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경제사

<경제분석의 역사 1>, 조지프 슘페터

stingraykite 2026. 4. 15. 09:43

 
경제학의 역사에 대한 방법론과 분석틀을 설명하고, 과학과 이데올로기의 구분가능성을 토대로 경제학의 과학으로써의 지향을 노정한다. 고대 그리스로부터 1790년, 1790년으로부터 1870년, 1914년, 이후로 현대까지로 시기를 구분하며 역사, 통계, 이론, 경제사회학에 걸친 분석기법의 발전과정을 돌아본다.
왜 경제학인가. 우리는 사회를 다양한 방법으로 파악하지만, 그 전체를 바라보기 위해서는 통계와 분석의 누적을 통한 사회 전체에 대한 총체적인 이해가 필수적이다. 또한 그 변화발전의 원동력은 물질세계로부터 출발한다. 그래서 경제분석의 역사인 것이다.
유고작을 본다는 건 누군가는 그를 정리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엘리자베스 슘페터가 그의 육필, 타이핑된 원고를 모아 여러번 정리한 끝에 다섯 부로 이루어진 책으로 출간한다. 하이먼 민스키랑 앨런 그린스펀이 슘페터의 제자였군.
1부. 서론-범위와 방법
1장. 서론:책의 구성
"경제분석의 역사란 경제현상을 이해하기 위한 인간의 지적인 노력의 역사, 역시 마찬가지 말이 되겠지만, 경제사상의 분석적 내지는 과학적 측면에 대한 역사를 의미한다. 이 책의 2부는 인식할 수 있는 아주 먼 고대부터 18세기 마지막 20~30년에 이르는 기간에 있었던 그러한 노력의 역사를 기술한다. 3부는 대략적으로 말해 영국 고전파 시기부터 870년대 초까지의 시기를 다룬다. 4부는, 비록 일부 주제들에 대한 역사를 편의상 현시대로 가져왔지만. (다시 말하지만 매우 대략적으로보 아) '고전파' 시기 말부터 제1차 세계대전까지 분석적 내지 과학적 경제학의 성쇠를 다룬다. 이 세 부가 이 책의 대부분을 구성하며 또 이 책에 쏟아넣은 연구의 대부분 을 담고 있다. 5부는 방금 연금한 4부에서 예견되었던 현대의 (경제학- 옮긴이) 발전에 대한 개괄적 소개에 불과하며, 독자들이 현대의 업적이 어떻게 과거 업적과 연결되는지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기 위한 것이다."
왜 경제분석의 역사를 바라봐야할까. 모든 과학적 분석은 단선적 사건이 아니라 역사적으로 축적된 이론들 사이의 나선적 발전의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오늘날의 지적 결과들은 과거의 업적의 총체이고, 그 지평을 넓히는 작업들이다. 따라서 전체의 맥락속에서 어디에 위치하는지 밝히는 작업은, 그 지적 경로를 쌓아온 이들에 대한 경의의자 다음 세대를 위한 지표가 된다.
"자기 시대의 언구에서 한 걸음 물러나 과거 사상의 광활한 산맥을 응시하면서도 자신의 지평이 넓어지는 것을 경험하지 못한다면, 그의 정신은 나태하기 짝이 없음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경제학은 과학인가. 전체적으로 볼 때, 경제학은 과학이 아니다. 그 보편성에 있어서 경제학의 아주 작은 부분만이 과학적이다.
"과학은 지식을 개선하기 위한 의식적 노력의 대상이 되어온 모든 종류의 지식이다."
"(1) 과학은 세련된 상식이고 (2) 과학은 도구지식(trooled know- ledge)이다."
"경제학은 음항학이 과학이리는 관점에서는 과학이 아니지만, 잘못 조정 된 것들의 집합물이면서 중첩되는 연구분야를 갖고 있음에도 의학이 과학이라는 변에서는 과학이라 할 수 있다."
2장.간주곡 1:[경제분석의 기법]
'과학적' 경제학의 특징으로 역사, 통계, 그리고 '이론'에 대한 기법을 경제학의 분석기법으로 정의하며 경제학 전반을 개괄한다. 경제사로부터 통계, 이론, 경제사회학을 하나씩 짚으며 그 목적과 의의를 밝히고 과학으로써의 경제학을 주창한다. 경제발전의 이롱과 경제분석의 역사 사이에서 노학자의 세월에 대한 겸손함이 읽힌다.
1) 경제사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다시 선택한다면 경제사를 선택했을 것이라 토로한다. 경제학은 본질적으로 역사속에서의 고유한 과정이며, 역사적 총체의 순환 위에 배치되는 이론적 구조물이다. 교환세계는 당대의 물질세계 위에 성립하고, 계급으로주터 소유형태까지 시대적 산물 속에 녹아들어있다. 선사시대적 기록과 민속학까지를 그 범위로 포괄하는 것에서 새삼 공감이 간다.
2) 통계의 중요성이야 말할 필요도 없지만, 그 역사적 근원, 16, 17세기로부터 시작된 에스파냐의 경제정책가(politicos)와 잉글랜드의 계량경제학자들, 정치산술가(political arithmaticians)에 대한 언급이 특기할만하다. 결국 통계는 경제분석 도구의 일부면서, 사회 전체를 총체로써 파악할 수 있는 수들을 이끌어내는 방법론이다. 베르누이나 라플라스와 그 업적이 경제분석에 소용된 방식에 대한 인용은 수학의 기능적 측면과 그에 대한 이해를 재차 강조한다.
3) 이론은 현상에 대한 모델링이고, 가설에서 도출된 결과를 이용하여 구성된 도구이다. "경제이론은 전략적으로 유용한 가정들을 포함하고 있는 도구들의 총합이라 할 수 있다." 복잡한 대상을 압축적으로 표현하며 그 역동을 묘사할 수 있는 도구들과 그 관계망의 총합이 곧 경제이론인 것이다.
4)경제사회학은 경제사에 국한되지 않는 외부적 요인의 총합에 대한 이해의 도구로써 하나의 범주를 이룬다. 곡물법의 폐지를 둘러싼 사회적 갈등의 결과가 경제적 발전을 이루는 제도적 요인이 되었다면, 사회적 갈등의 동학 역시 경제학의 스코프에 들어오게 된다. 이는 좁은 의미에서 정치경제학을 포괄한다.
