 파벌구성은 다들 알다시피 상해방, 공청단, 태자당 계열이 총서기의 출신파벌에 따라 매번 달라져왔으나, 시진핑 시대에 접어들며 전통의 파벌구조는 해체되고 시진핑 핵심을 중심으로 헤쳐모여가 되었다.
3-4절. 정치국과 정치국 상무위원회

정치국은 권력의 분점을 통해 당내민주를 구현한다. 정치국의 운영은 당장과 당규를 통해 규정되며, 이는 명문에 의한 운용을 보장한다. 더하여 실제 실행기관의 현장책임자로 구성된 정치국은 각각의 국원이 개별 분과의 이해를 대표하며 기관 간 이해의 충돌을 정치국 테이블에서 조율하여 결정한다. 이런 정치국의 구성은 당 7명, 국가기관 7.4명, 전국인대 2.4명, 지방 5.5명, 군2명으로 구성된다. 이들은 정책과 노선을 결정하고, 인사권을 통해 당과 국가를 통제한다.
성급 정직과 부직, 당 중앙 주요기관의 인사와 징계를 결정하고, 감독권을 통해 중앙서기처와 중앙기위의 업무보고를 청취한다. 영도간부의 처우를 결정할 수 있고 핵심간부목록을 직접 정리할 수 있다는 것은 그 이하 간부와 조직과 제반의 최종심급을 쥐고있다는 뜻이다. 일반적인 일정이 공개되지 않다가도 국가의 주요 상황에서 그 일정을 공개한다는 것은 이들 상무위원회가 국가 권력의 현현으로써 그 존재를 드러냄으로 국가에 대한 신뢰가 물질적으로 두러난다는 것을 의미한다.
- 구체적으로 공산당 15차 당대회(1997년) 이후 정치국 상무위원회는 공산당 대표 2명(총서기와 서기처 상무 서기), 국무원 대표 2명(총리와 상무 부총리), 전국인대 대표 1명(위원장), 전국정협 대표 1명(주석), 중앙기위 대표 1명(서기)으로 구성된다. 그리고 이들은 개인 차원에서 정치국 상무위원회의 구성원으로 참여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대표하는 당정기관의 현직 책임자로서 참여하는 것이다. -
5절. 총서기와 중앙서기처
그렇다면 총서기는 대체 무얼 하는 사람이냐. 미오쩌둥과 덩샤오핑의 권한으로부터 그 내용을 구분한다. 정책결정권, 인사권과 후계자 지명권, 군 통수권을 지닌 사람이다. 마오와 덩 이후의 총서기들은 집단지도체제의 틀 아래에서 이들 권한을 나누었다. <당장>에 따른 총서기의 직권은 다음과 같다.
“중앙정치국 회의와 중앙정치국 상무위원회 회의를 소집(召集)할 책임이 있고, 서기처 업무를 주재(主持)할 책임이 있다.”
소집과 주재에 총서기라는 직위의 요가 있다. 소집은 말 그대로 회의 자리에 상무위원을 불러올 권한이다. 주재는 회의에서 논의를 정리하고 보이지않는 한표를 행사할 권한이다. 국가의 사정이 보고로 총합되고 인사권과 징계권을 행사하는 상무위원회에서, 총서기는 보이지 않는 표들을 주재하는 사람이다.
주석과 총서기의 차이는 최종 심급으로써의 결정을 내릴 권한을 당의 정치국 회의에서 공식으로 인준받았는가의 차이이다. 총서기는 실질적으로 다른 상무위원에 비해 더 큰 영향력을 받지만, 이는 암묵적으로 유지되는 권력이지 공식적으로 인준받은 권한은 아니다. 실질적으로 결정을 한다는 것이 명목적인 지위를 표상하지 않는다. 바로 그 점이 시진핑 주석설의 근원이기도 하다.
이와 같은 총서기의 실질적인 권력 행사는 각 총서기의 스타일에 따라 달랐다. 마오는 주석이었으니 다른 경우고, 덩은 심지어 총서기도 아니었다. 장쩌민은 서기처 대신 중앙 판공청을 강화하며 권력의 기반으로 삼고, 각종 영도소조를 통해 자신의 지배력을 강화해나갔다. 이렇게 축적된 권력은 격대지정에도 불구하고 중앙군사위원회 주석을 유지할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후야오방과 자오쯔양의 결말을 보면 덩샤오핑의 좌절이 느껴진다. 결국 총서기, 주석의 권력이란 군권, 정책, 그리고 인사권, 그 중에서도 후대지정의 권한에 있다. 왼팔과 오른팔이 다 비명에 갔으니...
후진타오 시기에는 당내 민주가 강조되며 제도화와 개방화에서 진전을 보였다. 이는 상하이방과의 알력을 법과 제도로 제어하기 위한 방편이기도 했지만, 결과적으로 정치 부문에서의 투명성을 높이고 제도의 구속력을 강화하는 결과로 나타났다. 하지만 시진핑 시대에 이르러 장쩌민 시대와 같은 영도소조 중심 정치가 재개되고, 중앙위가 시진핑의 측근들로 채워지면서 이러한 변화는 그 빛을 잃게된다.
