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사는 다양한 요소의 총체가 겪어온 경로의 총합이다. 물질구조가 경제구조로 연역되고 상부구조를 구성한다. 이 비율은 하부구조와 상부구조의 역동에 따라 시간 속에서 변화 발전하며 흐름을 만들어나간다. 인구로부터 식량, 상품, 주택, 도시로 요소요소의 숫자와 형태를 통해 역사를 세밀하게 묘사한다.
수, 그중에서도 가장 기초적인 인구로부터 출발한다. 인구를 추산하는 방법은 무엇인가. 자료와 비율이다. 호적자료와 당대 체제, 고고학적 발굴을 근거로 단위 지역의 인구를 추산하고, 인구비율을 통해 역내 인구를 추산하고, 유사 규모의 다른 권역들과 상사하여 인구의 범위를 잡아나간다. 역사의 흐름 속에서 다원적인 동시성, 콩종크튀르는 왜 발생하는가.
수로 출발하여 인구밀도와 문명의 발달로 나아간다. 문명을 발달시키기 위한 문턱밀도는 어느정도일까. 제곱키로미터당 20명을 그 척도로 본다. 문화권별로 나눈 세계의 지도에서 이 조건을 만족하는 것은 유럽으로부터 중동, 인도를 거쳐 중국과 한국, 일본으로 이어지는 구세계다. 지리환경으로 노정되는 문명세계의 강역인 것이다.
인구의 밀도만큼이나 분포형태도 중요하다. 단위마을의 가구수를 통해 서유럽과 중앙유럽 단위 지배체계 내에서 농민-지주의 역학관계 우열을 비춰본다. 단위 마을의 규모가 작을수록, 지주의 무력투사와 통제가 용이해진다.
그렇다면 인구는 어떤 때 증가하고 어떤 때 감소하는가. 장주기에 걸친 인구곡선, 출생/사망수를 통해 추산한 인구추세의 가감을 통해 전반적인 흐름을 짚어본다. 17-18세기 프랑스의 인구에 대한 코멘트가 눈에 띈다. 프랑스는 유럽의 다른 권역에 비해 인구포화에 일찍 다다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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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앙시앵 레짐에서 인구는 어떻게 변화하였나. 인구가 포화에 도달하고, 종말의 네 기사가 도래한다. 기근, 전쟁, 질병, 죽음이 드리우고 숫자로 표현되는 인구의 감소 이후 새로운 삶이 자리한다. 그것이 구체의 흐름이었다. 잦은 페스트와 천연두, 전염병들이 사회에 끼치는 영향을 사회 고위계층의 도피와 질서의 종말로 단적으로 드러낸다.
거기에 더하여 인구의 이동 또는 유목민족의 틈입이 나타난다. 파미르고원과 몽골 초원을 중심으로 유목민들이 이동하고 나아가며, 중국 남해안에서는 동남아시아로 화인들이 진출한다. 서에서 동으로, 동에서 서로 유목민들의 파도가 세파에 따라 물결친다.
왜 수인가, 수로 표상되는 것들이 물질세계의 기초를 드러내주며, 그 너머의 인간생활을 조각하는 단편이 되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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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인구에 영향을 끼치는 물질문명의 구성요소들은 무엇이 있는가. 식량이다. 유럽에서는, 밀이다. 밀의 기원과 재배방식, 품종과 밀의 경작, 휴경과 삼포제로부터 경작에 사용된 도구들을 망라하며 지배곡물이 구성한 사회체제의 단면들을 드러낸다.
밀은 지배작물이면서 상품작물이었다. 따라서 대개의 실제 식탁을 채운 것들은 도정을 덜한 밀과 호밀, 귀리, 보리등의 대체제들이었다. 그 가격차이를 통해 시대적 식량수급 사정을 따라가볼 수 있다.
밀은 생산성이 낮은 작물이다. 15-18세기까지 밀은 종자 한알에 6정도의 수확비를 보여준다. 이 수확비는 개별 국가들의 물적 조건과 기술발달에 따라 권역별로 다른 수치로 나타난다. 중세 후기 3-3.7정도의 수확비를 보였던 밀은 영국을 중심으로 집중적인 생산성 향상이 일어나 15세기 말에는 4.7, 19세기에는 7의 수확비까지 증가한다. 이러한 기술발전은 프랑스-동유럽으로 점진적으로 확산되며 19세기 이후 10정도로 나타난다.
