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역사/한국사

<한국인의 기원>, 박정재

stingraykite 2025. 12. 16. 09:34
고대사나 민족의 이동은 고고학의 영향이다. 고기후학의 연구결과가 풍성해지고 하플로그룹 연구가 축적됨에 따라 이 시기 민족의 이동경로와 경제적 상황의 변동에 대한 장주기적 이해의 기반이 마련되었고, 이에 연계된 다양한 연구가 나오고있다. 반도에는 어떤 사람들이 어디를 거쳐 정착했고, 동아시아의 민족을은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하나하나 밝혀나간다. 서장의 도표가 보여주는 내용이 좋다.

호모 에렉투스가 나타나고 유라시아로 퍼져나가고 국지적으로 다른 호모속으로 분화하고 호모 사피엔스가 다시 유라시아로 진출한다. 네안데르탈인과 데니소바인과 대체 또는 교잡이 일어나면서 다시 분화가 시작되고, 한쪽은 서 유라시아로, 한쪽은 동 유라시아로 분기한다. 서 유라시아에서 그라제티안문화로, 솔튀트레 문화로 구석기 문화가 발달하며 서로 교차하고 대륙 곳곳으로 퍼져나간다.
왜 우랄부터 알타이까지 북유라시아인들이 유럽으로 침투하지 못했나. 당대의 인구압 차이가 그 원인으로 제시된다. 구석기 사회에서도 유럽은 생산성이 낮지 않은 땅이었고, 이미 강고하게 형성된 서로의 강역을 비집고 들어갈만한 침투력이 형성되기까지는 이후 신석기혁명과 이동수단의 발달이라는 기술적 축적이 요구되었다.
1만1700년전의 기후변화는 널ㅈ게 퍼져있던 수렵채집민들에게 가혹한 시련으로 다가왔고, 기존의 정주주거지를 중심으로 농업혁명이 시작된다. 기후에 대한 대응을 위해 정주주거지의 식량생산량이 늘어나고, 목축이 시작되며 삶의 형태가 변화한다. 나투프 문화로부터 예리코, 괴베클리 테페등에서 동시기 농업의 흔적이 발견되며 인류 문명은 다음 장으로 접어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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얌나야인들이 최초의 유목문명을 정초한다. 수레를 만들고, 바큇살을 대고, 유라시아 서부 곳곳으로 퍼져나간다. 야금술, 기마술에서의 기술숙련은 그들이 기존의 정주문명을 밀어내고 새로운 지배자로 등극할 수 있었던 계기가 되었다. 유럽으로 밀고나가며 당시 유럽사회에 거대한 인구이동을 촉발하고, 남아시아로 들어가며 기존의 문명이 쇠퇴한 자리로 새로운 문명을 이식한다. 유럽이 예로부터 유목민족 맛집이었음. 4.2ka 이벤트와 함께 기존의 정주문명들이 쇠퇴하고 문명의 교잡이 대단위로 일어난다.
그렇다면 동 유라시아에서 호모속은 어떻게 이동했는가. 알타이산맥을 넘어 순다랜드로 이동한 이들은 빙기에 사훌랜드까지 넘어가 하나의 집단을 형성한다. 사훌랜드의 주민들은 이후 간빙기의 해수면 상승에 따라 고립되어 단절된 집단을 형성하게 된다. 고대 북유라시아인은 중국에서는 티안유안인으로, 대흥안령 인근에서 아무르인으로, 대한해협을 건너 조몬인으로 나뉜다. 그리고 베링해협을 넘어간 이들은 아메리카에서 삶을 꾸린다.
이처럼 분화된 각 호모속들은 다시 정주한 환경에 따라 구분되는 삶의 양태를 구축한다. 수렵채집으로, 조, 기장의 재배로, 그리고 양쯔강 인근에서의 쌀의 재배로 생태의 분화가 일어나고, 기후변동은 이들의 이동을 추동한다. 기후 변동에 의해 아무르인들이 반도로 내려오고, 양쯔강 집단이 산동반도로, 바다를 건너 요동과 요서로, 그리고 밀려오는 추위로 인해 한반도로 다시 이동한다. 그리고 일본으로 넘어가 조몬인을 몰아내고 자신들의 문명을 구축한다. 반도놈이나 열도놈이나 거기서 거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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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문화권을 중심으로 구석기와 정주, 유목 문명으로 나누어 전체 문화권의 생성과 소멸을 일별한다. 8.2ka와 4.2ka의 기후변동이 문명의 창생소멸에 주요한 역할을 했음이 가늠된다. 단일기원설과 다지역기원설 이야기를 하면서 PCR과 미토콘트리아 분석의 한계와 앞으로의 연구방향에 대해 검토 없이는 이론적 통합성을 바라보기 어렵다. 개인적으로는 다지역기원설과의 혼합이론에 관심이 있는 편임.