중앙서기처는 명목상으로는 정치국 상무위원회의 사무기구이다. 그러나 당연히 그냥 사무기구는 아니다. 회의에서 회의자료를 만드는 사람은 무엇이 중요한지 아닌지 결정할 권리를 갖는다. 중앙의 일상업무를 처리하고 당무 문건을 작성한다는 것은 그만큼 관료 조직에 대한 영도력을 갖는다는 의미도 된다. 결정적으로, 이를 통해 정책 결정권을 갖는다. 중앙서기처는 정책 결정권을 행사하는 '판사기구'이고 국무원 판공청은 결전사항을 집행하는 실무기관이라 '판공기구'인 것이다. 1987년 후야오방의 실각과 앞서 나왔던 장쩌민의 집권, 그리고 중앙 판공청으로의 권력이동 이후 그 권한이 약해졌지만, 여전히 중앙 서기처는 사실상의 영도기관으로 기능한다. 그 대표가 정치국 상무위원인 왕후닝이었다는 점에서 그 위상이 드러난다. 시진핑은 17기 중앙서기처 1서기였다.
6-7절. 중앙사무기구와 중앙판공청
중앙사무기구에는 종합부서로써 중앙판공청이 있도, 직능부서로써 조직부, 선전부, 대외연락부와 정법위원회가 있다. 당 전체의 영도기구들의 실무를 책임지는 사무기구 역시 중앙의 관할이다. 영도소조 판공실 중 핵심적인 소조들은 당 중앙, 중앙 판공청 산하로 들어가고 기타 영도소조는 직제에 맞게 조직주, 선전부 등으로 배속된다. 넷째로는 파출기관, '중앙 국가기관 공작위원회'가 있다. 지방으로부터 국가기관까지 개별 행정 각부에서 당의 영도를 담당한다. 마지막으로는 중앙 직속 사업단위로, 여기에는 당교로부터 당사문헌연구원, 인민일보 등의 언론이 포함된다.
이중 가장 중요한 기구는 중앙판공청이다. 중앙판공청은 중앙부터 지방까지 관료 조직을 통제하고 통합하는 핵심 역할을 담당한다. 이 비서는 조직비서와 개인비서로 나뉘는데, 조직비서는 각 성과 중앙의 판공청으로, 조직의 실무를 총괄하여 보고하고 조직간의 조율을 담당하고, 개인비서는 상무위원으로부터 지역의 정/부직 등 고위 관료들간의 의사소통과 이해충돌을 사이에서 조정한다. 권력의 쥬요 인물들의 수발을 든다는 것은 의사결정과 이해의 조정에 대해 도베식으로 수업을 받는다는 뜻이기도 하다. 즉 판공청과 개인비서 근무는 곧 간부로써의 일보이다. '간부배양학교'로 역할하는 것이다. 2002년 중앙위원회의 41%는 판공청이나 개인비서 출신이다. 성급 지도자 다수도 이 과정을 거쳐 임명된다.
구체적으로 무엇을 하는가. 우선 업무를 조정하고 갈등을 중재하는 결정권을 갖는다. 하부 당부간의 시시비비를 가져와 중간에서 선을 그어준다. 또한 판공청을 중심으로 모든 정보가 취합된다. 판공청의 모니터링 시스템은 전국에 '중요한' 사건이 발생하면 15분에서 20분 이내 상무위원과 총서기에게 이를 전달한다. 정보를 취합하는 사람은 진실을 쓰는 힘도 가지고있다. <중앙판공청 통신>, <관점요약>등 자체 발간물을 통해 입장과 기본노선을 견지하고 수정할 수 있는 기초자료를 하달하고 배포한다. 마지막으로, 모든 문서는 판공청에 집적된다. 중앙으로 들어오는 문서와 나가는 모든 문서는 중앙 판공청을 거친다.
하급 당부간의 업무를 조정하고 갈등을 해결하고, 정보를 취합하고 배포하고, 당 중앙으로 들어오고 나가는 모든 문서를 집적한다. 말인즉슨 중앙판공청이 당 중앙의 손과 발이다. 중앙위원회의 40%를 배출한다는 게 다 이유가 있다.
2장. 당조와 영도소조:'특별한' 영도조직
당과 국가간의 관계가 당대회로부터 전국인대로, 중앙위원화에서 정치국으로, 정치국 상무위원회로, 총서기로 수렴하고 다시 중앙서기처와 중앙판공청, 당 중앙의 제밤부서로 확장돠고 지역 조직으로 뻗어나간다. 그러나 이런 수직적 관계는 필연적으로 내집단 논리에의 종속이라는 변수를 마주하게 된다. 개혁개방 과정에서 지방 제후 자본주의, 봉건적 틀질들에 대한 문제제기가 나왔던 것은 이런 조직적 특성에서 기인한다. 이를 수평적으로, 횡적으로 그물망을 쳐서 잡아주는 조직들이 필요하다. 그것이 당조이고, 영도소조이다. '지방 보호주의', '부서 이기주의'를 배격하고자 핵심 담당자들을 잡아와 주리를 틀고 이해관계를 조정하여 통일된 목소리를 개별 분과에서 수립하는 TF팀이 영도소조이다.
