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0년간 생산기술의 발전이 그나마 한국 제조업을 먹여살려왔음. 러다이트에 대해 이야기하려면 이런 현실에 대해서 먼저 이해해야한다. 누구보다도 압축적으로 기술을 집약하고 생산성을 투자한 결과가 오늘날의 현실이다. 우리 삶의 물적 토대는 다 거기서 출발했다. 지난 30년간 한국이 바로 그 자동화의 최전선이었다. 한국의 노동환경이 어떻게 변화했는지에 대한 이해가 없는데 기계-인간 어셈블리즘을 현장에서 매번 기계와 마주한 사람들에게 누가 어떻게 설명해주겠다는건지 ㅎ.. 여기가 바로 그 기술이 실물과 맞닿아 탄생하는 곳이다.
기계-인간의 어셈블리즘이 서구에서와 동일하게 적용될 수 있는 서사라고 생각하면 한국적 환경에 대한 이해가 없는 것이다. 생산성과 산업이 조직화되고 그 구조가 변화한 환경에 대한 이해 없이 기술발전에 브레이크를 걸 수 없다. 일국적 환경이 세계적 환경으로 구축되었는데 성찰이 없다. 자기가 발디딘 땅도 바로 보지 못하면서 어떻게 미래를 조망하겠음.
왜 사람들이 노동현장에서 자기 삶에 대한 통제권을 갖지 못하나. 기술발전이 자본중심으로 이루어져 주도권을 상실해서? 근본적으로는 숙련에 대한 문제이고, 숙련의 이행의 문제이고, 세계적 산업구조개혁의 흐름을 읽지 못하고 노동지대를 추구한 결과다. 자본과 생산성의 본질을 바로보지 못하면 바른 답도 내릴 수 없다. 다 알 수 없는 대상이라도 알려고 노력하고 직면해야 해법도 나오는거지 정면돌파가 어려우니 우회하자고 반세기를 삽질해왔으면 이제는 현실을 좀 직시할 때가 되었음. 무엇이 사회를 건설하고 주권을 부여하나. 노동이고 생산이다. 생산을 도외시한채 시민들의 의지만으로 마음을 모으면 세상이 바뀌지 않는다. 그 변화를 지속시킬수도 없다. 생산 그 자체에 대해 고민이 없는 사람이 생산의 주권을 되찾을수도 없음.
맑스주의는 변증법적 '유물론'이다. 정치'경제'학이고. 경제를 모르면서 정치를 논할 수 없고 생산을 모르면서 노동을 이야기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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