헌팅턴으로부터 고기후 변동과 인류역사에의 영향에 대한 나이테분석, 흑점활동 분석이 현대 기후변화 연구에 미친 영향으로 2부가 시작된다. 오늘날 기후는 무엇의 함수일까. 이를 체계적으로 나누고 개념과 용어를 정의하며 70만년간 인류가 발원하여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기후의 변화가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살펴본다.
밀란코비치 싸이클 이론에서는 지구 공전궤도의 이심률(0.005-0.058)과 자전축 경사, 세차운동에 의한 태양에너지 입사량 변동이 빙기와 간빙기를 가르는 주요 요인으로 작용하였음을 논한다. 공전궤도 이심률은 목성, 토성 중력장과의 관계에 따라 다양한 요인들의 합으로 나타나며, 개별 요인들은 최대 40만년에서 10만년까지 저마다 다른 주기에 따라 요동한다. 현재의 이심률은 0.017이다.
자전축 경사 역시 이론의 주요 구성요소이다. 22.1도에서 24.5도까지 2.4도의 폭 내에서 4만천년정도의 주기를 갖고 자전축이 운동하며 태양에너지의 입사각이 달라진다. 현재의 자전축은 23.44도로, 줄어드는 장향으로 거동하고 있다.
이 자전축이 멀리 떨어진 별에 대해 원형으로 운동하는 것이 세차운동으로, 26,000년의 주기를 갖는다. 태양과 달의 조력이 축 회전의 동력을 제공하고, 근일던에서 축의 장향에 따라 마찬가지로 에너지의 입사량과 국지도에 영향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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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환경에 영향을 미치는 주요 요인을 일곱가지로 구분하고 그 영향에 대해 분석한다. 밀란코비치 싸이클에서 설명하는 공전궤도 이심률, 자전축 이동, 세차운동이 그 하나요, 북태평양 열염순환의 교란이 또 하나의 원인이다.
북태평양 열염순환의 심장은 북극해에서의 비중차이에 의한 해수 환류이다. 이 환류 매커니즘은 빙상의 융해에 의해 지속적으로 교란되고, 열염순환의 교란으로 인한 한랭화는 빙상의 축적으로 이어지며 양의 피드백관계에 놓인다. 이는 홀로세 내내 주기적으로 나타나며 기후에 큰 영향을 끼친다.
적도 해수면 온도변화역시 주요 요인이다. 엘니뇨는 500년 주기로 +-100년정도의 간극을 갖고 젼동하며 태평양 전반의 기후, 강수량과 태풍의 발생에 영향을 끼친다. 엘니뇨의 주기변동에 따라 가뭄과 습윤이 번갈아 나타나며 권역 내의 강역들의 풍요도가 조절된다.
태양활동과 흑점 수 역시 입사되는 태양에너지의 양을 결정하는 변수가 된다. 태양의 흑점 주기는 1500년, 500년, 200년, 88년 주기에 따라 변동하며 각각의 주기가 겹쳐지는 극대기와 반전되는 극소기에서 온도변화의 주된 원인이 된다.
화산폭발의 영향력은 상대적으로 크지 않다. 초 초 플리니급 분화(VEI 8이상)은 인류세 이래 일어나지 않았고, 초 플리니급 분화 역시 유사이래로 천년에 한번정도 관측되었다. 쿨이 아예 안돌았다고 하기는 어렵지만, 전체 기후변화 사이클에 비해 볼 때 그 영향은 국소적이다. 전지구적으로 기온이 좀 떨어지고 농사가 안되긴 하는데 장주기변동 한번 뒤집어지는 것 보다는 견딜만하다는 뜻이다.
온실가스는 이 과정에서 독립변수라기보다는 종속변수로 작용하는 경향이 있다. 지구 역사 전 주기로 보면 온실가스의 영향이 지배적이던 시기가 없지 않았으나 신생대 이후로 그 영향은 제한적이었다. 식생이 안정되고 여타 기후변화가 유발한 생태의 변동이 그 원인이 된다.