당조는 당 외의 기관들, 국가기관, 공공기업 등등 비당조직의 핵심 지도부들을 묶어 구성된 '핵심 영도기관'이다. 그 정체성은 '파견기관'으로, 말하자면 당이 국가에 투입한 촉수이기도 하다. 모든 일이 조직구조상의 계통으로 나뉘지 않고, 어떤 프로젝트들은 계통 전반의 협력이 필요하다. 계통 간 협력을 도모하고 사업 추진에 있어 계통간 이해고나계를 조정하고 집행을 하달하며 그 과정을 감독함으로써 당의 영도를 실질적으로 수행하는 기관이 바로 영도소조인 것이다.
영도소조의 세부명칭은 영도소조일 수도 있고, 위원회가 될 수도 있고, 공작소조, 조정소조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근본적인 성격은 같다. 한가지 목적에 특화하여 컴팩트한 구성을 갖고 실무의 정책결정과 집행을 하달하고 과정 전반을 감독하는 유기적 연결이다. 이 구성원들은 오직 당만이 책임을 물을 수 있고, 당에게만 책임을 진다. 핵심 인사권의 통제는 결국 정책의 결정과 집행과정의 전반을 좌지우지하는 권력으로 그 중심의 결절에서 구현된다.
이와 같은 영도 소조의 기능을 공식적으로 표현하는 말이 있다. '정책 결정 의사 조정 기구'.
정책 결정은 말 그대로 당 중앙의 결정을 구현 가능한 형태로 하부 조직의 의견을 수렴하여 집중하고 하달한다. 의사 기능은 정책의 결정을 논의하며 의견을 수렴하고, 조정 기능은 실행의 과정에서 업무를 분장하고 목표의 달성을 하달한다.
당조와 영도소조는 관계기관과의 관계에 따라 수평적/수직적 관계를 맺는다. 비당기관의 당조는 비당기관과 콰이(块) 관계에 있고, 당 내 동일계통의 하부기관과 상위 영도소조는 탸오(条) 관계에 있다. 콰이-탸오(块-条,괴-조)관계에 의한 업무 기반 조직간의 종적-횡적 연결이 바로 영도소조에 의한 업무진행인 것이다.
베이징 시 당 위원회 조직부의 사례로 이 종적-횡적 연결을 설명한다. 시 당 위원회 조직부는 시 당 위원회와는 수평적-콰이 관계가 있고, 공산당 중앙 조직부와는 동일 계통이므로 수직적-탸오 관계가 있다. 따라서 조직부의 업무는 시 당 위원회와 중앙 조직부의 이중 관할에 놓여있다. 이를 이중영도관계라고 부른다.
영도소조에도 각각 계통이 있고 급이 있다. 당의 전면영도는 일곱 계통을 포괄한다 조직, 선전, 정법 , 재경, 통전, 외사, 군사가 그것이다. 이들 개별 계통 자체에 대한 영도, 그리고 간계통간 영도가 저마다 다른 영도소조에 의해 진행된다. 이 영도소조들 간에도 급간 차이가 있다. 공산당 중앙에 속한 영도소조, 그중에서도 정치국 상무위원이 소속된 소조가 반자급 영도소조가 된다. 이들은 상설이냐 아니냐, 지방까지 동일 구성으로 구축되어있느냐 아니냐에 따라 또 구분된다.
그렇다면 왜 영도소조인가. 연도소조는 공식적인 다른 기구들과는 달리 은닉성이 있다. 그 멤버를 공개할 의무도, 일정을 알릴 필요도 없다. 더하여, 조직 자체가 가볍다. 자체 사무기구가 없고, 당 중앙 판공청과 하부기관들을 통해 제반사무를 집행한다. 당연히 공식 기구에 비해 비민주적이고, 그 지도자에만 복종하는 경향이 강하다.
이와 같은 영도소조의 역사는 당 창건과 함께 시작되어, 1953년 결정에 의해 계통의 원형이 만들어지고 당연히 마오쩌둥에 의해 절찬리에 활용된다. 이후 개혁개방시기에도 나름의 진퇴는 있었으나 여전히 힘을 발휘하고, 장쩌민 시기 그 활동과 위상이 강화된다. 상대적으로 후진타오 시기에는 의법집권과 의법치국이 강화되며 제도 속으로 내재화되었다면, 시진핑 시기에는 다시 전면으로 나서며 의안을 주도적으로 결정하는 모습을 보인다. 시진핑 시기 2017년까지 전체 영도소조의 개수는 83개 중 29개를 신설하여 35% 증가했고, 그중 당 중앙 영도소조는 26개 중 8개가 증가하여 30.8%의 증가율을 보였다. 2014년부터 2016년까지 정치국은 월 1회 회의하여 회의마다 한두개의 안건을 처리한 반면, 중앙 개혁 영도소조는 월 1회 회의하며 평균 6.4개의 안건을 처리한다.
외교를 중심으로 당-국가기구와 영도소조, 국가기관, 군, 싱크탱크의 유기적 연결이 실제로 어떻게 구현되는지 짚어본다. 일상적 시기 외교는 정치국 상무위원회의 몫이다. 그러나 돌발상황이라도 그 사안이 중대할 시, 정치국 긴급회의가 소집되어 대표성에 입각한 결정을 내린다. 세르비아에서의 중국 대사관 폭격으로 인한 피해사례가 그 예시이다. 이 과정에서 총서기는 외교-안보에서의 최고 선임자로 역할한다.
