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역사

<제5의 기원>, 로버트.L.켈리

stingraykite 2025. 11. 7. 09:23
우리 켈리선생님이 쓴 수렵채집 인류학 교과서를 보며 절찬리에 대가리가 깨지고있어서 복수심에 구입해서 봤는데 아니 선생님 대중서는 왜 이렇게 위트있게 잘 쓰십니까? 세계 정세를 조망하면서 현실의 문제들과 전망을 제시하고 고고학으로부터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역사는 진보하는가? 역사를 공부하는 이들은 누구나 하는 공통된 질문이다. 이 질문으로부터 수렵채집 사회에 대한 연구의 동기와 그 환상을 무참히 깨주었던 수많은 에피소드들로 글은 달려나간다. 마야의 종말론이 현대사회의 종말론자들에게 활용된 에피소드를 소개하며, 그것이 실제로 마야인들에게는 다른 의미로 작용했음을 보인다. 다가올 인류의 미래에 대한 부정론과 낙관론을 나누어 소개하며, 그런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세상이 도래할 것임을 단호하게 이야기한다.
오프닝 멘트로 고고학자들의 상황을 자조적으로 띄워올리며 외치의 시신 발굴과 시신 발굴을 통해 알 수 있었던 것, 신장 체중 성별 체형 부장품, 부장품에 대한 물질분석으로 확인한 내용들, 어디서 제조되었고 어떻게 제조되었고, 그의 계급은 어떠한지, 시신에 대한 정밀 DNA 분석과 식생 분석을 통해 그의 서식지, 생활상, 어느정도 규모의 그룹에 살았는지를 보여준다. 시신에 대한 법의학적 분석으로 누가 그를 죽였는지, 면식범인지 아닌지, 부장품의 회수여부를 통해 재조명하며 고고학 뽕을 거하게 넣으신다.
고고학의 대상, 시간과 공간을 정의한다. 결국 고고학은 선사시대 인류의 삶에 대한 학문이며, 이는 전 지구를 대상으로 인류의 출현부터 오늘날까지의 시간을 대상으로 한다. 물질로 남은 유물을 통해 재구할 수 있는 부분들은 재구하고, 다른 유물과의 비교를 통해 생활상을 비교하며, 빈 틈은 가설들로 얼기설기 채워나간다. 더 나은 분석방법, 근시기의 다른 유물의 출토, 현재 존재하는 수렵채집 집단들에 대한 인류학적 관찰을 통해 얻은 인간생태 분석이 그 틈을 메운다.
인류의 기원을 어디로부터 잡는가. 일단 영장류의 탄생으로부터 출발한다. 종의 계통분화와 분화를 거쳐 이윽고 영장류는 두발로 땅에 선다. 이때부터가 넓은 의미에서 호미닌의 시작이다.
그렇다면 이족보행은 어떤 환경변화로부터 촉발되었는가, 여기에서 마이오세의 식생변화, 초식동물의 범람과 그에 따른 숲의 축소, 이로 인한 영장류 인구밀도의 증가가 등장한다. 이족보행은 나무가 없는 개활지를 이동하는데 유리하고, 사족 보행에 비해 에너지소모가 적다. 증가한 인구밀도는 빠른 이동과 환경개척의 필요를 불러왔고, 이것이 이족보행이라는 진화로 귀결되며 호미닌 종의 분기점이 된다.
이후 260만년 전, 올두바이 석기가 개발된다. 석기는 돌의 선택, 돌의 운반, 일정한 타격방향의 유지를 통한 가공 등의 복잡한 판단을 요구한다. 그렇다면 이런 석기는 어떻게 사용되었을까. 저자는 스케빈저 가설을 제시하며 대학시절의 에피소드를 푼다. 교수님 앞에 학부시절부터 이정도 댓거리를 하는 양반이라 교수가 되나...
주요 논지는 석기가 호미닌의 치아구조를 볼 때 빠른 스케빈징을 가능케 해 수렵채집의 수득률을 높였을 것이라는 점이다. 바로 그 점에서 올두바이 석기야말로 호미닌 종의 첫번째 기술발전으로, 이후 이어지는 다른 발전들과 함께 그들을 인류가 걸어온 방향으로 인도한 효시였다는 것이다.