정치경제학에 대한 단상과 응용분야에 대한 서술로 장은 마무리된다. 슘페터가 글을 상당히 솔직하게 쓰는 사람이라 정서가 언뜻언뜻 드러나는데, 초년의 패기와 만년의 성숙함이 대비되는 부분들이 흥미로움. 그래도 초년에 비해 글을 상당히 사람이 읽기 쉽게 쓰셨네 교수활동을 성실히하셔서 타인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신듯^^...
3장.간주곡 2:[다른 과학들의 동시대적 발전]
다른 학문분과간의 연계를 하나하나 짚어나가지만, 주되게는 철학과 과학으로써의 분리에 대해 고찰한다. 18세기 이후 이루어진 사회학과 경제학의 독립적 발전은 이제 제 분과간의 접변을 충분히 넓혀왔고, 상호참조 없이는 더 나아갈 수 없는 지점이 늘어나고 있다. 그러나 통상적인 사회학자나 경제학자는 전문화된 자기 분야의 연구에 머무르고 있고, 이것이 반드시 상호풍부화를 낳지도 않는다. 경제사회학에 대한 강조에도 불구하고, 간학문간 경계에 대한 인식이 있어야한다.
논리학은 경제학의 산물인 이론적 도구의 장교화와 체계화로, 심리학은 이론 그 자체의 풍부화로 상호 연관된다. 경제학의 각 요소에 대한 정성적 연구의 축적은 오늘날 그 접면을 더 넓히며 경기 순환 이론에도 소용되고 있다.
요는 철학이다. 왜 철학을 호출할까. 포괄적인 학문으로써의 철학으로부터 전문화를 통한 제 학문의 분화가 이루어졌지만, 하나의 세계관으로써의 철학은 여전히 각부에 영향을 미친다. 그러나 우리가 뉴턴의 역학을 공부하며 그가 가졌던 기독교적 세계관이 운동의 법칙에 미친 영향을 고찰하지 않듯, 보편적 물리법칙으로써의 과학은 그 이데올로기적 영향에 무관하게 자존한다. 그 예로 라이프니츠로부터 오일러, 줄을 들며 이들의 산물이 그 신앙과 오늘날 분리되었음을, 과학으로써의 경제학 역시 그와 같은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음을 드러낸다. 물론 '과학주의'에 대한 비판은 유념하고, 경제사회학에 대해 이야기한만큼 사회적 영향을 기각하지도 않으며, 그 자율성을 과도하게 강조하지도 않지만, 하나의 지향으로 그는 과학으로써의 경제학을 분명히 제시한다.
"이때 로크, 흡. 케네 그리고 누구보다 마르크스처럼 이주 분명한 철학적 견해를 갖고 있던 경제학자들조차 그들이 분석작업을 할 때 자신들의 철학적 견해의 영향을 사실상 받지 않았다는 점을 볼 수 있을 것이다."
4장.경제학의 사회학.
"과학사회학 (the Sociology of Science, Wissenssoziologie)이라 불리는 또 다른 과학도 존재하는데, 이 학문은 과학을 사회적 현상으로 다룬다. 이것은 사회적 요소와 과정을 분석하는데, 이 요소와 과정은 특정한 과학적 행동의 유형을 만들어내고, 발전정도를 조건 지우며, 동등하게 실현가능한 다른 주제들이 아니라 특정주제를 지항하게 되는 방향성을 결정하고, 특정한 절차의 방법을 다른 방법보다 더 장려하며, 연구방법의 성패나 개인의 성과를 좌우하는 사회적 작동양식(social mechanism)을 조직하고, 과학자들(우리가 사용하는 의미에서)과 그들의 연구가 갖는 지 위와 영향력을 고양시키거나 억누르기도 한다."
왜 과학사회학이냐. 경제학의 사회학을 통해 경제학을 규정하고자 함이다. 경제학이 갖는 이데올로기적 성격을 규정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제 분석의 방법론들이 갖는 도구적 성격과 그 축적에 따른 발전을 통해 경제학이 이데올로기의 자장을 벗어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고유성과 자율성을 갖는 독자적 학문으로써의 성과를 축적했음을 드러내고자 함이다.
1) '경제법칙'의 특수한 성질
경제학은 역사 속에서 사회적 조건에 따라 규정된다. 이는 시기에 따라 경제학의 적용대상이 그 양태를 달리함을 의미한다. 그 귀결인 경제법칙 역시 마찬가지로, 역사적 맥락을 따로 떼어놓고 적용될 수 없다. 이는 사회와 역사에만 적용되지 않는다. 이 세계를 조망하는 경제학자 개개인 역시 이데올로기의 영향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사람은 저마다 각자의 세계관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그 결과물은 이에 영향받는다.
2) 이데올로기적 편견에 대한 마르크스의 해명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하부구조와 상부구조라는 개념을 통해 사고와 세계관이 물적 토대에서 유래함을 지적하고, 그 계급적 성격에 대한 규명을 통해 이론의 자율성은 하부구조에 구애받음을 피력한다. 이데올로기의 등장인 것이다. 그러나 이데올로기를 구성하는 성분은 온전히 경제적인 것이냐, 그렇지 않다. 계급은 권력으로부터 지식, 금력과 전승에 이르기까지 다원적인 구성요소를 갖는 대상이고, 이데올로기가 작용한다고 해서 이론의 모든 것이 부정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브루주아 과학에 대해 프롤레탈리아 과학이 승리했다면 물리 법칙도 다시 쓰였을 것이다. 경제학 역시 마찬가지이다. 그 성원들의 계급적 토대가 이론이 체제순응적인 역할을 하도록 기능하게 한다면, 그는 그만큼의 내적 합리성 역시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3) 경제 분석의 역사는 정치경제학 체계의 역사나 경제사상의 역사와 어떻게 다른가?
이데올로기적 친화성은 따라서 경제분석의 역사를 정치경제학, 경제사상의 역사와 구분하는 동인이 된다. 국부론은 분명 위대한 연구지만, 동시에 당대 사회와 국가의 이데올로기에 대한 정식화이기도 했다. 그러나 분석의 도구로써의 이론은 시대에 따라 고도화되고 지적 축적을 통해 진보한다. 가격이론으로부터 무역이론, 화폐이론까지 연구는 축적되고 방법론은 발전하며 세계의 형상을 더 정확하게 묘사해나간다. 경제 분석의 '과학적 진보'는 분명히 존재한다. 경제 사상은 시대의 지배적인 이데올로기에 따라 이편 저편을 횡보해도, 기술과 숙련은 연구자들의 손에 남아 대를 넘어 이어진다.