주요 사안에서는 정치국과 정치국 상무위원회의 전원합의가 중요하지만, 일상의 외교전략과 진행의 관리 감독은 상무위원이 소속된 국가안보위원회, 국안위를 통해 조정된다. 영도소조를 중심으로 배열된 제반 외교 담당 부서들이 서로간의 이해를 조율하고 합의하며 집행계획을 수립하고 이를 관리감독한다.
1990년대 이후 사회의 고도화와 경제의 확장은 외교의 범위와 역할을 넓혔고, 분과의 다양화를 촉발한다. 우선 그 범위가 제3세계로, 전 세계로 확장되었고, 그 분야가 정치와 안보로부터 경제, 문화까지 다방면으로 확장되었다. 국가 내 지역간의 상호협력도 증가하고, 민간교류도 활성화된다. 이에 따라 전문화, 다양화, 분권화, 그리고 세계화라는 테마 아래 외교조직의 이합집산이 시작된다.
외교 관계의 복잡성 강화는 전문화를 촉발하고, 기존 담당직역들, 국무원 외교부등의 전문성이 강화된다. 범위의 확장은 기존에는 외교에 간여하지 않던 기타분과, 특히 재경계통의 외교업무로의 소관확장과 지역 정부들의 외교로의 접근을 불러온다. 그렇다고 해서 외교부의 기능이 약화된 것은 아니다. 복잡화와 고도화에 발맞추어 외교부는 정보 취득과 대응방안을 수립하고 당 중앙의 결정에 살을 붙여나간다. 이와 같은 제반조직들이 영도소조로 결합하여 정책을 수립하고 집행하고 감독한다. 그런 의미에서 '정책 결정 의사 조정 기구'인 것이다.
여기애서 군과 외교와의 관계릉 짚고 넘어간다. 당은 군에 대해 '절대영도'를 집행한다. 즉 군이 외무에 주도권을 가질 수 없다. 이는 개혁개방이 심화돠고 경제건설이 하나의 중심으로 자리잡으며 강화된다. 중앙위와 정치국에서 군의 자리는 보장되지만, 그 정치적 영향력은 제한적으로 표출된다. 표는 있다. 군과 외교와의 관계는 계통에 연관된 것으로 한정되며, 당 중앙에 끼치는 영향은 계통 관련 업무 내에서의 의견 제시로 제한된다. 관에 대한 당의 우위가 엄격히 지켜지는 것이다.
씽크탱크(智库, zhiku, 지고) 역시 이 과정에서 보고를 생산하고 정책을 수립하고 외교 전반을 조망하며 지식 생산과 연구 축적으로 기능한다.
3장. 공산당 지방조직과 기층조직.
중국 공산당 지방조직은 별 게 없다. 중앙당 조직구조와 대동소이하다. 지방 당 대회를 하고 상무위원회가 있고 판공청으로부터 조직부 선전부 재정부 통전부 정법위 기율검사위 등등이 있다. 다만 군부는 빠진다. 그렇다면 지방은 무엇인가. 성급, 지급, 현급의 3단으로 구분해볼 수 있다. 22개 성, 5개의 소수민족 자치구, 4개의 중앙직할시, 홍콩, 마카오등 특별행정구역이 성급에 속한다. 지급은 시급으로도 부르는데, 시 단위 역시 여기에 편제되어있다. 마지막 현급은 지급 이하의 행정단위로, 지급시 산하의 시할구, 현급시, 자치기등이 여기 해당된다.

지방 기층 조직은 총합흐여 약 60만개이다. 하지만 기층에는 '단위'로 포괄되는 기업과 조직의 기층조직이 또 있다. 그 총수는 '단위'와 '기층'을 합하여 486만개에 이르른다. 지역의 비중이 12%에 불과하다.
기층조직의 설립에는 세명 이상이 필요하다. 기층 조직은 연간 4회의 당원대회를 진행하고, 당 서기가 '소집'하고 '주재'한다. 당의 기초 조직원리는 중앙으로부터 기층을 일관한다. 업무보고를 하고, 상급 당대회에 진출할 후보를 심가하고 선출하며, 예비 당원의 입당을 결정하고, 상벌을 주관하며, 기타 중대사항을 결정한다. 중앙과 기층의 비교가 의미심장하다.
영도기관인 지부위원회 역시 일상업무를 담당하며 당대회를 집행하고 당 서기등 지도부를 투표로 선출한다. 이는 상급당부에 의해 확정되며, 필요에 의해 상급당부는 기층에 지도부를 파견하기도 한다. 기층 단위의 업무는 당 서기에 의해 주관된다. 당원대회를 준비하고, 일상업무를 주관하고, 업무를 보고하고, 현급 공산당부의 집체교육을 1년에 1회 이상 받는다. 적은 일이 아니다. 따라서 당 서기에게는 인센티브가 주어진다. 상급조직의 영도간부가 되거나, 공무원, 공공기관에 채용되기도 한다. 인센티브가 있으면 관리감독도 이루어지는 법. 상부조직은 기층 당서기를 평가하고 관리한다.