피드백 메커니즘은 각각의 원인이 종합적으로 작용하며 요인간의 관계를 연결하는 일련의 기제들, 몇년전 터진 시베리아 트랩이라든지 아마존이라든지 가뭄으로 인한 산불이 유발하는 삼림 파괴라든지 고래의 개체수 급감으로 인한 탄소흡수량의 저감이라든지... 개개 요인들이 의미가 없지는 않지만 그 비율이 얼마인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연구가 필요한 영역이 아닌가한다.
이런 변동은 홀로세에 어떤 변화를 낳았나. 그린란드기로부터 노스그립기, 메갈라야기로 나누어 그 분기들을 검토한다. 82ka 이벤트가 그린란드기와 노스그립기의 분기가 된다. 주기적인 열염순환 교란이 두드러지는 기온하강으로 나타나고, 그 후 노스그립기의 기후 최적기로 접어들며 생물 개체수가 유의미하게 증가한다. 이와 같은 기후 최적기는 42ka 이벤트로 한번 질곡을 겪으며 메갈라야기로의 이행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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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 피드백이란 이런 것이다. 태양에너지의 입사량 증가가 바로 기온상승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빙하와 빙상의 반사율, 빙하의 탄소저장능력은 장주기의 변화에도 단기(2-3000년)간 온도 추이의 변동을 순연시킨다. 8.2k이벤트 이후 전반적으로 문명이 발달하고, 동아시아에서도 중국을 중심으로 농경문명이 나타난다. 츠산문화는 조/기장의 경작과 이후 계급의 형성 및 직업의 전문화, 순장의 출현을 통한 지배계급의 발달이라는 양상을 보여준다.
메갈라야기는 왜 메갈라야기인가. 인도 동북부의 메갈라야 지방의 석순을 통한 고기후 연구로 당대 기후변화를 특징짓는 엘니뇨의 장주기변동과 그 영향을 관측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홀로새 후반 엘니뇨로 인한 태평양 동안과 서안의 온도변화는 주요 문명 형성지의 건조기후로 인류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중국에서는 이 시기 이후 상나라가 나타난다.
반도의 거주민들은 아무르강과 반도를 오가며 기후변화에 맞춰 사냥감을 따라 이동하며 살았다. 이후 만주의 정주민족이 요서, 요동으로부터 한랭기를 맞아 반도로 내려오고, 거기에서 더 내려가 열도로 진출한다. 이러한 주기적 진동은 이후로도 만주로부터 반도로의 지속적인 인구유입을 초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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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기 최성기 서귀포 기온 미쳐돌아갔구만... 평년기온 7.5도인데 여기서 뭘 어떻게 하고 살 수 있지... 하지만 최성기라는 건 그만큼 해수면 높이도 낮았다는 뜻이니 해발고도나 기후조건도 현대와는 굉장히 달랐을 것이다. 광양의 나무 화분, 적도 서태평양 해수면 온도 변화로 근 만년간의 기후변동을 추적한다. 밀양 퇴적물의 타이타늄 양, 나무 화분 분포, 오키나와 해수 온도 트렌드가 적도 서태평양 해수온도에 겹쳐진다.
반도의 기후는 적도 서태평양 기후에 영향을 받지만, 열도의 기후변화에 비해 그 변동폭은 더 적다. 직접적으로 맞닿아있지 않고, 쿠로시오 해류와 대륙이라는 질량이 그 기울기를 완화하는 요인들이 된다.
태양활동과 그린란드, 동수악오름의 온도변화는 대서양 연안과 반도의 온도변화간의 상관관계를 보여준다. 태양활동의 주기적 변화는 온도에 영향을 끼치지만, 그 영향이 지배적이지는 않다. 다양한 다른 변인의 개입과 피드백의 작용이 변화를 증폭하기도 하고 완화하기도 한다. 기온가 강수량 역시 각각 다른 변인의 지배를 받는다. 동수악오름의 화분 분포는 온도변화를, 탄편의 증가는 건조/습윤환경의 천이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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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석기로부터 아무르 인근과 한반도는 일종의 수렵채집 연속체를 형성하였다. 아무르 인근의 수렵채집인들은 기후의 변동에 따라 본연의 식생조건에 맞는 해안지대를 따라 동해안을 통해 반도로 내려와 거주했다. 그러다 반도의 기후가 혹독해지면 다시 아무르강 인근으로 올라가며 양자는 지속적으로 요동한다.