그렇다면 왜 밀인가. 당대인들의 식단 칼로리 구성비를 보면 밀과 호밀 등 곡류를 통한 칼로리섭취가 70-80% 이상으로, 곡물이야말로 다수 농민의 삶의 원천이었기 때문이다. 식단의 탄단지 구성비는 지역에 따라 상이하게 나타나기는 하나, 대개의 경우 농민의 식단은 거의 곡물로 구성되었다. 곡물은 빵으로, 그리고 죽으로 섭취되었으며, 별다른 양념 없이 곡물과 일부 유제품, 소금이 식단의 주요 구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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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을 기초로 수의 세계를 확장해나간다. 그렇다면 생존을 위해 필요한 곡물의 양은 얼마인가. 그리고 이를 소비하기 위해 필요한 노동시간은 얼마인지, 총 연간 노동시간대비 필수재 소비에 소용되는 노동시간의 비를 통해 당대 도시생활자들의 삶을 재구한다. 도시의 사람들이나 농민들이나 그 여건이 그리 좋지는 않았고, 시대가 지나간다고 해서 꼭 삶의 여건들이 나아지지만도 않았다. 농부는 자신이 재배한 밀은 한정적으로만 먹을 수 있었고, 식단의 구성은 다양한 곡물과 수확물로 겨우겨우 보충되었다.
브로델의 서술은 콩종크튀르, 다원적인 동시성을 갖는 덩어리들간의 비교를 통해 완성된다. 유럽 내에서 이는 영국과 프랑스 기타등등으로 드러난다면 세계적 차원에서는 유럽과 중국, 우랄산맥 이서와 중화대륙간의 물적 조건의 비교로 나타난다. 그렇다. 쌀이다.
쌀은 단위면적당 생산량이 밀에 비해 압도적으로 높고, 쌀-쌀, 쌀-보리 등 이모작을 통해 생산성을 극대화할 수 있다. 동일 면적 대비 취득칼로리에서 쌀은 밀의 다섯배다. 이런 쌀의 경작에는 배수와 관개, 모내기와 수확 등 집단적인 규율과 노동의 조직, 집약적 투여가 필요했고, 단위면적당 인구밀도를 높여 유럽의 그것과는 다른 종류의 사회제도 발달을 초래했다.
그리고 옥수수가 있다. 옥수수의 종자대비 수확비는 1대 80으로, 상대적으로 다른 지배곡물에 비해 낮은 노동투입을 요구한다. 옥수수의 재배는 남미의 높은 인구밀도와 독특한 사회구조 및 공출체제로 이어지는 동인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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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로부터 쌀, 옥수수와 카사바까지 지배적 작물은 문화와 생활 양태에 영향을 준다. 그러나 이 변화가 단선적인 것은 아니다. 지배작물이 본연의 위치를 획득하기 위해서는 사회의 문화와 조직구조가 상보적으로 작용하여 작물 자체의 개량과 생산성 향상으로, 환경 자체에 대한 변화를 통한 생산구조의 수립으로 이어져야 한다.
틀짜기 기술(technique d'encadrement)이 개재된다는 건 그런 의미다. 사회의 구성이 지배작물의 재배와 발전에 맞추어 다른 경쟁작물과의 경쟁압을 이겨내고 중심적 위치를 지키는 것, 작물과 문화가 상보적으로 변화발전하는 것이다.
작물 다음으로는 사치품, 고기와 유제품, 소금과 물로부터 정향과 후추, 육두구까지 다양한 식자재의 레이어가 펼쳐진다. 사치품이란 무엇인가, 한 시대의 사치재가 다음 시대의 보편재가 된다. 작은 차이가 사치를 가르고, 계급적 분별이 계급 상승의 욕망을 자극하며 변화발전의 원동력이 된다. 가짜 수요란 없다. 공급이 수요를 자극하고 사치재가 보편재가 되는것이 상업자본주의 시대로부터의 오래된 유산이자 이 체제의 근원이다.
역사의 운동은 인구를 주요지표 삼아 관찰할 수 있다. 흑사병이 낳은 인구의 감소는 상대적으로 생활여건을 증진시켰고, 다시 인구한계에 이르기까지 전반적인 생활수준의 향상을 낳았다. 인구압은 정점을 지나면 거세지고, 이는 16세기 이후 실질적인 식생의 빈곤으로 드러난다.