기술의 개발, 그리고 불의 발견은 두뇌용량의 진화와 함께 인류의 삶을 다양하게 바꾸었다. 모닥불 흔적은 자연적으로 분화되기 때문에 그 자취를 찾기가 쉽지 않다. 현재 발견되는 불의 흔적은 100만년 이전으로밖에 거슬러올라가지 못한다. 초기 인류는 번개로부터 불을 발견하여 손에서 손으로 옮겨 보관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앞전의 외치의 시신에서도 이런 불을 보관하기 위한 숯과 숯 보관함이 함께 발견되었다.
석기를 이용한 스케빈징, 불을 이용한 조리의 발달은 소화에 필요한 위장용량의 감소와 이를 통한 지구력, 그리고 두뇌용량의 발달로 이어졌다. 더 넓은 탐색범위에서 복잡한 방법으로 사냥을 시도하게 되면서 두뇌용량은 호미닌 속의 진화와 함께 지속적으로 증가하였다. 이는 100만년 전 아슐리안 석기라는 새로운 형태의 도구발달로 나타났다.
이족보행은 또한 호미닌 종의 조산과 이로 인한 육아기간의 장기화를 촉진했고, 이는 현대 수렵채집 사회에서도 볼 수 있는 성별분화로 나타나기도 했다. 사냥에 필요한 자질 자체는 육체적 차이보다는 인내심과 기민함 등 기질과 지능에 큰 영향을 받고, 이는 현대 수렵채집 사회에서도 여성의 사냥으로 종종 관찰되지만, 임신, 출산과 장기간(-4년)의 모유수유가 필요한 종족의 재생산은 필연적으로 여성의 역할을 채집으로 한정하도록 분화하게 하는 원인이 된다.
인류의 문화가 창달된 시점은 언제인가. 저자는 이를 언어능력의 진화, 상징체계와 예술의 발달, 매장문화의 등장, 나눔과 베품을 강제할 수 있는 부족적 문화의 형성으로 구분하여 접근한다.
호미닌들이 언어를 습득한 건 언제였을까. 언어능력이란 어떤 고고학적 증거를 통해 접근할 수 있나. 언어능력의 현재적 사례를 통해 과거 언어능력의 발달을 유추한다. 언어능력은 뇌용량, 전두엽의 하부 전뇌이랑의 발달과 사용을 통해 유추할 수 있다. 석기 제조 시험에서 올두바이 석기와 아슐리안 석기 제조과정의 뇌 활성신호 추적으로 이 차이를 구분하려 시도한다. 그 결과, 올두바이 석기를 만들 때에 비해 아슐리안 석기를 만들 때 전두엽 하부전뇌이랑(IFG)이 활성화되며, 언어활동과 좀 더 비슷한 양상을 띔을 확인할 수 있다.
다른 사례로는 복합도구의 사용이 나온다. 막대기 끝에 뾰족한 석기를 달아 만드는 복합도구는 다단계의 제작과정을 거친다. 나무를 잘라 원하는 형태로 만들고, 타르를 추출하고, 석기를 다듬고, 타르를 데워 석기를 창 끝에 부착하는 과정에서 작용하는 인지능력은 언어 사용에 필뇨함 인지능력과 같은 벡터를 갖는다.
마지막으로 언어 사용에 관련된 유전자의 활성여부에 대한 추적을 통해 언어 사용 시점에 대해 추정한다. FOXP2 유전자는 언어장애를 가진 사람들에 대한 유전자 비교대조 중 발견된 유전자로, 해당 유전자의 생성여부를 확인함으로써 간접적으로 언어 사용시점을 확인할 수 있는 단서가 된다. 해당 유전자는 80만년 전 발현되어 네안데르탈인의 분기 시기와 일치하는 시점에 나타난다.
문화의 등장은 무엇으로 구분할 수 있는가, 그것은 음식의 공유로 나타난다. 크리족 원주민과의 사냥에서 나타난 에피소드에서, 수렵에 나선 이들끼리 음식을 나누는 것에 대한 문화적 금기와 그에 대한 반응은 이를 간접적으로 보여준다. 음식의 공유는 문화의 어떤 특성이 발현된 행위이며, 이는 어떻게 확인할 수 있는가.
예술의 발현을 통해 문화의 기원을 추적한다. 예술은 삶과 이성의 사이에서 갈등을 해소하고자 하는 시도이다. 이를 증거하는 것은 추상화를 통해 형성되는 기하학적 기호, 그리고 장신구이다. 10만년 전으로부터 5만년까지 조개껍데기의 장식에서 이와 같은 상징은 처음 발견된다. 이후 장신구의 형태를 걸쳐 후기 구석기 시대에는 동굴벽화로까지 나타난다.