당원들은 삼회일과를 수행한다. 당연히 당원대회에 참여해야하고 지부위원회에 출석해야하며 당 소조 회의를 해야한다. 일과는 당 정치학습을 말한다. 연에 한번 진행되는 조직생활회도 필수다. 연간의 정치활동을 벙리하고 스스로 평가와 반성을 작성하여 제출한다. 왜 조직생활'회'냐, 제출된 평가서를 집단적으로 강평한다. 이를 민주평의라고 한다. 자기평가, 당원 상호간의 평가, 민주평가(대개 투표)의 순서로 평의가 진행된다. 이걸 누가 주재한다고? 당 서기가 주재한다.
그런데 간부당원은 간부생활회를 또! 한다. 그러면 끝이냐? 정치 일정에 따라 간헐적으로 잡히는 일반당원 대상의 조직생활회와 영도간부가 참여하는 민주생활회가 또 잡힌다.
- 그 결과 민주생활회는 전국적으로 매우 진지하게 개최되었다. 중국 언론에 등장하는 “(영도간부들이 민주생활회에서) 진검승부를 한다(眞刀眞槍)”, “얼굴이 붉어지고 가슴이 뛰고 진땀이 난다(紅臉心跳出汗)”라는 표현은 민주생활회가 어떻게 개최되었는가를 잘 보여준다. -
글자만 봐도 내가 다 땀이난다... 이짓거리를 진짜 다 한다고...? 근데 그게 끝이 아니다. 당원대화가 있다. 1년에 1회 이상 당 간부와 평당원과의 대화를 마련해야 한다. 이 모든 것이 규정으로 정해져있다는 것은 역설적으로 간부들도 이거 잘 안굴리는 거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게한다.
3부. 공산당 당원.

그렇다면 당원들의 직업분포는 어떻게될까. 노동자, 농민의 비중은 하락일로이다. 노동자 비율은 지속적으로 하락하여 2021년에는 6.8%에 불과하다. 농민 역시 그 비중은 27.1%로 전체 인구구조 속에서 농민의 변화를 감안하면 인구수대비 많은 편이나, 이는 기층위원회의 구조 차이에 기인한다. 향진의 기층위원회는 독립적인 기관이지만 가도의 공작위원회는 파견기관이다. 더하여 도시에 거주하는 농촌호구와 도시호구의 격차는 이런 차이를 벌리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중국 공산당은 원래도 간부와 기술직의 정당이었지만, 개혁개방이 진전되면서 이와 같은 경향은 더욱 강해진다. 2021년 관리기술직의 비중은 27%로, 농민과 비슷한 비율을 차지한다. 당정기관의 당원은 전체의 8%이다. 당정기관의 고정된 비율은 관료 총량의 관리와 관련이 있다. 당정기관 공무원 총 수가 딱 7백만 정도이다. 소속인원은 에지간하면 다 당원인 것이다.
여기에서 흥미로운 포인트는 사영기업가는 당원 중 얼마의 비율을 차지하느냐는 점이다. 조사에 따르면 1993년에는 13%의 사영기업가가 당원이었으나, 이 비율은 점차 증가하여 2004년에는 34%를 기록한다. 2018년 사영기업의 총 수는 약 1,561만 개로, 이를 비율에 따라 계산해보면 당원인 사영기업가의 총 수는 약 530만이다. 그러나 당원 인구통계에는 사영기업가 분류가 없다. 그렇다. 기타로 분류된 것이다. 기타 7.6%, 720만의 대부분은 사영기업가일 가능성이 높다.
당원들의 학력 통계 역시 흥미롭다. 1949년 전문대졸 이상자는 0.32%였으나, 이는 1980년 3.23%로, 2000년 21.08%로 증가한다. 2021년 6월에는 52% 이상으로 나타난다. 중국의 대졸자수를 연도별로 확인해보니 1980년에는 2-3%대, 2000년대에는 20%대, 2020년대에는 60%대로 증가했다. 전반적으로 전체 인구통계상 학력분포와 일치하는 경향을 보인다.
여성당원의 비율도 1949년 11.8%, 1980년 13.46%, 2021년에는 28.8%로 나타난다. 증가하는 경향이지만 여전히 남성의 우위는 확인된다. 소수민족 출신 당원 비율 역시 지속적으로 증가한다. 1949년 2.53%에서 1980년 4.91%로, 2021년 7.5%로 나타난다. 그러나 전체 인구통계에서 소수민족 비율이 9%임을 고려해보면 인구 비중에 미치지는 못한다.
그렇다면 당원은 어떻게 되는가. 성인이고, '선진분자'이고, 당연히 사상적 동의와 당비를 내고 당의 활동에 성실히 임할 것이 요구된다. '선진분자'란 객관적으로 소속 집단에서 우수한 사람임의 증명이다. 따라서 이 과정에서 중국 공산당의 엘리트 정당으로써의 특성이 드러난다. 전위당원 되려면 엘리트여야한다.
정말 소소한 개그포인트이다. 공산당원들이 <당장>대로 산다면 중국은 공산주의가 실현된 지상낙원이 될 것이라니 ㅎㅎ...
입당절차는 <공산당 발전당원 공작세칙>에 규정되어있다. 이 절차는 지침서에 따라 25개에서 30개로 구성된다. 대략적으로 구분하면 입당 적극분자- 발전대상- 예비당원- 정식당원의 순으로 진행된다. 입당 신청서를 내면 당 상층의 수용에 따라 입당 적극분자 여부가 결정되고, 입당 적극분자가 되면 '육성연계인'의 지도하에 정치학습과 조직활동, 봉사활동으로 구성된 육성 교육을 거친다. 이 과정에서 성취는 육성연계인에 의해 평가되어 보고되고 심사된다. 이 단계를 지나면 폭넓은 의견청취를 통해 발전대상으로의 승급, 아니 편입이 결정된다.
