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사회/노동

휴머노이드와 러다이트

stingraykite 2026. 2. 6. 11:47
러다이트 이야기를 하려면 그 이후 영국에서 공장법이 어떻게 전개되었는지도 이야기해야함. 러다이트로 기술의 진전을 저지할 수 없는 사람들은 어떤 방식으로 자기들의 권리를 진전시켜나갔나. 차티스트로, 래디컬-토리와의 연합으로, 리버럴과 일부 대공장주간의 갈등을 이용한 공장법 입안으로 아동노동이 제한되고, 차티스트 운동으로 정치적으로 편입되며 의견을 관철할 경로를 얻어왔다. 이 과정들이 하루아침에 일어난 일은 아니다. 아동노동의 제한이 오늘날에 이르기까지는 한세기정도 되는 기간이 소요되었고, 9세로부터 단계적으로 제한되었음. 이러한 변화를 추동한 원인은 무엇인가.
기술의 발전과 생산의 재조직을 기술을 반대하는 것으로 막아세울 수 없다는 대중적 이해와, 생산력의 진보가 종국적으로 노자 양단에 고르게 분배될 수 있었던 장기적 성장과, 그 과정에서 중간계급의 성장이, 숙련공들의 중간계급으로의 편입이 있었기 때문이다.
러다이트 운동의 재해석이 필요할 수는 있다. 그러나 산업혁명 초기의 운동이 이후 생명력을 잃었던 데에는 이유가 있고, 오늘날 이를 반복하는 것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이 될 수 없는 것도 그 과정속에 답이 있다. 노동의 대체와 이로 인한 마찰실업을 순연시키려면 알아야한다.
지금의 AI와 피지컬 AI가 어떤 변화를 낳을지 선제적으로 파악하면서, 그 속에서 기계-인간의 혼합경제는 어떻게 가능할지, 앞으로의 사회에서 인간의 가치는, 숙련의 축적은 어떻게 가능할지 방향을 읽고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러다이트 운동을 다시 환기한다면, 바로 이런 점을 돌아봐야 한다.
생산의 재조직 속에서 생산을 지배하는 것이 이들의 권력의 원천이라면, 그 변화에 노동의 몫을 파악하고 그를 바탕으로 대중의 이해를 관철하는 것이 다수 대중의 지속가능한 정치적, 경제적 권리를 확보하는 일이다. 생산에 대한 주도권 없이는 경제도 정치도 거저 주어지지 않는다.
그러면 구체적으로 무엇을 요구할 수 있나, 공공돌봄에 대한 정부의 투여를 요구할 수 있다. 휴머노이드의 단계적 도입에 따른 새로운 일자리의 창출을 지역 권역과 묶어서 생산에 대한 정부 기여분과 그로 인한 생산성 증가분에 대한 고용의 책임을 제도적으로 묶을 수 있고, 이를 이용한 창업지원을 통해 고용증가를 의무화할 수 있다.
휴머노이드 업계에 대한 공공의 투여를 설계하면서, 그 속에 고용의 몫을 넣을 수 있다. 이는 오늘날 다수 제조업 중소기업의 교착과도 연결된다. 공급망의 글로벌 네트워크 하에서 단가압박과 생산성 저하 속에 추가투자 여력이 없는 기업들을 대상으로 생산투자를 촉진하면서 그로 인한 생산성 증가분에 대해 우리의 몫을 요구할 수 있다. 노사정이 된다면 그 방향을 견지해야 한다.
계급의 힘은 생산에 대한 개입 속에서 나온다. 생산의 재구조화 속에서 개입력을 유지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는 게 결과적으로는 총계급 총노동을 위한 길이며, 다수 대중의 삶을 위한 지향이다. 미래의 경제구조에서 생산의 몫은 계급 그 자신이 스스로 개척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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