마지막 빙기동안 드러난 대한해협과 서해대평원은 당대 이동의 조건이 오늘날과는 심히 달랐음을 직접적으로 보여준다. 동해바다 아래에는 어떤 흔적들이 잠자고있을지. 순다랜드로부터 화북을 지나 요서로 들어온 사람들은 기후변화와 그에 따른 사냥감의 서식지 천이를 따라 북으로 남으로 중심을 이동시킨다. 사회적 구심의 이동이 지역에 남는 사람들을 유인하는 인력이 되고, 그 과정에서 구석기 문화는 서로 교차하며 발전한다. 유적에서 드러나는 사냥도구의 진화와 그 전역적 동시성은 이를 방증한다.
당대 인구천이가 용이했다는 것은 역설적으로 동아시아의 인구압이 그리 높지 않았다는 뜻이기도 하다. 강역에 수렵채집인이 꽉꽉 들어차있으면 집단의 이동은 단순한 이동이 아니라 갈등을 유발하는 요소가 된다. 그리고 영거 드라이아스기 말기의 급격한 기온하강이 종료되며, 시대는 기후 최적기로 접어들게 된다.
태양에너지 입사량 증가는 무역풍의 강화와 해들리순환으로 이어지며, 해들리순환의 확대는 북중국과 한반도의 습윤한 기후로, 남중국의 건조한 기후로 나타난다. 입사량증가가 열대수렴대의 이동으로, 무역풍 강화와 북태평양 해수온도 상승으로, 그리고 엘니뇨의 약화로 이어지는 매커니즘이 흥미로움.
234, 236, 250, 256p
구석기로부터 아무르 인근과 한반도는 일종의 수렵채집 연속체를 형성하였다. 아무르 인근의 수렵채집인들은 기후의 변동에 따라 본연의 식생조건에 맞는 해안지대를 따라 동해안을 통해 반도로 내려와 거주했다. 그러다 반도의 기후가 혹독해지면 다시 아무르강 인근으로 올라가며 양자는 지속적으로 요동한다.
마지막 빙기동안 드러난 대한해협과 서해대평원은 당대 이동의 조건이 오늘날과는 심히 달랐음을 직접적으로 보여준다. 동해바다 아래에는 어떤 흔적들이 잠자고있을지. 순다랜드로부터 화북을 지나 요서로 들어온 사람들은 기후변화와 그에 따른 사냥감의 서식지 천이를 따라 북으로 남으로 중심을 이동시킨다. 사회적 구심의 이동이 지역에 남는 사람들을 유인하는 인력이 되고, 그 과정에서 구석기 문화는 서로 교차하며 발전한다. 유적에서 드러나는 사냥도구의 진화와 그 전역적 동시성은 이를 방증한다.
당대 인구천이가 용이했다는 것은 역설적으로 동아시아의 인구압이 그리 높지 않았다는 뜻이기도 하다. 강역에 수렵채집인이 꽉꽉 들어차있으면 집단의 이동은 단순한 이동이 아니라 갈등을 유발하는 요소가 된다. 그리고 영거 드라이아스기 말기의 급격한 기온하강이 종료되며, 시대는 기후 최적기로 접어들게 된다.
태양에너지 입사량 증가는 무역풍의 강화와 해들리순환으로 이어지며, 해들리순환의 확대는 북중국과 한반도의 습윤한 기후로, 남중국의 건조한 기후로 나타난다. 입사량증가가 열대수렴대의 이동으로, 무역풍 강화와 북태평양 해수온도 상승으로, 그리고 엘니뇨의 약화로 이어지는 매커니즘이 흥미로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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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산 유전자와 조몬 유전자의 비율. 42ka 이벤트 이전 반도인의 유전자구성을 보여준다. 장항이나 연대도의 조몬인 유전자 비율은 양자간 습합이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보여주지만, 욕지도의 높은 조몬인 유전자 비율은 그냥 이 샘플이 아웃라이어 아닌지... 욕지도가 조몬인 수용소도 아니고 고인골 샘플 자체가 희소한 것이 문제인 듯.