발전대상이 되면 무엇을 하느냐, '입당소개인'이 임명된다. 이는 보통 적극분자 단계에서의 육성연계인이 맡는다. 공산당에서 일반적으로 볼 수 있는 후견-피후견관계는 비서와 상급자, 그리고 기초 당 조직에서도 관찰된다. 그리고 또 일련의 교육이 시작된다. 이 단계의 차이점은 정치심사에 있다. 사상적 불순함이 없는지, 당의 역사적 관점에 동의하는지, 범죄사실이 없는지, 직계친족이 정치적으로 정결한지 심사를 받고 이를 통과하면 예비당원 승급... 아니 입당을 신청한다. 신청이 들어오면 이에 대한 국가기관의 검증이 시작된다. 범죄사실 조회로부터 사전청취까지 자료에 대한 검토가 이루어지고, 승인이 나면 결과를 서면으로 고지하고, 입당지원서를 발부한다.
예비당원이 된다고 과정은 끝나지 않는다. 앞전에도 이야기되었지만, 소속될 기층의 당원대회에서 본인 스스로에 의한 본인의 평가를 보고하고, 후견인인 입당소개인의 동료평가가 있고, 지도부의 심사결과 발표, 당원들의 토론과 투표로 입당여부가 결정된다. 그런다고 또 끝이 아니다. 상층의 비준이 필요하다. 비준을 요청받은 상층은 3개월 내에 심사를 완료하여야만 한다. 이렇게 절차가 끝나면 입당의식이 진행된다. 입당 의식은 기층 또는 그 상층에서 진행되지만, 가끔 이벤트가 있기도 하다. 창당 100주년 입당 선서 활동 등이 그 예이다. 입당 선서는 <당장>에 적힌 바대로 아래와 같다.
“나는 중국공산당에 가입하기를 원하고, 당의 강령을 옹호하고, 당의 장정(章程)을 준수하며, 당원의 의무를 이행하고, 당의 결정을 집행하며, 당의 기율을 엄수하고, 당의 비밀을 수호하며, 당에 충성하고, 공작에 적극적이며, 공산주의를 위해 죽을 때까지 분투하고, 당과 인민을 위해 일체를 희생할 준비가 항상 되어 있으며, 영원히 당을 배반하지 않을 것이다(永不叛黨).”
하지만 선서했다고 끝나지 않는다. 예비당원이 정식당원이 되기까지는 예비기간이 필요하다. 이 기간동안 품행이 방정하고 사고를 안치면 정식당원으로 전환된다. 정말 길고 복잡하고 투철한 학습과 활동이 요구되는 과정이고, 전체 소요기간은 2년 6개월에서 3년 정도이다. 이중 예비당원 기간은 1년으로, 필요에 따라 연장될 수도 있어 총 기간은 4년 이상이 될 수 있다.

입당신청을 2천만이 해도 최종적으로 당원이 되는 비율은 적극분자에서 반수, 발전대상에서 1/5에서 1/10으로 줄어든다. 처음의 신청자에서 5%에서 10%만이 정식당원이 되는 것이 가능한 것이다. 입당동기는 이념적 동기, 실용적 동기로 구분할 수 있는데, 당원들을 여러 세대로 구분해보면후기로 갈수록 실용적 목적이 두드러진다. 그렇다면 엘리트 중 당원의 비중은 어떨까. 당정간부는 95%가 당원이다. 그러나 사영기업 관리자나 전문기술직, 과학기술인의 경우 당원비율은 상대적으로 떨어져 50% 정도를 나타낸다. 이는 '두개의 엘리트 경로'가 존재한다는 의미이다. 이는 마오쩌둥 시대로부터 이어져 개혁개방을 거치며 존속, 강화되었다.
그렇다면 당원들은 본인들이 목적한 실용적 목표를 이루었을까? 대체로 당원들이 교육훈련의 기회도 많고, 승진도 빠르고, 전반적인 커리어패스가 비당원에 비해 순조롭다. 이를 설명하는 두가지 이론이 있다. 하나는 정치자산 효과로, 공산당에 투입한 자원이 공산당의 관계망을 통한 지원으로 나타난다는 의미이다. 다른 하나는 자기 선택 효과로, 선별과 심사를 거쳐 당원을 뽑는 만큼 당원이 되는 사람이 아닌 사람보다 자질 면에서 유리하여 기회를 많이 제공받는다고 설명한다. 전자가 다수설이다.
당원 시켜준다고 할 자신 있는가 물어보면 어마어마한 인싸들이나 당 가입이 가능한 게 아닌가 싶은 의심이 든다. 기층 당서기는 대체 뭘 하면 저 업무량을 소화하면서 사교활동도 해서 상층으로 올라가고 영도간부가 되는걸까. 입당과정만 해도 진빠지는데 여기에서 정치적 커리어를 쌓아서 상층으로 도약하는 과정과정들에 들어가야만 하는 노고는 기히 상상이 어렵다.
4부. 결론.