지역별로 이는 편차를 보이지만, 중부 유럽으로 갈수록 전반적인 식생의 악화, 곡물구성의 낙후화와 육류 소비량의 감소가 드러난다. 고기와 유제품의 소비량, 그리고 계란의 가격변화는 당대 경제 보편적 소비재로써 전체 콩종크튀르의 변화를 드러내는 지표로써 사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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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신료, 후추, 설탕 등 기호품의 이동과 소비를 따라간다. 후추가 사치품에서 보편적인 소비재로 이동한다. 공급량의 증가가 단가의 하락과 보편적인 사용으로 이어진다. 설탕의 제조과정에서 필요한 기구적 요구사항들에 대한 명시가 흥미롭다. 압착기와 증발을 통해 제조된 설탕은 플랜테이션에서 시장으로 나아가 주요 소비재로 유통된다.
음료, 그중에서도 물의 공급은 도시생활의 유지에 필수적인 요소였다. 로마의 수도교가 작동을 멈추고, 주요 도시에서는 물지게꾼에 의한 취수가 물 유통의 핵심이었다. 취수원의 관리는 전혀 되지 않았고, 그래서 마실만한 수준의 물은 그 자체로 상품이기도 했다. 펌프를 통한 기계화가 상수원의 대중적인 보급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술이 있었다. 포도주의 발원과 유통은 중세 상업세계에서 주요한 위치를 차지해왔다. 남부의 포도주가 북부로 빨려올라가는 과정에서 분업이 발달하고, 포도주의 짧은 상미기한은 이후 병입과 코르크마개라는 기술의 발전으로 보완된다. 오크통에서 병입으로 저장매체가 변화하고 유통량이 늘어나며 술 역시 사치재에서 보편재로, 대중적으로 향유할 수 있는 소비재로써 일상생활에 자리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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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도주가 나왔으니 맥주가 나오고 증류주가 나오고... 맥주생활권과 포도주생활권의 구분, 북방을 중심으로 한 증류주의 소비, 증류주의 기원과 술 소비에 있어서 콩종크튀르를 이루는 단위간의 상이성과 유사성에 대해 접근하며 향신료와 음료는 마무리된다.
그 다음으로는 주거생활로 나아간다. 집을 짓는 재료, 돌로부터 나무, 진흙, 그리고 벽돌에 이르기까지 중세적 주택재료가 어떤 과정을 거쳐 보편화되었는지 추적하며 당시 시민들의 거처와 일상생활을 주택의 단면과 적층구조로 보여준다. 당대 도시에서 고층이 서민주거로, 지상에 면한 2층이 주인집으로 활용된 예들을 보면 느낌이 생경하다. 방 한칸에서 한뎃잠을 자던 시절이 지금으로부터 봐도 그리 오래지 않았다. 벽체로부터 바닥까지, 짚과 풀로부터 타일과 태피스트리 장식벽지로 생활의 양상이 변화한다. 마루와 들보의 장식들이 변화하며 고전주의를 이루는 미학이 곳곳에 스며들고 전원생활에 대한 향수가 도시 근교의 장원건축 열풍으로 이어진다.
시선은 주택으로부터 가구로 이어진다. 단칸방에 짚을 깔고 더불어자던 시절로부터 의자가, 책걸상이, 다양한 가구가 생활공간에 들어선다. 창유리의 전파양상으로 짚어보는 지역의 풍족함도 하나의 포인트가 된다. 루아르강을 경계로 창유리가 보이지 않았다는 점에서 유럽의 부가 흐르는 통로의 경계가 드러난다.
그리고 난방, 벽난로로 대표되는 난방기구의 발전과 난로, 화로등을 통한 난방의 일상사가 펼쳐진다. 벽난로의 열효율을 보여주는 거울의 방에서의 에피소드가 흥미롭다. 왕의 식탁에서도 물이 어는 것이 당대의 난방이었다. 연통 구조의 혁신과 난방효율의 증대가 이를 완화하지만, 이를 통한 벽난로의 보편적 보급은 전반적인 연료사정을 악화시키기도 한다. 물론 그보다 더 윗지방에서는 그래서 난로와 화로를, 페치카를 사용하게 된다. 북구를 중심으로 한 난로의 활용태가 돋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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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 들어 압축적인 인구밀집은 주거 형태의 결정적 변화, 공용공간의 배치 변화와 저택의 소형화, 개인 공간의 마련을 낳는다. 사생활이 탄생하는 것이다.