4) 과학적 과정:비전과 절차의 원칙
"분명히 어떤 문제든 제기할 수 있으려면, 먼저 서로 연결된 현상들의 집합을 우리의 분석적 노력의 대상이 될 만한 것으로 구체화시켜야 한다. 달리 말해 분석적 노력은 그 자체에 원료를 제공하는 전분석적인(preanalytic) 인식행위를 필연적으로 전제해야 한다. 이 책에서는 전분석적 인식행위를 비전 (vision)이라 부를 것이다."
"분석적 노력은 우리의 관심을 잡아끈 현상들의 집함에 관한 비전을 파악했을 때, 이 집합이 처녀지이 속한 것이든 경작지에 속한 것이든지 간에, 시작된다. 첫 번째 임무는 비전을 말로 표현하거나. 인식과 조작이 용이하도록 이름표를 붙이듯이, 어느 정도 정리된 형태의 도식이나 그림으로 그 요소들의 자리를 잡아주면서 개념화하는 것이다."
"우리의 이론적•통계적 도구상자의 내용을 살펴불 때, 우리는 이데올로기적으로 중립이거나 그렇다고 알려진 항목을 많이 발견하게 된다. 예를 들어 한계대체율이라 불리는 개념은 1900년경 이래로 가치이론에서 이전의 개념인 한계효용을 대체하여 점점 더 많이 사용되고 있다. 후자에 비해 전자를 받아들이는 사람들은 경제생활에 대한 그 어떠한 이데올로기와도 무관하게 순수한 기술적 이유들 때문에 전자를 선호하는데, 사실상 어느 누구도 그 반대를 주장하지 않았다."
경제학의 이데올로기에 대한 종속성을 인정하면서도, 그 과학으로써의 성질을 개념화하고 누적되는 기술적 숙련으로써의 성질을 강조한다. 그것은 지향이다.
2부. 고대로부터 첫번째 고전적 상황(1790년 무렵)까지
제1장. 그리스-로마 경제학
1) 장의 정의
왜 2부는 첫전째 고전적 상황을 1790년으로 정의하는가. 18세기 후반을 수세기동안의 철학 연구에서 유래한 사실에 대한 지식(factual knowledge)과 개념장치(conceptual apparatus)가 다수 존재했고, 이들을 통해 경제학이 태동한다.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1776)역시 이 시기의 작업이다.
경제사상(Economic thought)과 경제분석(Economic Analysis)의 구분이라는 틀을 통해 고대 그리스로부터 분석의 역사를 정초한다. 이집트로부터 바빌로니아, 중국에 이르기까지, 물질세계의 활동과 그 교환은 존재해왔다. 이에 따른 신용의 발달 역시 공통적으로 드러난다. 그러나 경제활동 그 자체에 대한 분석의 축적과 고도화는 존재하지 않는다. 농업, 상업, 금융에 대한 행정체계와 제도는 존재하고, 이들 경제체계에 대한 일단의 방법론과 철학도 존재하지만, 그것이 경제적 쟁점에 대한 '과학적인' 추론방식은 아니었던 것이다.
2) 초기부터 플라톤까지
그리스 철학은 다양한 학문적 분야에 대한 총체적 접근이다. 오이코노미쿠스는 가정관리에 대한 실제적인 지혜만을, 아리스토 텔레스의 크레마티스틱스는 영업행위의 금전적 측면만을 지칭했으며, 이러한 추론들은 일반철학의 부분집합으로만 존재했다. 그렇다고 해도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작은 그리스 경제사상의 과학적 단편들을 제공해준다.
"그리스 사상은, 그것이 아무리 추상적인 것일지라도, 항상 인간생활의 구체적인 문제를 중심으로 움직였다. 게다가 이러한 생활문제는 항상 그리스인에게 문명화된 존재의 유일한 가능태였던 도시국가, 즉 폴리스 (polis)라는 이념에 중심을 두고 있었다. 그러므로 그리스 철학자는 우리와 다른 세계에 속한 요소들을 독특하게 종합했기 때문에 본질적으로 정치철학자였다. 그는 폴리스로부터 우주를 바라보았고, 사고나 다른 모든 인간관심사의 우주를 폴리스에 반영했다."
플라톤의 국가는 이론적 작업이지만 동시에 실물적 체제에 그 기원을 두고있다. 여기에서 분석은 결코 그 주제가 되지는 못했지만, 단편적으로 구성의 여기저기에서 모습을 드러낸다. 그 능력의 차이에 기인한 신분에 따라 정부는 전체 사회를 하나의 경제적 공동체로 통합하고 윤리로부터 경제생활까지 생활 일반을 규율한다. 참주정과 민주정의 선후관계에 대한 구분, 그 과정에서 상업활동과 부의 불평등이 정치적 역동에 끼치는 영향에 대한 인식은 물적 토대와 상부구조를 떠올리게 한다. 그는 능력의 차이에 따른 분업의 필연성과 화폐의 교환적 기능에 대한 언급을 통해 경제적 분석의 단초를 보여준다.
3)아리스토텔레스의 분석적 업적
아리스토텔레스의 작업은 플라톤의 그것에 비해 분석적 의도가 기본적으로 깔려있다. 그는 최고선과 그 현현으로써 최선의 국가를 추구했지만, 그 과정에서 그가 수집한 국가의 정채들에 대한 자료와 이에 대한 분석은 '과학적인' 개념장치로써 작동한다.
"(1)아리스토텔레스는 홀름한 분석가로서 자신의 개념에 대해 아주 조심스러운 태도를 보였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개념들을 하나의 개념장 치(conceptual apparatus), 즉 분석도구들의 체계(a system of tools of analysis)로 조립했다. (2)위에서 암시된 그의 '귀납적' 접근방법이 실제로 내포하고 있듯이, 그는 상태들뿐만 아니라 변화과정들도 탐구했 다. (3)그는 보편적이거나 내적인 필연성에 힘입어 존재하는 사회유기체나 행위의 모습과 입법적 결정이나 관습에 따라 제도화 된 것들을 구분하고자 노력했다. (4)그는 사회제도를 목적(purposes) 과 자신이 보기에 그것이 가져다줄 유•불리에 따라 논의했으며, 이에 따라 그는, 그의 계승자들까지 포함해서, 특수한 합리주의적 오류형태. 즉 목적론적 오류에 빠져들었다."