중국 공산당의 영도체제는 생각보다 견고하다. 천안문과 도농격차, 소득격차와 수많은 모순이 중국 사회를 엄습하지만, 중국의 체제는 생각보다 탄력성과 복원력, 말하자면 체제의 인성(toughness)이 강하다. 이는 중국 공산당이 개혁개방으로 아루어낸 중국 인민의 빈곤으로부터의 탈출과 삶의 질 향상에 기인한다. 더하여, 장쩌민과 후진타오 시기 당이 격차사회를 인지하고 진행했던 정치적 운동들과 사회에 촘촘이 배어들어있는 중국 공산당, 그 중에서도 기층의 지도와 기층과 상층을 아우르는 당 중앙, 그리고 이를 촘촘하게 연결하는 수평적, 수직적 체계가 이런 모순들을 제도 내에서 어느정도 완화해주는 경향이 있다. 객관적으로 측정된 제도와 정부에 대한 만족도 역시 이를 보여준다. 2016년 정부 만족도 조사에서 만족도는 82.5%에 달한다. 시진핑 시기만을 조사한 조사에서도 만족도는 76%에서 90%를 오르락내리락하며 란정적인 경향을 보인다.
그러나 중국 공산당 영도체제에도 몇가지 문제는 있고, 이는 시진핑 정권 들어서 개선된 부분도 있지만 악화된 부분도 있다. 이를
1. 통치정통성 문제
2. 국가 통치 체제의 문제
3. 이데올로기와 공산당 통치 정당화 문제
4. 엘리트 정치 체제의 문제
로 구분해본다.
앞서 당대회와 전인대회의 괸계에서도 확인되지만, 국가기구도 존재는 한다. 존재는 하는데, 당을 중심으로 서술된 데에는 이유가 있다. 말이 절충형 체제라고는 하지만 국가를 영도하는 것은 당이다. 말인즉슨 당은 스스로를 제외하고는 누구에게도 책임지지 않는다. 기층은 상층에, 상층은 정치국에, 상무위원회에만 복종할 뿐, 그 영도 대상은 당에 직접적으로 책임을 물을 수 없다. 이것이 대표성의 문제다.
민간의 자발적인 선거로 후보를 선출하는 것은 촌민위원회와 사구 거민위원회 뿐이다. 앞장에서 안나왔다는 것은 당 조직이 아니라는 뜻이고, 별 의미가 없다는 뜻이다. 향과 진에 대한 기층 선거가 후진타오 시기 시도되었지만, 시진핑 시기 철회되었다. 기술적으로는 참여가 보장되지만, 그 제도가 소용된 적은 없었다. 이는 업적 정통성은 보장해줄 순 있어도 결코 절차적 정통성은 획득할 수 없는 구조다. 직선제가 가능해지기 전까지는.
민중에 의한 견제기제가 없으면 어떻게되는가. 정책이 간부들의 마음대로 결정되고 이런 모순은 소위 '군체성사건', 즉 대중시위로 이어진다. 일 400-500건의 군체성사건은 아직까지는 잘 통제되고 있다. 그러나 중국의 경제성장률이 모순을 돌파할만한 여력을 부담하기 힘들게된다면, 언제고 이런 모순의 축적은 체제의 뇌관이 될 수 있다.
시진핑 시대 들어 강조되는 공산당의 전면영도 역시 통치체제의 문제를 촉발한다. 기존 당 조직이 사회공공서비스에도 진출한다는 것은 민생을 위해서도 팔요한 일이지만, 그 과정에서 발생한 기존의 자율적인 사회서비스와 NGO, 농민공들의 자율적인 공동체와 노동운동은 당에 의해 질식당하고 있다.
시진핑의 당의 전면영도는 사회에서 분출하는 대안적 목소리들을 질식시킴과 더불어, 당 기구의 질서를 흐리고있다. 중앙개혁위원회를 통한 정치국의 우회 역시 기존의 규범을 흐트러트리며, 일인지배체제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작용한다. 불학실한 후계구도 역시 기존의 집단지도체제에 대한 도전이다.
그러나 동시에 시진핑시기 일어난 일련의 제도정비 성과는 역설적으로 당장과 헌법에 의한 지배, 의법치국과 의법집권 원칙을 강화하는 방향으로도 직용하며, 당의 영도 체제를 정교화했다. 물론 이는 권력의 합법화를 위한 통제기제의 강화로도 해석할 수 있으나, 이것을 집단지도체제의 해체와 기존 당 구조의 후퇴라고만 볼 수 없는 이유이다.
물론 지금과 같은 '영도소조정치'의 경향이 강화되고, 법치가 권력의 도구로 전락하며 국민의 기본권이 보장되지 않는 상황이 지속된다면 체제의 건전성은 위기로 접어든다. 2015년의 7.09 탄압은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이데올로기는 현행 영도체제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가. 실제로 맑스-레닌주의 이데올로기를 믿는 사람은 중국에서도 많지 않다. 그러나 이데올로기의 고수가 국가에서 수행하는 기능이 있다. 첫째로, 당 중앙 정치권위의 기원을 정당화한다. 둘째로, 당 중앙의 업적을 평가하는 올바른 기분을 제시한다. 이데올로기의 헤게모니가 유지된다는 것은 지솓벅으로 체제를 유지할 동력을 얻는 과정이기도 하다. 평가의 가부를 결정할 권한이 피평가자에게 있는 것이 권력의 정당성의 발판이다. 마지막으로, 일반 국민, 특히 엘리트들의 지지와 동의를 이념으로 통일시킬 수 있다. 이데올로기의 설득과정에서 군중은 이데올로기에 대한 토론을 통해 정치질서에 대한 합의지반을 구축한다. 요는 군중이 이데올로기를 믿느냐 아니냐가 아니다. 믿는 상태가 유지되느냐이다.