종교의 형성 역시 중요한 문화 탄생의 지표이다. 그리고 매장문화는 바로 그 지표가 된다. 이전 시대의 매장 흔적에서 꽃이 놓여있는 경우도 종종 발견되지만 이는 유의미한 지표로 삼기 어렵다. 그것이 인간의 활동에 의한 것인지, 서식처를 찾은 설치류의 둥지장식인지 구분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본격적으로 구분되는 매장문화는 5만년 전 처음 등장하고, 이내 광범위한 분포를 확인할 수 있다.
다양한 특성으로 확인되는 문화의 창달은 어떤 인구업에 의한 진화의 결과일까. 문화는 상호부조와 관대함을 낳고, 수렵채집 사회의 예측불가능한 수득률을 넘어서는 집단적 지속성을 담보한다. 수렵채집사회에서 개인의 수득률은 날에 따라 크게 요동친다. 그러나 집단으로써, 그리고 집단의 일부로써 분배규칙을 강제하고, 그 문화를 스스로 체화하고 솔선수범하는 관대한 개체의 출현은 집단의 구속력을 높이고 규범을 창달한다. 규범으로부터 비롯된 사회적 안정과 결속이 결국 집단의 지속가능성과 확장성에 영향을 주고, 이와 같은 일련의 과정을 거쳐 부족의 문화체계는 빠른 시일내에 인류 전체가 공유하는 공통의 경험이 된다. 그것이 기술의 발달과 더불어 선사시대 인류의 역사에 두번째 분기가 되는 것이다.
문화가 창달된 인류종은 어떻게 정착과 유목, 농경의 길로 접어들게 되었나. 5만년전 네안데르탈인과 다른 원인들 사이로 호모사피엔스가 섞여들어가고, 이내 호모사피엔스가 지배종이 되며 유라시아로, 스텝을 넘어 베링해협을 지나 아메리카로, 서아시아에서 열도를 따라 동남아시아 곳곳으로 퍼져나간다.
1만년 전이 되면 세계 곳곳으로 퍼져나간 인류가 지구를 채우게 된다. DBM을 섭이너비 모형으로 번역하며 섭이너비 모형에 대해 해설한다. 기후에 따라 섭이구성, 식단이 달라지고 단위투입시간당 산출칼로리율을 높이기 위해 채집식단을 구성하게 된다, 즉 단위 투입시간당 최적칼로리를 산출하는 최적해를 찾기 위해 수렵채집인의 생태가 결정된다가 섭이너비모형의 골자이다.
요는, 농경의 시작 역시 수렵채집부족의 섭이너비모형에 의한 최적해 중 하나였다는 것이다. 농경 그 자체가 반드시 단선적인 것도 아니고, 수렵채집인들은 경우에 따라 농경으로부터 탈피하여 수렵채집생활로 돌아가는 경우도 있었지만, 인구압과 그에 따른 섭이너비모형의 변화는 대개의 수렵채집집단을 농경의 시작으로 이끌었다. 플라이토스세 말기의 기후변화가 농경의 시작을 촉진했고, 나투프인의 유적으로부터 수렵채집에서 농경으로의 생태변화가 감지된다. 그리고 영거 드라이아스 기가 닥친다.
영거 드라이아스기의 기후변화는 정주한 수렵채집인들에게도 혹독한 시련을 부여했고, 이는 역설적으로 생산력 증대에 대한 강렬한 동기부여가 되었다. 작물의 변화, 우리가 익숙히 아는 밀의 탄생은 터키 남동부에서 시작되고, 예리코에서 최초의 신석기문화가 출현하며 작물과 유목이 결정적으로 나타난다. 다소 시기의 차이는 있으나 아메리카에서도 옥수수와 여타 작물로, 그리고 중국에서도 기장과 벼에 대해 동일한 현상이 관측된다. 인구압과 그에 따른 생태의 변화는 전 지구적으로, 그리고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했다.
수렵채집사회에서 토지에 대한 권리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다만 그것은 영유권이라기보다는 선점권에 가까웠다. 이는 토지 자체의 생산성이 낮고, 영유권을 지키는 데 투입되는 비용에 비해 산출이 많지 않기 때문이었다. 하여 사냥터의 이용은 요청과 허락의 복잡한 의례를 통해 진행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점권은 존중되어야 했기에 무단침입에 대해서는 재제가 가해졌다. 이는 수렵채집사회 특유의 수득률 변동성이 상호호혜적인 토지이용의 가능성에 대한 느슨한 규약을 필요로 했기 때문이다.