명목가치와 교환가치에 대한 그의 논증은 경제 분석 이론의 도구적 활용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이때 교환은 등가로 이루어진다고 가정하는데, 이는 정태적 분석에 대한 저자의 이론과 연결된다. 이자에 관한 부분에서 아리스토텔레스가 선박 투자 등 생산적 투자와 다른 부분을 분리하지 않은 것에 대한 언급 역시 같은 맥락에서 바라볼 수 있다. 이후 로마와 로마법, 그중에서도 민법과 이후 시기에 대해 언급하지만, 이 시기에 도구적 분석은 존재하지 않았음을 보이며 마무리된다.
2장. 스콜라학자들과 자연법 철학자들
1)커다란 공백
이후로도 역사의 시대는 이어지지만 동로마제국과 샤를마뉴 시대에 대해, 당대 행정이 겪었던 금융, 농업, 상업의 문제들에 대한 논리적 분석과 이에 대한 분석적 도구의 고안은 오늘날 확인할 방법이 없다. 샤를마뉴의 궁정은 국내 행정과 국제 경제에 관한 다양한 국면을 마주했지만, 경제 문제는 우발적인 헤프닝으로만 다뤄졌다.
2)봉건주의와 스콜라주의
봉건사회는 기사들의 사회이면서 동시에 교회의 통제하에 있었다. 주권과 신권은 서로 갈등하는 이중체제로 기능하며, 각각의 독자적인 영역을 구축한다. 그 속에서 수도원을 통해 지식의 집적이 일어나고, 일종의 초국가적 공동체를 형성한다. 스콜라 학자들은 그 이데올로기의 영향에서 온전히 자유로울 수 없었지만, 어떤 작업들은 그 한계를 뛰어넘기도 한다.
3)스콜라주의와 자본주의
도시가 발전하고 상업이 발달하고 권력의 공백을 따라 물자와 화폐가 이동한다. 신용이 발생하고 경제가 발전한다. 자본주의의 초기적 형태가 나타나며 대상인들이 등장하고 이들은 기성 질서와 경쟁하고 때로는 융합하며 독자적인 영역을 구축한다. 13세기로부터 15세기까지 자본의 영향은 점증하고, 이에 따라 상부구조 역시 변화하고, 세속적 지식인(laical intellectual), 세속적 과학(laical science)이 출현한다.
전문화와 이에 따른 도구적 지식의 출현은 지식의 범위를 확장하며 그 연속성을 구축한다. 이는 종교적 영향으로부터의 이탈로도 나타난다. 이는 스콜라 철학의 자장 속에서 움직인다. 스콜라 과학에 담긴 맹아적 형태의 세속적 과학들은 그 연속성을 유지하며 17세기까지도 이어진다.
4)스콜라사회학과 경제학
플라톤주의 경향과 개인주의 경향으로부터 출발한다. 그리스 고전에 대한 연구와 그리스 철학의 구성에 대한 이해는 당대 사조의 기반을 이루었고, 아리스토텔레스의 글은 이 지점에서 다시 생명력을 갖게된다. 수학으로부터 과학, 철학까지 다방면에 걸친 그리스철학의 영향은 로마법으로부터 구축된 개인주의 경향과 함께 그 철학이 담지하고있던 도구적 지식의 계승 발전으로도 이어진다. 육체적 노동에 대한 관점의 차이, 상업활동에 대한 관점의 계승과 시대적 변용은 이를 드러낸다.
아퀴나스의 사회학을 관통하는 핵심은 공공선의 강조이다. 이로부터 소유권에 대한 논의 역시 출발한다. 공공선을 위해서라도 소유권의 인정과 그에 의한 자원의 효율적 활용을 강조한다. 명목가치와 교환, 금속으로써의 화폐 그리고 이 과정에서 이자에 대한 논의 역시 아리스토텔레스의 논의를 계승하며 재구성된다. 이후 14세기로 17세기에 걸쳐 스콜라 경제학은 독점에 대한 비판, 공공선에 기초한 공공복지와 후생경제학의 개념들을 비롯한 다양한 분야로 뻗어나간다. 재화량에 기초한, 희소성으로부터 출발한 효용 개념이 자리잡고, 수요와 공급으로 이어지는 가격결정 요인의 도구적 지식 역시 발전한다. 실물적 사례로부터 출발하는 경제행위에서 상업행위 투기행위에 대한 분석 역시 그 틀을 갖춘다.
5)자연법 개념
자연법을 원시상태와 연결시키는 경향, 몰역사적이고 비과학적인 형이상학적 행태는 이론적 가정으로부터 출발한다. 현실의 원리를 사상하기 위항 공백지로써 원시상태를 끌어오는 것은 원시적이고 자연적인 것을 하나의 이데아로 놓으면서 다연덕으로 정의로운 것으로 가정한다. 이론은 이론이면 족하지 반드시 고대로 근원할 이유는 없는 것이다. 그러나 이로부터 합리주의가 발원하고, 이신론적 합리주의에서 무신론적 합리주의로, 천부 인권으로 나아간다.
6)자연법 철학자:17세기 자연법 분석
로크로부터 경험주의가 발아하며 스콜라주의와의 단절이 시도된다. 푸펜도르프는 자연법 체계로부터 경제적 분석의 도구들을 발전시킨다. 이후 계몽주의의 시대가 되고 공리주의가 등장한다. 역사 자료에 대한 체계적인 수집이 시작되고, 경제, 문화, 정치, 군사 제 분야에 대한 서술이 축적된다. 가치중립적인 보고서가 서사시와 설교를 밀어내며 근대의 지적 폭발의 토대가 된다. 모렐리나 마블리같은 초기 공산주의자들의 서술 역시 특기할만한 흐름이다.
스콜라철학과 자연법은 이전 시대의 지식을 계승하며 당대의 이데올로기와 결합하여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했고, 이는 시대를 지나며 축적되어 경험주의와 공리주의, 역사사회학과 경제적 분석도구의 발달로 나타난다. 그리스 시대로부터 17-18세기까지 각 시대의 사상들은 지배적 이데올로기의 영향 하에 놓여있으면서도, 다음 세대로 계승될 분석적 도구를 통해 객관적 체계를 전승하고, 이는 시대의 물적 토대와 지배적 사상에 의해 변용되면서도 그 시대를 초월한 비전을 담지한다. 이들의 이론 체계가 단순히 지배적 사상의 결과물이었다면 계승도 발전도 가능한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이론, 도구로써의 분석틀이 갖는 유용함과 가능성, 시대를 뛰어넘는 그 자체의 자율성이 이론이 갖는 과학으로써의 가능성을 드러낸다.