역사적으로 통치자들의 지도이념은 나름의 방식으로 시대와 호흡해왔다. 마오쩌둥의 지도노선은 근대화 건설(실패했지만)과 당의 영도체제의 전국화, 점면화를 이루었고, 덩샤오핑의 지도노선은 중국이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며 빈곤으로부터 탈출할 수 있는 길을 제시했다. 장쩌민은 '삼개대펴 중요사상'을 통해 현실과 당정의 괴리를 봉합하며 개혁개방 노선을 확고히했고, 후진타오는 '과학적 발전관'을 통해 개혁개방이 가져온 지역간 격차, 소득의 격차, 사회적 안전망의 문제에 대해 개선하고자 했다.
그리고 시진핑의 시대에 중국은 소강사회를 달성하고 공동부유를 향해 나아가며 "사회주의의 현대화된 강대국" 건설을 위해 매진한다. 문언으로 직접 명시되지는 않았지만 이는 맥락상 미국에 버금가는 초강대국이 되겠다는 선언인 것이다. 요는 목표를 달성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목표를 달성했다고 국민들을 설득할 수 있는 능력에 있다. 시진핑 시대가 소강사회와 공동부유를 이루었다고 국민들을 설득할 수 있을지는 물적 조건의 향상과 당의 영도 관철에 달려있다.
마지막으로 집단지도체제의 지속성 문제가 있다. 영도소조정치와 후대지정의 불투명성은 집단지도체제가 그 기능을 잃고 시진핑 1인에게로 집중되는 과정에 있음을 보여주는 한 단면이다. 그러나 영사적으로 볼 때 당 중앙의 통치체제는 집권형과 분권형 사이에서 운동해왔다. 모주석의 시기는 절대집권형 체제였고, 등소평의 시기는 분권형으로의 이양기였다.
장쩌민 1기가 분권형이었다면 2기는 집권형이었고, 후진타오의 시기는 분권형이었다. 그리고 시진핑의 시기, 체제는 분권형에서 집권형으로 이동하고 있다. 요는 시진핑에게 당 주석의 직위, 그리고 최후 결정권이 주어지느냐에 있다. 총서기와 영도적 지위를 가르는 권한은 상무위원 중의 1순위이냐, 최후 결정권을 갖냐에 달려있으며, 당 주석직은 모주석 외에는 허락되지 않은 자리였다. 20차 당대회에서도 이 권한과 직함은 시진핑에게 수여되지는 못했다. 앞으로 이 권한과 직함이 수여될지의 여부는 권력의 향배가 어느 반향으로 향하는지를 보여주는 하나의 지표가 된다.
중국의 체제는 다른 국가의 그것과 상당히 상이하면서도 폭넓은 약진을 거듭해오며 시대에 맞게 변화해왔다. 그 복잡한 구조를 세세히 들여다보는 것이 꼭 실질에 부합하지는 않을 수 있으나, 상층으로부터 기층을 일관하는 조직원리와 그 운영은 중국 공산당이 모순을 관철하는 원동력이 어디서 오는지 이해하는데 단초를 제공해준다. 당 중앙으로부터 기층까지 동일한 조직원리와 촘촘한 상호연결이 전체 조직을 유기적으로 연결해주고, 열망이 있는 사람들이 입당을 하고 간부가 되고 승진을 하는 과정들은 당의 역동성을 제공해주는 동력이 된다.
성인의 10%에 달하는 선진분자들이 당원이 되고 간부가 되며 현황을 보고하고 판공청의 조율에 따라 움직이며 개별 이슈에 대한 영도소조의 영도가 조직을 민첩하게 움직이는 구조들은 이 체제의 인성을 구조로써 드러낸다. 물론 다양한 모순들, 개인의 기본권으로부터 견제받지 않는 간부들의 자의적 결정과 그로 인한 피해, 반체제 인사들에 대한 탄압과 오늘날 시진핑이 보여주는 중화 제국주의의 발흥은 이 체제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의문을 던지지만, 동시에 중국 공산당이 보여주는 산업과 외교, 기술 등 다방면에 걸친 성과 역시 촘촘하고 민활한 당의 영도체제가 가진 저력이다.
320x100
'서평-정치사회 > 정치'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중국의 통치체제 3:국가 헌정체제>, 조영남 (1) | 2026.01.23 |
|---|---|
| <중국의 통치체제 2 - 공산당 통제 기제>, 조영남. (3) | 2026.01.21 |
| <독재자의 핸드북>, 브루스 부에노 데 메스키타, 알라스테어 스미스 (1) | 2026.01.12 |
| <세계 진보정당운동사>, 장석준 (2) | 2025.12.15 |
| <미국 공산주의라는 로맨스>, 비비언 고닉 (1) | 2025.12.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