농경사회에서는 이와 같은 토지권에 대한 요청과 승낙의 형태가 변하게 된다. 농사가 잘 되는 땅의 기후조건은 정해져있고, 이에 따라 호혜적 이용권을 베풀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후의 변동에 따른 수득률 변동성이라는 문제는 여전히 남아있고, 이는 다른 형태의 과시적 문화로 연결된다. 포트래치라는 파티는 과시적 소비와 나눔을 통해 부족이 축적할 수 있는 잉여가치를 널리 현시함으로써 일종의 엄포로 작용한다. 보리를 통해 만드는 맥주나 다른 문화권의 술 역시 유사한 기능의 잔치음식으로 동시다발적으로 등장한다.
이족보행, 기술의 발견, 문화의 창달 등은 인구압과 그에 따른 적응의 결과였다. 농경 역시 그런 변화의 과정이었고, 인류의 정주가 시작된다. 이는 인류 생태에 또다른 변화를 낳는다. 바로 출산률의 성장이다. 선사시대 수렵채집인들의 인구성장률은 연 0.04%로 매우 느렸다. 주기적인 기후변화와 이에따른 기근을 감안하면 거의 인구성장이 가능하지 않은 수준이었다. 이는 영양상태에 따른 높은 출산 시작연도, 끊임없는 이동으로 인한 평균 유아 부양기간, 환경에 따른 유아사망률(50-60%)의 결과였다. 생애주기동안 5-6명을 출산해도 15세 전에 절반이 죽고 이후의 삶에서도 평균수명 이하에서 종종 사망하는 환경에서 인구가 성장하기란 쉬운 일은 아니었다.
정주가 시작되며 초산연령이 낮아지고, 평균부양기간이 감소하며 출산간격이 짧아져 최종출산률이 증가한다. 유아사망률은 여전했으나 모수의 증가가 인구성장으로 이어진다. 이는 인구압으로 작용하고, 다른 변화로 이어진다.
고고학 개그 하나 알차게 넣으면서 대영박물관을 비롯한 문명의 산실들을 재치있게 짚으며 넘어간다. 문명과 국가의 발생.
잉여생산물이 발생하고, 앞서 말한 것처럼 포틀래치 파티 같은 과시적 소비를 통한 엄포, 술의 발명을 통한 축제의 발생은 거대 건축물로 발전한다. 이집트의 피라미드가 대표적이다. 마스타바에서 조세르의 피라미드로, 스네프루의 굴절 피라미드와 새 피라미드의 축조, 쿠푸왕의 피라미드로 이어지는 기술발전의 역사를 조명한다.
결국 피라미드와 같은 공공 건축물은 거대 포트래치 파티인 것이다. 물질로 현신하는 사회조직의 잉여생산의 총합이 문명을 상징하고 제 부족에게 위압감을 준다. 잉여생산물이 계급의 분화와 관료제를 낳고, 체계화된 사회조직의 힘은 공공건축물로 나타난다. 스톤헨지의 소소한 돌(1-2톤)들도 인력으로 220km를 이동하여 그 자리에 섰다. 기원전 9000년경 건립된 괴베클리 테페는 오늘날 돌아봐도 선사시대 집약노동의 장엄함을 압축적으로 생생하게 보여준다.
이집트, 우르크, 은허, 신대륙, 아프리카까지 곳곳에서 국가가 들어선다. 기술은 빠르게 발전하고 교역의 힘은 기술전파의 속도를 촉진시킨다. 문자가 들어서 관료제와 역사시대의 시작을 알리고, 화폐는 상업의 발달을 촉진한다.
국가의 탄생은 수렵채집/초기 농경사회에 존재하던 동류의식의 단절을 의미했다. 계급의 구분이야말로 사회적 불평등과 조직적 전쟁의 시작이다. 공공 건축물을 세우고, 내집단과 외집단을 구분하고, 상대에 대한 증오와 내집단에 대한 충성을 기반으로 오직 전쟁만을 위해 기술이 개발되고 훈련이 시작되고 사회조직이 기능한다.
수렵채집 사회라고 해서 전쟁이나 폭력이 존재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정주와 이주의 생활양상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고, 그것은 영토에 기반한 안정적 생산 수득률의 편차로 나타난다. 영토가 생기고 잉여생산물이 생기고 계급이 발달하여 국가가 된 곳에서는 하나의 이데올로기 하에 상대 민족을 절멸시키기 위해 조직된 힘으로 폭력을 투사할 수 있지만, 수렵채집사회에서의 전쟁은 인구압의 증가에 의해 폭력의 수위가 높아지며 일어나기는 해도 종국적으로는 상호 호혜적 문화에 의해 국가간의 그것보다 공격성이 억제되는 경향이 있다.