제3장 행정자문가와 팸플릿 저자
고전적 시기를 구설한 지적 축적에 대해 절별로 구준을 나눠 확인한다. 슘 선생님은 양적 축적보다는 그 이론적 기여에 맞춰 논지를 배치하지만, 상업을 통한 양질의 자료 축적과 기술적 전승에 대해서도 빼놓지는 않으신다.
1절. 사회사의 몇가지 사실
18세기로 들어서며 국민국가가 형성되고, 다양한 논자들이 이를 중심으로 경제학에 대한 논고를 작성한다. 국민국가는 가격혁명, 종교개혁, 봉건제와 발흥하는 자본주의 교차 속에서 군사국가로, 군사-재정 복합체로 발흥한다. 이는 초국가적 질서의 붕괴로 인해 가속되었으며, 그 결과로 구축된 초기 국민국가는 계획경제의 성격을 강하게 띄었다. 여기에서 잉글랜드의 특수성이 부각된다. 잉글랜드는 그 지리적 환경으로 인해 재정-군사국가의 지배력이 상대적으로 공백을 보였고, 이것이 민간의 국가에 대한 우위를 만들었다.
당대 경제는 농경이 상업에 대한 압도적 우위를 보이는 농업 중심적 구조였지만, 경제 분석에 있어서는 상공업을 중심으로 논지가 전개된다. 이는 저자들의 경제적 기반, 그리고 교환세계에서 상공업이 갖는 상대적 안정성과 높은 이윤율에서 비롯한다. 공장제 수공업자(manufacturer)와 직공(workman)의 구분은 여전히 명확하지 않았고, 종종 교차되어 나타난다.
이러한 상공업분야의 진화는 기존의 구조와 질서를 해체하며 더디게 진행되었다. 사업 실무의 확장을 통한 생산의 재구성, 정부에 의한 '독점정책'의 전개와 그에 대한 수용과 반발이 주요 특징으로 제시된다. 상인들의 권력은 단지 금력에서만 나오지 않았다. 그들은 소속된 종교집단을 통해, 또는 그 자신의 지위를 통해 영향력을 행사했고, 이는 특권회사 에 대한 대항과 수용애서 독점에 대한 길항으로 나타난다.국가는 이 과정에서 특권의 인허가권 행사를 통해 수입을 벌충하고, 경제에 대해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었다. 이는 반대로 이야기하면 민간의 행사를 침범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따라서 자유주의자들이 이를 적대한 것도 그들의 경제적 배경과 독점을 둘러싼 갈등을 고려해보면 당연하다.
"중상주의(Mercantilism)라는 표현은 애초 적대적 비평가들에 의해 그 결과를 지시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2절 당시의 경제학 문헌
장대한 독서리뷰로 장은 시작한다. 농업사회였던 만큼 농업에 관한 문헌들, 가정경제를 어떻게 운영하는 지에 대한 요결들이 한 구분을 이루고, 회계와 상업 산술에 관한 저작들 역시 축적된다. <상업실무>(1315년경), <교역팽창>(1615)등은 초보적인 경제학적 논의 역시 담고있다. 경제문제에 천착하여 이론적 분석을 통해 실무보다 이론을 중심에 둔 책으로는 <상업과 상업항해에 관한 실무적•이론적•역사적 사전>(1832)가 한 분기로 지목된다. 문헌의 목록을 보며 유럽의 저력이란 오히려 이런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기록의 나라라고는 하지만 사람들의 삶에 대해 생활에 대해 교역과 상업에 대해 다채로운 논문들로 당대를 재구할 수 있는 역사적 축적이란 어떤 구조에서 가능한 것일까.
이들 저자들을 행정자문가와 팸플릿 저자로 나눈다. 군사재정국가의 발달은 행정수요를 높이고, 이에 따라 재정 부문의 전문가들에 대한 지속적인 채용과 교육, 훈련이 요구된다.
"18세기에 독일에서는 관방학(Cameral Science)이나 국가학(Science of State, Staalswissen-schanft)이라 불리는 것. 그리고 좀더 정확하게는 경제관리•경제정책의 원리(Principles of Economic Administration and Policy. 독일어로 Polizeiwuissenschaft)라고 불리는 것에 대한 교육을 담당하는 교수직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행정 실무자로부터 교수진까지 공공으로부터 학계에 분포된 이들을 통해 학적 계승과 발전이 이루어진다. 이들을 행정자문가라는 범주로 묶는다. 팸플릿저자는 반대로 민간 영역의 상업 전통을 계승하고 옹호하는 이들이다. 이들은 상업에 종사하며 상호간에 교차되는 형태로 글들을 통해 고전적 상황의 축적에 기여한다.
3절 16세기의 체계들
결국 고전적 상황의 영점은 아담 스미스의 국부론이다. 국가체계에 대한 설명이 그 배경을, 행정자문가와 팸플릿저자의 구분이 그 축적의 주체들을 규명했다면, 이 절에서는 주요 저자들과 그 내용을 소개하며 어떻게 이론적 축적이 국부론에 점근했는지 확인한다. 이탈리아로부터 에스파냐, 프랑스, 영국으로 축적은 전파되고 확산된다.
나폴리의 백작이자 군주인 카라파는 행정전문가의 첫머리에 놓일만한 사람이다. 그는 균형예산, 경제적 활력을 유지할 수 있는 공정한 적정세율의 과세, 상인의 사회적 기능에 대해 고찰하며 근대국가의 경제문제를 포괄적으로 다룬 첫번째 인물이다.
보댕은 정치과학에 대한 소고를 통해 카라파의 저작과 비슷한 수준의 경제적 분석을 보여주지만, 과세에 관한 그의 논리는 국부론 5부로 좀 더 나아간 모습을 보인다. 보테로는 실물적인 자료에 기반한 경제분석을 통해 그 사실추구정신을 잘 보여준다.