대개의 경우 농민의 의복이란 몸을 덮는 거적떼기로, 특별한 축제용 의상의 경우에나 대를 이어 아버지에게서 아들에게로, 어머니에게서 딸에게로 전승되었다. 의복의 형태는 오랜 기간 동일한 형태로 고정되었고, 이와 같은 경우는 타국에서도 흔히 관찰된다. 시대와 세월에 따라 변화는 있었지만, 현대적인 의복 유행의 시작은 물적 조건의 성숙과 변화, 발전의 열망을 물질차원에서 현시하는 가늠자가 된다.
유럽사람들 정말 목욕 안한다. 오히려 15세기 이전 공중목욕탕에서 17-18세기에 비해 목욕을 더 했다는 점이 놀라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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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의 역사를 설명하며 동력원들에 대해 논한다. 역시 제일은 사람이다. 1인력의 출력과, 도구를 사용하는 1인력의 사용가치로부터 아시아의 인력활용현황으로 넘어간다. 운하에서 배의 인상을 인력으로 하다니 정말 사람이 썩어넘친다...
기타동물, 특히 사막의 유용한 육축인 낙타의 적재중량과 동력원으로써의 능력에 대해 확인한다. 500kg정도의 적재중량과 험지돌파능력은 낙타가 널리 사용되는 주요한 원인이었다. 단봉낙타와 쌍봉낙타는 봉 수의 차이뿐만아니라 서식 기후대도 다르다. 거대 낙타군이 사막의 요소요소를 이으며 거대한 물류망을 구성한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육축, 말의 육종과 사용을 통해 당대 사회에 접근한다. 기원전으로 넘어가는 말의 사용은 시대의 변천에 따라 마구의 발달과 다양한 동력원, 운반수단으로 나타났다. 전장에서 사용된 전마와 농사일에 사용된 농마의 구분은 반드시 그렇게 엄격하지만으 않았으며, 전문적인 육종과 사육 역시 체계가 구축되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걸렸다.
수의 법칙, 일정 인구에 따른 가축수의 비와 동종 영토에 대한 상사를 통한 추산은 당대 유럽 전체 육축의 수를 가늠해볼 수 있게 해준다. 2500만의 인구에 178만의 말은 전체 2억 인구에 대한 1400만의 말로 환산된다.
인력, 낙타, 말, 그리고 에너지라는 관점에서 물레방아와 물레방아가 생산한 에너지의 활용은 기술의 적용을 생활속에서 보여주는 예시이다. 로마 후기로까지 그 기원을 거슬러올라갈 수 있는 물레방아는 12-13세기부터 전역에서 활용되기 시작한다. 기술의 전수와 확산에는 다양한 집단이 간여했는데, 그중 수도원의 기여가 돋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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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에서 전공분야 나오니까 너무 신난다 인용을 안할수가 없다. 내가 이래서 기술사가 좋음... 18세기 갈리시아 인구 200만의 지역에 물레방아가 5천단위로 있고 1086년 둠즈데이북 대장에도 세번, 트렌트강안을 따라 5천여개의 물레방아가 있다는 것, 프랑스 전역에 6만개, 유럽 전역에 60만개의 물레방아가 공급하는 동력으로 제분에서부터 제재, 축융, 제지까지 다양한 동력이 필요한 작업을 수행해왔다는 걸 보면 유럽 기계공업의 역사가 새삼 아로새겨진다.
물레방아 다음으로는 풍차가 수직형으로 바람을 받고 풍향에 따라 방향을 돌리며 동력이 하부로 전달되어 습지의 양수로부터 광산의 광차, 물레방아와 마찬가지로 제분과 제재 등 다양한 용도의 기구에 동력을 공급한다. 네덜란드에 풍차가 발달할 수 밖에 없었던 입지조건, 편서풍대로부터 풍차의 사용이 확산되고 보편적인 동력원으로 자리잡는다.