42ka이벤트가 한반도에는 별로 영향을 안미쳤는데 그 이유가 인구포화가 낮아서라는 설명이 흥미로움. 타 지역에서는 문명의 붕괴로까지 나타났지만 문명이 없으면 붕괴도 없다^^... 농경의존율이나 낮은 인구밀도로 인한 높은 이동성이 원인으로 보인다. 반면 요하 유역에서는 홍산 문화가 쇠퇴하고 소하연 문화로, 그리고 사가점 하층 문화로 변모한다. 산동 반도로부터 이주민이 유입되고 재배곡물의 포트폴리오가 변화하고 이들이 한반도 남부로 내려오며 새로운 문화가 한반도에 자리잡는다. 반도는 산동반도, 만주로부터 아무르강 유역에 이르기까지의 지역들과 일종의 연속체를 형성하며 이들 지역에서 문명이 흥성하고 쇠퇴할때마다 지속적으로 이주민이 유입되는 집단간의 교차로이자 저장고로 기능한다. 물건너의 열도 역시 마찬가지의 동학으로 반도에서 밀려나는 사람들이 차곡차곡 쌓여간다.
만주가 그렇게 기후가 안정적이고 문명이 발전할 수 있는 땅이었으면 사람들이 반도까지 꾸역꾸역 왜 기어들어왔겠음.. 요하유역은 분명 재배적기에는 넓은 경작지와 풍부한 수렵채집물을 누릴 수 있는 땅이었지만 기후변동에 따른 수율변동의 차이가 극심한 땅이었고 이는 지속적인 정정불안의 원인이 된다. 말하면서 생각해보니까 이거 중부유럽이네... 이렇게 보면 중부유럽과 동유럽의 선사시대로부터 상대적으로 낮은 인구밀도도 설명이 된다. 인구 추계는 산출방법을 소개해줘야 어느정도까지 신뢰할 수 있을지 가늠이 되는데 그 부분이 아쉽다.
262, 266, 277, 283p
규슈는 정말 고래로부터 한반도까지 내려온 집단들이 기후 위기의 순간마다 넘어가는 정착지였다. 쌀경작집단이 넘어가고, 연후로도 북방계 기마민족이 넘어간다. 야요이 문화의 구축과 야마토의 형성까지, 인구이동과 그로 인한 갈등 증폭, 새로운 체제의 수립이라는 점에서 같은 매커니즘을 갖고있다.
3200년의 기후악화는 유라시아 젖체에 영향을 미쳤다. 요동의 기후가 나빠지면 한반도로 사람들이 밀려오는 것이 일종의 패턴이 된다. 이전 시기에는 인구포화에 이르지않아 인구이동이 이동의 연쇄, 즉 요하로부터 반도, 반도로부터 열도로의 이동을 촉진하지 않았다면, 이 시기부터는 요하로부터 반도로의 이주가 열도로의 인구사출을 유발한다. 바다를 건너서라도 넘어온 놈들이랑은 같이 살고싶지 않은 것이다.
3200년에서 2200년까지 반도는 요하에서 발원한 송국리 문화, 다시 만주로주터 유입된 복합적인 생활태(반농-반목)의 점토대토기 문화로 지배집단의 교체를 겪는다. 인구의 감소, 재배면적의 감소 등 변모한 생활상이 이를 뒷받침한다. 여기에서 인구 급증에 따른 삼림 벌채와 이로 인한 자연의 회복력 저하 역시 인구집단 변천의 원인으로 지목된다.
286, 292, 310, 317p
야요이 시기 도래인으로 인한 조몬인의 대체라는 것도 반드시 일방적으로 이루어진 것은 아니었다. 극한의 가능충의 피는 당대에도 여전히 유지되며 초기의 높은 조몬 유전자 비율로 나타난다. 지속적인 도래인의 유입과 개척이 유전자의 희석으로 중세 저온기 장기간동안 대체를 이룩한 결과가 오늘날의 유전자 조성인 것이다.
이례적인 장기 온난기인 로마 온난기는 중국의 통일, 로마의 포에니전쟁의 승리와 지중해 제패 등으로 나타난다. 한반도 역시 읍성국가가 출현하며 계급의 분화가 여러 표지로 나타난다. 그러나 100년 이후의 기후악화와 로마 제국의 혼란을 바로 연결짓는 부분에는 공간하기 어려움. 오현제 시기 이후의 혼란은 전통적인 설명이 구조적 문제를 더 잘 설명해준다.