에스파냐의 경제학은 그 수잊과 행정적 소요로부터 출발한다. 스콜라 학자들의 이같은 기여는 오르티스의 저작에서 드러나는 '준 체계'를 통해 증거된다. 이 부분에서 당대 독일은 기여가 없음을 냉정하게 지적한다. 잉글랜드의 사례 역시 특기할만하다. 개인저자 조다는 왕립위원회의 간행눌들을 통한 종획운동(인클로저), 길드, 과세, 독점, 통화들에 대한 연설, 청원, 팸플릿에서 당대의 경제적 분석의 편린들이 드러난다. 그 대표로 <공공복리론>을 꼽는다.
4절 체계들, 1600~1776
4절은 프랑스와 에스파냐로부터 다시 이탈리아로 나아가며 저작들을 검토한다. 프랑스의 몽크레티앙으로부터 독일의 보르니츠와 베졸트, 에스파냐의 나바레트를 통해 정치경제학이라는 단어의 발원으로부터 산업화에 대한 시대를 넘는 통찰까지 다양한 작업들이 이루어진다.
마타로부터 세켄도르프, 쉴리와 드 르퓌주는 이들 논의를 풍성화하고 더 발전시키며 나아간다. 세켄도르프의 고전적 역작(Teutscher Fürstenstaat)은 인구의 풍요와 동업조합의 규제 철폐, 의무교육과 소비세등을 주요 논점으로 한다. 관방학의 주요 명제들이 이 시기 제기된 것이다. 드 르퓌주의 <국가자문관 또는 현대정치 일반문집>(1645)은 정부의 형태와 행정실무를, 후반에서는 경제분석을 다룬다. 여기에서 공공재정, 조세에 대한 내용은 부를 보존하는 절약(parsimony)과 상업에 개입하는 축적(hoarding)의 효과를 구분하고 연결시킨 최초의 사례라는 점에서 의미있다.
유스티(Johann Heinrich von Justi, 1717~1771)는 관료로써, 교수로써 복지국가(Wohlfahrtsstaat)에 대해 개념화한다. 고용, 생산, 생필품으로부터 인프라까지 모든 것을 공급하는 국가를 정식화하고, 국민경제의 운영을 이 틀에서 사고하면서 시장의 조절기능과 경제적 분석을 하나의 고유한 기능으로 존중한다. 특히 민간의 영역에 대한 그의 태도는 제한된 관세와 생산의 새로운 결합을 위한 요소들을 강조하는 형태로 나타난다. 관방학 전통의 세계관 속에서도, 변화하는 세계의 근원에 대한 통찰에서 그는 현대 분석의 세계와 접점을 갖는다. 정부의 관리 하에 자율성을 통해 역량을 발휘하는 시장이라는 관점에서, 그는 생산의 기계화 역시 고용의 팽창을 통한 숙련의 이행, 전체 국민경제의 성장으로 바라본다. 카를로스 3세의 개혁기에 유명해진 캄포마네스와 호베야노스 역시 반 스미스적인 입장에서 국가의 개입과 그 속에서 자유시장의 균형을 통한 경제의 규율을 강조하며 이와 같은 세계관에 대한 근연성을 보여준다.
미라보의 작업에서는 인구와 농업에 대한 집중, 그리고 순소득과 총소득을 통한 개괄적 이론의 구축과 조세귀착의 문제를 하나의 진전으로 바라본다. 스튜어트의 <정치경제학 원리에 대한 연구>(1767)는 체계적이고 분석적인 일련의 경제학 지식을 '정규과학' 체계로 편입시키고자 하는 시도였다. 인구, 무역과 산업, 화폐와 동전, 신용과 부채, 조세 등 당대의 경제적 양태를 범주화하고 체계적으로 분석한다. 물론 그 수준에 대해서는 혹평한다.
이탈리아는 후생경제학이라는 의미에서의 정치경제학 체계를 높은 수준으로 정식화시킨다. 스콜라학파의 공공선은 이들의 작업 속에서 다시 활력을 얻는다. 나폴리 학파와 밀라노 학파, 그중에서도 밀라노 학파의 베리 백작을 통해 '쾌락과 고통의 미적분학'으로 표현된 경제적 균형에 대한 기본적 관점의 형성과 수지개념에 대한 언급, 무엇보다도 사실발견과 이론을 하나로 일관되게 짜는 방법론전 발전이 특기할만하다. 오르테스의 <국민경제>(1774)는 이후 멜서스의 인구론으로 연결되며 인구통계에 대한 체계적 접근을 보여준다. 베카리아는 예수회적 배경에서 교수로, 행정관료로 일하며 뛰어난 성취를 보인다.
밀수에 관한 소고에서는 그의 무차별-변화분석으로 이어지는 착상이 돋보이고, 범죄와 형벌에 관한 소고에서는 근대적 형법개혁의 기초를 마련한다. 중세와 근세를 명멸한 수많은 수사들과 학자들의 기여는 오늘날 글로써 전해지지 못하더라도 전승속에 살아숨쉰다. 그의 <공공경제학 개요>는 경제학의 주제를 정의한 후 기술의 진화, '분업', 인구 등에 대한 고찰로 시작된다. 공리주의를 베이스로 농업으로부터 공장제 수공업으로, 상업과 가치, 가격이론으로, 물물교환, 화폐, 경쟁, 이자, 외환, 은행, 신용, 공채들이 등장하며 이들을 심지어는 스미스 이후 시대로까지 이론적 통찰로 연결시킨다.
왜 그리스철학으로부터 스콜라 철학까지, 스콜라철학의 경제학과 사회학, 자연법으로부터 공리주의까지, 경제 분석의 역사와 이탈리아로부터 프랑스, 독일, 영국의 분석적 도구의 축적과 이론의 발달을 두개의 밀레니아를 거쳐 그 역사를 밝혔는가. 바로 최초의 고전적 상황, 즉 아담 스미스의 국부론에 이르는 여정을 설명하기 위함이었다. 1부로부터 5부로 구성된 국부론은 당대의 분석적 도구와 이론의 종합으로, 스코틀랜드적 배경과 그의 경제적 토대, 장기로 25년 집중적으로 적어도 10년간의 집약적인 노동은 그 이론적 결과물의 빼놓을 수 없는 구성요소다. 박식가적 지식(polyhistoric knowledge)의 잔향으로 그는 <도덕감정론, 1759>으로부터 이어지는 저작들은 철학으로부터 다방면에 걸친 그의 작업을 수행한다.