이런 기구는 무엇으로 만드는가. 목재가 기구의 주요 재료가 된다. 목재는 기구물의 재료로, 열원으로 절찬리에 채취되어 사용된다. 숲의 존재는 주요 공업조직의 입지를 결정하는 요인이기도 했다. 목재의 효율적인 이동가능 범위는 제한되어있었고, 이는 광범위한 유통, 수송망의 발달을 촉진했다. 물론 그러고도 충분한 수요를 만족시킬수는 없었고, 이는 대체 에너지원으로 석탄의 수요를 야기한다. 같이 언급되는 뉴캐슬 석탄수요의 증가량이 놀랍다. 산출량의 세 세기에 걸친 퀀텀 점프도 그렇지만, 그 무역량 역시 사회의 변화를 짐작하게 해주는 지표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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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의 제약, 즉 에너지를 한 곳에서 다른것으로 이동시킬 수 없다는 점은 기술혁신의 국지성을 강화함으로써 연속적인 산업의 운영을 제약하는 지리적 요소로 작용했다. 주요 에너지원은 계절의 흐름에 따라 순환하며 정체를 만들어냈고, 당대의 산업은 이 순환에 맞추어 휴지와 가동을 반복했다.
제철소를 지주들이 농노를 활용해서 운영했다거나, 땔나무와 숯이 충분히 모일때까지 제철소를 가동하지 못했다는 점, 강철의 수요 자체가 전쟁의 간헐성에 맞춰 비정기적이었다는 점 등은 이를 뒷받침한다. 군사문화를 계승하는 군사집단에 비견할만한 기술문화의 전승자들, 기술집단의 본격적인 출현은 성숙까지 시간이 필요했던 것이다.
기술의 물적 기반으로부터 기술의 총체, 상품이 등장한다. 화승총으로부터 대포, 범선의 개발과 발전은 전쟁의 형태를 바꿔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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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약의 전장의 환경을 어떻게 바꾸었는가, 우선적으로 전쟁의 비용을 증가시켰고, 군사물품의 지속적인 수요를 창출했다. 전쟁은 노동집약적 산업에서 자본집약적 산업으로 형태가 바뀌어나갔고, 기술의 고도화는 분업화와 유기적 생산의 요구를 증가시켰다. 베네치아의 안보비용에 대한 단편과 영국, 프랑스의 대포 수는 이를 양적 스케일에서 비교대조할 수 있는 핵심 수가 된다.
그러나 이런 군사적 성취가 전 세계적으로 바로 영향을 미치는 종류의 것은 아니었다. 화약기술 자체는 문화접변을 타고 널리 받아들여졌고, 방자와 공자의 지역내에서의 우세는 힘의 균형이 뒤집어지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걸림을 보여준다. 각 문화권의 제국들이 가진 영해에 대한 장악력은 그 기술의 정체에도 불구하고 비교적 늦은 시기까지 지속되었다.
인쇄술의 전파와 금속활자 기술의 개발, 그리고 인쇄산업의 흥성은 제지술의 전파와 산업기반 축적과 맞물려 한세기동안 어마어마한 인쇄물의 제작으로 나타났다. 인구수 대비 총 판본수와 전체 출판 권수는 당대의 문화적 풍요를 짐작하게 하는 단편이 된다.
무엇이 원양항해를 구성하는 물적 요소들이었을까. 라틴 세일로부터 북구적 조선요소, 키와 선체 기술이 융합되어 카라벨이 탄생한다. 카라벨의 탄생은 지중해적 기술과 북유럽적 기술 베이스의 융합을, 유럽적 기술표준의 등장을 상징한다. 그러나 기술이 결정적인 요소였던 것은 아니다. 당대의 정크나 아랍 선박으로도 원양항해 자체는 가능했다. 원양항해를 추동하고 지속가능하게 했던 것은 지리적 요건과 도시자본주의적 팽창, 무엇보다도 새로운 것을 향한 추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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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운송체계의 발달이 세계를 하나로 묶는 등시간선을 자아낸다. 베네치아를 기준으로 한 우편소요의 등시간선이 100년단위로 그 등고를 바꾸는 과덩은 교통이 어느 축선을 기준으로 발달했는지 요약적으로 도시한다. 명백히 유럽 바나나다.