기후위기가 반드시 국가의 위기로 연결되는 것은 아니다.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고 사회 역시 기후변화에 따라 생산구조를 조정하고 유기적으로 전환한다면 반드시 위기에 봉착한다고 볼 수 없음. 체제의 경직성과 적절한 개혁의 부재가 강한 제도적 경로의존성과 함께 제국의 쇠퇴로 이어진다. 오히려 이후에 이어진 훈족의 침입과 대단위 민족대이동에서 기후의 영향에 대해서는 공감할 수 있지만, 쇠퇴기 로마제국의 경직성과 내적 갈등의 심화는 내재적 요인을 중점적으로 보는 게 맞음.
벽골제를 가지고 이영훈이랑 허수열교수가 논쟁이 있었군? 당대 해안선을 봐도 저수지에 가깝지않나 생각함. 저자는 수문의 구조와 위치, 벽골제 안쪽 평야의 크기를 토대로 방파제론에 손을 들어준다.
334, 340, 347, 371p
일본인의 기원에 대해서는 조몬, 야요이와 도래인이라는 전통의 이중구조론에서 도래인을 다시 두 집단으로 나누어 야요이, 그리고 이후 야마토 정권을 구성한 야마토인들까지 포함하는 삼중구조론이 이야기되고 있다. 이 과정에서 고대일본어는 야요이 인들의 주류 언어로, 정치체의 구성이 야마토인들의 도래 이전에 이루어져 이후 이주한 야마토인들 역시 일본어를 사용하며 한국어와 차이를 보이게 되었다. 야요이인들이 송곡리문화를 구성한 집단으로부터 유래하였고 송곡리문화의 전승의 반도에서 끊어졌다는 서술을 고려하면 참고할만한 내용이다.
기후변화가 유라시아에서 민족들간의 이동을 만들어내며 구석기로부터 신석기, 고대에 끼친 영향들을 일별하며 민족의 이동과 교차가 만들어낸 역사를 기후의 틀에서 바라본다. 앞으로 닥칠 기후변화의 시대에 민족들의 움직임은 어떻게 될 것인가. 이미 기후난민은 증가추세이고, 2100년까지의 장주기에서 이 온난화경향이 가속된다고 보면 최악의 시나리오에서 전 지구의 평균기온은 4도 이상 상승한다.
이미 시베리안 트랩으로부터 북극 빙상, 그린란드 빙하 등 주요 티핑포인트는 위험신호를 향해 달려가고 있고, 개별 티핑 포인트의 붕괴가 다른 티핑포인트의 붕괴로 이어지는 연쇄붕괴를 목도하고 있다. 만약 이 시나리오대로 초간빙기로 진입한다면 인류의 재배적지와 서식환경은 고위도로 집중될 가능성이 크다. 당장 남아시아로부터 북으로의 이민 흐름이 보여주는 기후변화 시기의 민족 대이동은 북미에서도, 유럽에서도 구체화될 가능성이 있다.
문제는 대안이다. 과연 배출가스의 조절만으로 온난화를 막을 수 있는 시점인가? 신재생에너지의 믹스는 반드시 배출가스의 총량감소로 이어질까? 정말 기후변화가 문명에의 위협이라면, 문명의 첨단인 기술로 위협을 돌파하는 것이 바른 길이 아닐까. 그간의 기술중심주의에 대한 반편향이라는 것은 역설적으로 자발주의에의 찬양, 급진적인 탄소세 부과로 인한 물가인상과 갈등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국제적 긴장감이 고조되는 지금, 각국은 기존의 국제협약으로부터 이탈하여 자국 내 제조업 육성을 위해 에너지정책의 전환에 나서고있다. 임박한 기후변화를 맞이하여 다시 대안을 돌아봐야 할 때이다.
고기후학과 고고학의 접목, 인류 이동에 대한 유전체분석을 통한 접근은 단편적으로는 접해봤지만 일관되게 기후와 인류의 이동을 중심으로 다른 조각들을 꿰어맞추는 서술은 처음이기도 해서 신선하다. 이 관점에서 바라보는 선사시대 인류의 삶의 모습이 그다지 피동적이지 않다는 점이 새로운 깨달음을 준다. 구석기시대 사람들도 바늘 끝을 날카롭게 갈아 옷을 촘촘히 꿰메가며 기후변화에 적응하고 맞서싸웠다. 그리고 거기에 우리의 길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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