수렵채집 사회에도 산발적인 폭력은 존재했다. 인구압이 증가할 때 이런 폭력은 때론 전쟁으로 나타났고, 이는 현대 수렵채집 사회들의 높은 살인율로도 드러난다. 모수의 부족이 보여주는 과다대표의 오류가 일부 있긴 하지만, 폭력의 존재 자체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호협력의 선을 지키는 것이 생존에 유리했기 때문에 공격성이 억제되어야만 했다.
국가는 이 차이를 넘어, 내집단 내에서의 재분배를 통해 기존의 수렵채집 문화의 상보성을 대체하고, 집중된 잉여로 무력을 외부를 통해 투사한다. 그렇다면 이를 가능하게 하는 이데올로기, 증 불평등은 어디에서 발생하는가. 마찬가지로 수렵채집사회로 스코프를 돌려 원인을 탐색하고 논지를 전개해나간다.
수렵채집에서 정주성이 강화되는 순간, 좋은 땅을 뽑은 이들과 나쁜 땅을 뽑은 이들 간에는 기후와 수득률 변동에 따른 위기가 간헐적으로 찾아온다. 이때 이들을 굶어죽게 두었다간 상대적으로 죽창에 맞을 리스크가 올라간다. 바로 그 점에서 포트래치 파티가 작용한다. 잉여생산물을 관대하게 나눔으로써 위세를 보이고, 그 순간 불평등을 정당화하는 이데올로기의 씨앗이 심겨진다. 이 씨앗이 문명과 기술발전을 통해 발아하면 종교와 민족성이라는 하나의 상부구조를 구성한다.
이집트 무던의 벽감과 벽감에 차있는 비비원숭이 미라로부터 이야기는 시작된다. 대체 왜 그랬을까. 그 이유를 찾는 것이 고고학의 일이다. 지금까지의 경로에서 진화의 단초는 그 이후의 파생효과를 예비하거나 예측하고 일어난 일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오늘날의 세계가 그리는 경로는 어떠할까. 우리의 물질문명, 1500년대부터 시작된 변화와 그 흔적으로부터 탐구는 시작된다.

 

세계의 해저를 메운 난파선, 범선으로부터 기선, 그리고 전선들까지, 급증한 해저의 유물들이 발견된다. 하늘을 보자. 수많은 인공위성 또는 그 잔해가 궤도를 메우고 있다. 국가별로 출토되는 전 세계의 물건들은 어떠한가. 현생인류를 인골분석해보면 그 식이의 조성이 말 그대로 전세계적임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인류의 점유공간 역시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신대륙에서, 구대륙에서, 동남아시아에서, 아프리카에서 인류의 흔적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해왔다.
이제 인간의 시대는 인류세로 명명된다. 인간의 활동이 전지구적인 영향을 끼치고, 기후변화로 나타난다. 이 물질적 증거들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세계가 그 지리적 한계를 극복하고 하나의 섬이 되어가고있다는 것이다. 물질적, 경제적, 문화적 통합. 단 하나의 세계정부.
휴머노이드가 전면으로 대두되는 지금, 저숙련 저임금 노동은 어떻게 될 것인가. 여전히 점증하는 전쟁의 위협, 일련의 세계화와 시민윤리로 제시되었던 것들에 대한 반동과 민족주의, 지역주의의 강화, 전통사회에 대한 희구 등 우리가 마주하는 문제들은 반디스 세계화와 세계 섬이 단선적인 흐름은 아님을 보여주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우리를 지탱하는 물적 세계관은 세계적 연결, 문화를 통한 통합, 세계적 교류와 이에 따른 변화의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기도 하다.
비록 우리는 지금 이 공간을 이따위로밖에 쓰지 못하고 있지만, 그간 인류가 축적해온 기술과 경험은 이 시대가 반드시 영원하지는 않음을, 권력은 차면 기울고 어떤 사상적 조류도 세월에 퇴색되며 모든 변화는 반동을 수반함을 역사를 통해 보여준다. 물적 변화가 내포하는 가능성과 더 나은 세계를 향한 사람들이 열망이 때로는 협력으로 공조로 새로운 변화를 이끌수도 있음을 믿어야지 별 도리가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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