그렇다면 기술의 발전은 문명의 진보에서 어느정도의 무게를 갖는가. 결국은 맨 처음의 수로 다시 한번 회귀한다. 문명의 발전은 인구압의 함수요, 인구압은 식량생산량에 직결되는 수치이다. 기술의 발전 역시 같은 맥락에서, 농업에 대한 인간의 이해와 그 축적, 그로부터의 발전이 기술역량의 전승과 계발로 이어진다.
이 물질세계는 그렇다면 무엇으로 매개되는가. 바로 화폐다. 화폐란 무엇인가, 화폐는 재화와 동등한 가치로 통용되는 또 하나의 상품이요, 그 가치를 보증해주는 사회적 신뢰와 합의에 의한 교환체계이다. 화폐제도의 확산이 농촌에 끼친 영향이 농민의 증언으로 단적으로 드러난다. 다양한 기술서비스산업과 사유재산제도의 발달은 농촌을 시장으로 편입하고, 그 과정에서 농촌의 생산물은 금납화되어 교환경제의 틀 속에서 도시로 빨려들어간다.
유럽 이외의 화폐제도는 어떤 모습을 띄었나, 이중경제의 한 축인 전통적 경제에서 원시화폐의 모습들을 대륙별로, 미주로부터 아프리카, 서아시아와 동아시아에서의 교환양식을 중심으로 조망한다. 노예의 가치가 인도 한 조각이라는 문언이 당대의 물물교환사슬을 압축적으로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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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같은 원시화폐를 이용한 물물교환은 서구와 비서구의 접변 확대를 통해 오만 종류의 금융사기와 발권력 남용으로 퇴조하고 근대적 화폐체계로 종속된다. 여하튼 껀덕지만 있으면 사기칠 방법을 발명하는 것이 서구건 비서구건 사업가적 본성이다.
이런 이중체제, 전통적 체제와 근대적 체제의 공존은 비단 비서구에서만의 일은 아니었다. 서구 내에서도 지역의 고립도에 따라 원시화폐와 실물 화폐의 통용도는 다르게 나타났다. 스코틀랜드 선술집에서 맥주를 못으로 사는 것이 보여주는 전통적 경제와 근대적 경제의 병존은 16-18세기 전 기간동안 유럽 전역에서 드물지 않은 일이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아시아에서 화폐는 어떻게 구성되었나. 인도에서는 재주조를 통한 루피화로의 통합이 이루어졌다. 중국에서는 그냥 짤라서 썼다. 따라서 중국에서 통화량의 조절은 국고로의 귀금속의 투입과 퇴출에 따라 섬세히 조정되었다. 교환비를 맞추기 위해, 전체 화폐의 유동성을 조절하기 위해 국고는 저류지로써의 기능을 수행하며 그 속도와 교환비를 조정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귀금속의 유입과 화폐 유통량의 증가, 그리고 이를 통한 신용의 창출은 때론 귀족들의 금고로 퇴출되기도 했지만 전 유럽적인 거대한 사업 기회의 확장으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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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이런 실물화폐들은 어떻게 기록되고 대환되었나. 여기서 명목화폐가 나온다. 명목화폐는 실물 화폐의 교환기준으로, 장부상의 부의 환산값으로, 대변과 차변의 기준점으로 활용된다. 이런 명목화폐와 실물화폐의 일치는 가격균형의 차익을 낳고 차익을 노린 거래를 통해 이내 명목화폐로의 회귀를 가져온다.
그렇다면 전체 시장규모는 실물 화폐와 어떤 상관을 갖는가. 실물화폐의 양과 화폐의 유통속도가 경제 순환의 기준점이 된다. 그리고 그 부족과 차익분은 결국 신용을 창출한다. 환어음, 권리증서, 증권이 하나의 신용화폐가 되어 실물화폐의 부족분을 메우는 단위로 경제의 순환을 지탱한다.
원시 화폐로부터 주조권을 중심으로 구성되는 실물 화폐, 그리고 명목 화폐로부터 은행을 통한 신용의 창출까지, 우리가 오늘날 익숙한 경제의 요소요소들은 각각의 역사를 갖고 순환하며 경제구조의 기초를 이루고 지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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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질문명의 순환은 어디에서 일어나는가. 도시에서 일어난다. 로만 시티로부터 성채에 이르기까지, 도시가 지역의 거점으로, 하나의 독자적인 구성체로 사회의 순환을 담보하는 결절들이 된다. 그 도시의 하한은 몇명인가. 60가구에서부터 500가구까지 다양한 기준이 제시되고, 제시된 기준에 따라 시기별 도시화율이 달라진다. 가장 뒤처진 러시아러부터 가장 발달한 영국과 프랑스까지, 도시화율은 기준점을 500으로 잡느냐 2000으로 잡느냐에 따라 10%에서 40%까지 다르게 나타난다.