스콜라학파와 자연법 철학자, 흐로티위스와 푸펜도르프, 사회적 생산물과 국민적 배분에 관한 여러 산출물들은 그의 손에서 결합되어 하나의 이론이 된다. 이 절에서 설명한 행정자문가와 팸플릿 저자들, 그리고 그들에게 영향을 주었던 수도원과 중세 대학의 지적 산출물들이 누적되어 결합한다. 국부론의 의미를 그 대중적 접근성, 기존의 논의에서 한발 더 나아간 이론적 결과물로써의 성취보다는 기존의 체계를 종합하고 유기적으로 연결하여 대중의 인지체계 내에 하나의 자율성을 가진 지적 체계로 구축해낸 것에 더 집중하는 것은, 그 창립자로써의 위상에 대한 강조이기도 하다.
왜 독자안내를 5부로부터 시작하시는지는 그간 5부에 대한 집착적인 서술들이 잘 보여주신다. 공공지출, 공공수입, 공공부채에 대한 역사적 접근은 일반적 발전, 그리고 개별적 사실에 대한 보고들과 조화를 이루며 이후의 논의체계의 기초가 된다. 사실의 덩어리로부터 이론의 실들이 엮여나가고, 사실이 작열하며 이론이 분출한다. 여기서 드러나는 분석의 기념비는 후대의 전범이 된다.
1부의 분업은 그의 저술을 통해 그 중요성을 획득한다. 분업에 대한 언급은 이전에도 이루어져왔지만, 그만큼 이 현상에 대해 천착한 이는 이태까지 없었다.
"오로지 분업만이 그토록 "억압적인 불평등"에도 불구하고. " 문명사회에서는, 가장 존경받고 활동적인 미개인이 누릴 수 있는 수준과 비교해볼 때, 심지어 가장 경멸받는 최하위의 구성원들조차 흔히 고도의 풍요를 누리게 되는 이유" (원고: 스콧, 앞의 책. 328쪽 참조)를 설명해준다. 기술의 진보, '모든 기계의 발명-그리고 투자조차-은 실로 분업에서 비롯되며, 사실상 분업의 부산물일 뿐이다."
그리고 분업이란 생산의 새로운 결합이다.
분업-물물교환-화폐로 이어지는 전통적인 연쇄(sequence)의 달성은 그 작업의 정점이다. '교환가치'는 '사용가치'와 분리되고, '화폐가격'은 '명목가격'과 '실질가격'을 통해 더 세밀해진다. 이후 리카도와 발라로 이어지는 노동용역으로의 분해의 단초 역시 제시된다. 노동가치론과 생산비는 혼재되어 나타난다.
균형이론은 세, 그리고 발라로 이어지는 전형을 제시한다. 수요공급으로 결정되는 자연가격, 필요가격, 정상가격의 요동은 정태적 모델링의 기초를 잡는다. 독점가격과 자유가격, 자유경쟁 가격의 장기적으로 "가질 수 있는 가장 낮은 가격이다."라는 명제는 이후 재차 증거된다.
이윤의 원천은 무엇인가. 물적 재화의 사업상 이용에서 비롯된 수익이며, 이자는 단순히 이윤의 파생물이다. 사업가가 왜 undertaker냐 황당하네... 기업가(entrepreneur)나 산업가(industrialist)는 "감독과 지시"를 제외하면 노동과 이들의 작업의 생산물 중 일부를 전유한다는 언급은 이윤 착취론이 암시되긴 하지만, 사업에 따른 리스크와 "원자재와 임금의 총스톡"응 선불했다는 언급은 다른 해석의 여지 역시 갖는다.
노동용역과 토지용역으로 가치성분을 분해하는 것은 경제발전의 이론에서 제시된 상이고, 그 관점에서 스미스의 지대에 대한 착상을 비판한다. 지대는 단순히 토지의 '독점'에 의한 결과는 아니다. 토지가 생산과 결합하며 발생한 유동성의 표현이지. 수확체감과 수확체증의 전초 역시 화폐이론에서 제시된다.
그리고 자본이다. 슘페터 선생 본인 역시 이 과정을 통해 스스로의 이론을 역사속에서 연원을 찾아가며 비교대조하신다. 결국 경제분석의 역사란 그 원형을 찾아나가는 과정이면서, 현재적 상태에서 이 학문이 나아가야 할 좌표를 그리는 작업이고, 그를 통해 스스로를 돌아보는 일이다.
스미스는 이 작업을 하면서 선대를 단순히 답습하지 않았다. 제기된 내용들을 스스로의 관점에서 분석하고 비판하며 하나로 엮어낸다. 그 과정이 있었기에 이는 하나의 전형으로 후대의 전범이 될 수 있었다. 생산적 노동과 비생산적 노동의 구분, 총재화 스톡 중 자본의 정의, 고정자본과 유동자본의 구분, 유동자본의 범주, 화폐의 포함과 임금의 제외를 통해 자본의 그림을 그려나간다. 저축을 강조하며 이자는 이윤의 파생임을, 이윤의 우선성을 보인다.
"그러나 영국의 바깥에서는 대부분의 경제학자가 거의 리카도에 다다르지 못했으며. 스미스는 계속 해서 지배했다. 이때부터 그는 창립자'라는 휘장ㅡ 동시대인 중 어느 누구도 그에게 주려고 생각하지 않았을 ㅡ을 두르게 되었으며, 이전의 경제학자들은 '선구자'ㅡ그렇지만 이들 중에서 스미스의 생각에 남아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발견하는 일이 곧 놀라움의 대상이 되어버린ㅡ 의 역할로 들어가게 되었다."
서론으로부터의 여정이 여기에서 하나의 분기를 맞는다. 서론의 착상들은 시대 속에서 반복되어 재생된다. 각각의 학자들은 시대의 물적토대와 이데올로기의 영향을 받으면서도, 시대를 뛰어넘는 통찰을 다음 세대로 전수한다. 구절구절속에서 드러나는 공산주의와 마르크스 주의로의 연결점들 역시 참고가 된다. 왜 이론의 역사를, 분석적 도구의 점진적 축적을 바라봐야하는지 그는 서론 이외에서 재차 설명하지 않는다. 그저 역사 속에서 반복적으로 드러내며 증거할 뿐이다.
우리가 오늘날 누리는 분석적 도구가 어디로부터 비롯하는지 이해하는 과정은 경제사 그 자체와 맞물리며 물적 토대와 상부구조를 유기적으로 연결한다. 그는 단순히 사상으로부터 경제분석을 분리하는 것이 아니다. 물적 토대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양자의 유기적 역동을 시대를 통해 증거하는 것이다. 시대를 살아간 사람들의 진심을 진심으로 읽어나가는 과정이다.