도시와 농촌의 긴장은 두 경계 사이의 융화로도 나타난다. 도시는 농촌의 생산물을 기반으로 지탱되는 사회구성체인 동시에, 주변의 농촌과 유기적으로 결합하는 단위이기도 했다. 계절과 풍흉에 따라 도시와 농촌의 경계는 흐려지고 짙어지며 미묘한 선을 타고 등락을 거듭한다.
도시를 둘러싼 성벽은 필요에따라 확장되고, 또 없어지기도 한다. 군사기술의 발달과 이에 따른 축성기술의 변화는 도시의 구획을 확장하고 또 고정시키며 고밀화를 촉발한다. 파리와 에든버러의 고층 건물들이 인상적이다. 무질서하게 발달한 도시에 근대적 도시계획들이 입안되고, 이는 정부의 필요에 따라 조정된다. 나폴레옹 3세 시기의 파리 개발이 한 예시이다. 밀집된 프롤레타리아 집결지에 대한 재개발을 통해 통치의 안정성을 확보해나간다.
도시와 영토국가, 그리고 근대성은 어떻게 형성되었나. 도시를 핵으로 시민성이 발현하고, 공동체의식이 생겨나며 도시는 영토국가 내에서 개별적인 정체성을 가진 단위구성체가 된다. 근대국가의 건설과정은 이런 도시들에 대한 국가의 포섭, 회유, 통합이기도 하다. 단위 도시에서 발현된 공동체의식을 국가 차원으로 엮어내는 작업들이 다양하게 시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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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아시아의 도시들은 어떠했나. 진정한 대도시가 아시아에서 출현한다. 인도로부터 베리징, 난징까지, 행정부터 상업까지 모든 기능을 망라하는 아시아의 대도시들 역시 도시로써의 기능을 충분히 갖춘 하나의 단위였다. 그런에도 불구하고 아시아의 도시가 갖는 차이점이 있었다면, 카스트와 종가로 구분되는 시민성의 발현여부이다. 무엇이 도시민의 정체성을 구분짓는가. 금융과 도시의 상업은 행정으로부터 독립적인가 종속적인가. 농촌과 도시와의 관계에서 우위는 누구에게 있는가.
도시의 원동력이 상업이긴 했어도 유럽의 대도시들을 진정으로 먹여살린 것은 지주와 귀족들, 그리고 왕의 관료들이었다. 국가 전역으로부터 수취한 부가 피라미드를 타고 아래로, 아래로 흘러내린다.
상트페테르부르크로부터 베이징, 런던에 이르기까지 도시의 지리적 특성과 성쇄, 그리고 당대의 풍경들이 지나간다. 런던의 성장과 도시의 삶의 모습들, 세관으로부터 정박지, 그리고 진흙탕을 누비는 무법자들과 빈민들, 교도소와 구빈원들이 저택과 공원들과 함께 교차된다.
이 도시들은 장기지속되는 근세 속에 기존 체제의 중심지로 그리고 물류와 상업, 신용의 결절로 기능했지만 그것은 온전히 자율적인 활동은 아니었다. 오히려 물질세계의 역동의 결과물이었다. 이는 이후 산업혁명의 과정에서 새로운 중심지를 기반으로 한 산업의 성장과 발달로 드러난다.
수로부터 작물, 향신료, 음료와 사치품에서 주택으로, 기술로, 화폐와 도시로 물질세계와 그 장기지속성을 보여주며 미시적인 역사들이 하나의 큰 흐름을 만들어나간다. 과연 근대를 만든 요소들의 축적은 어떻게 이루어졌나. 개개 물질세계의 변동이 서구와 그 이외에서 어떤 차이를 만들었고, 최종적으로 어떻게 발현되었나. 그 하나의 물음을 가지고 물질세계의 다양한 필터를 통해 서술을 따라가보는 과정이 새로운 질감을 더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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