5절. 준체계
준체계는 현실적인 제약이나 인간의 제한된 합리성을 가정하여 고안된 이론적 틀이다. 이탈리아 사람 세라로부터 나폴리의 금은유출과 국제수지, 이를 통해 경제유기체의 상태에 대한 일반적인 상태에 대한 이론으로 나아가는 경제적 분석을 관찰한다. 차일드의 <무역론, 1668>역시 경제 일반의 현실로부터 그 과정에 내재하는 논리의 단편을 연역해 들어가는 시도를 보인다. 네덜란드와 개르만어권에서도 이와 같은 '준체계'에 포괄되는 이론구성의 시도는 나타났지만, 관련해서 진정으로 유의미한 것은 해밀턴의 저작인 <제조업에 대한 보고서, 1791>로, 최선의 '응용경제학'을 보여준다.
6절. 공공재정 재론
공공재정은 15세기 이탈리아 도시공화국, 피렌체와 독일의 자유도시들로부터 나타난다. 이들 재정은 전통적인 봉건적 관계 위에 도시기득권층에 대한 제후의 불규칙하고 변덕스러운 징세요구가 결합하고, 이들 자유상층계급(Eastates)은 이를 일부 부감하고 또는 하부에 전가하며 행정기구를 구축하기 시작한다. 이 행정기구에 대한 지배권을 두고 제후와 자유상층계급간의 줄다리기가 일어나고, 영국에서는 이것이 의회의 손 안에, 프랑스에서는 앙시앵 레진의 붕괴로 나타나지만 대개의 유럽국가에서는 18세기 이후 재정개혁이 완수되며 근대국가로의 이행이 시작된다.
알 카발라같은 간접세와 직접세가 도입되며 재정수취방법은 다변화한다. 놀랍게도 당대의 간접세는 모든 계급이 동일하게 책임을 진다는 점에서 조세평등적인 요소를 갖고있었다. 나으리들은 직접세는 면제되니까... 조세정의에 대한 논의가 시작되고, 재정법학이 발전한다. 재정의 필요는 이에 대한 정당화와 체계화를 유발하고, 이를 통해 다양한 논의가 발전하며 공공재정에 대한 경제적 분석의 토대를 구성한다.
그 대표적 사례로 보방의 <흠정 십일조안, Projet d'une dixme royale, 1707>이 있다. 그는 이 책에서 혼란 상태의 조세를 폐기하고, 일부의 소비세와 관세, 최고 10%의 소득세로 일원화할 것을 제안한다. 보방과 그의 동맹으로 소개되는 부아기유베르의 저서가 독특하다. <프랑스의 사정. 루이 14세 통치하의 몰락하는 프랑스>는 그의 신랄함이 돋보이는 제목선정을 보여준다. <대신들의 두시간 노동에 의해(!) 왕에게 800만의 인두세를 받게 하는 극히 쉬운 방법(!)>역시 위트넘치는 부제이다.
보방은 재정정책을 경제문제의 치료도구이자 경제과정을 포괄적으로 살펴본 궁극적인 결과라고 본다. 또한, 이를 위해 수치적인 사실을 구성하고 이를 논지로 엮어내며 경제 분석의 전범을 제시한다.
브로기아의 <조세, 화폐, 공중보건정책에 관한 논고, 1743>역시 공공재정에 대한 분석 속에서 조세를 안전보장에 대한 지불이자 정부 서비스의 대가로 분석하며, 직접세와 간접세가 상호보완적인 재정의 양면임을 정의한다. 확정소득과 불확정소득을 구분하고, 양자에 대해 과세를 달리해야한다고 분석하는 부분에서 그의 분석은 과학적 업적으로 연결된다.
7절 유토피아에 대한 노트
일련의 국가소설들 속에서도 경제분석의 편린이 발견된다. 토마스 모어의 <유토피아, 1516>은 그런 사례이다. 자연법이 구현된 이상국가의 경제적 거동을 묘사한 부분에서 이와 같은 통찰을 찾을 수 있다. 재화의 생산과 분배가 국가에 의해 계획되고 규율되는 점, 그 속에서 화폐의 역할과 과점(oligapoly)이라는 단어의 개념적 정의는 오늘날의 그것과 상통하는 부분이 있다.
제4장 계량경제학자들과 튀르고
이 장은 행정자문가들을 중심으로, 이들로주터 계량경제학이 어떻게 발원하였는지 주요 개념을 중심으로 확인한다.
1절 정치산술
페티(William Petty, 1623~87)는 정치 산술(Political Arithmetick)을 통치와 관련된 것에 대한 수리적 기술로 정식화한다. 그는 이론가였지만, 수량적 사실을 가지고 작업하는 분석도구를 벼리는 일이 과학적 지향을 갖고있다는 점을 이해하는 사람이기도 했다. 그는 자기가 살던 시대와 조국의 실제 문제로부터 출발하여, 통계적 탐구를 통해 개념을 고안하고 시대적 지평을 넓혀나간다. 화폐의 유통속도에 대한 연구에서, 그리고
"노동은 부의... 아버지고, 토지는 그 어머니다."
라는 언급으로부터 두가지 '본원적 생산요소'로의 분해라는 착상의 발원점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토지와 노동 사이의 자연적 동등성(natural par)에 대한 연구에서 그는 '성인남자의 하루분 식량'을 생산하는 토지의 크기와 그 남자의 하루 노동을 등치시킴으로써 토지의 가치를 노동과 연결시킨다.
2절 부아기유베르와 캉티용
부아기유베르는 경제유기체를 상호의존적인 경제량의 균형체계로 보고 이 체계를 소비의 관점에서 구축하며 이를 두 사회계급, 부자와 빈자에 기초하여 해석한다. 그의 부자관은 지대추구자들에 대한 인식과 유사하다. 부의 원천은 토지와 노동으로, 모든 상품이 자유경쟁 속에 놓인다면 경기순환은 정상작동한다고 설명한다.
페티로부터 시작된 계량경제학적인 열정은 캉티용에서 그 지평을 넓히고 케네로 이어진다. 이들간의 관계는 단순히 사승관계가 아니라, 페티가 이루지 못했던 업적들을 캉티용이 넓혀나가는 지적 동료의 방식으로 완성된다. 캉티용의 저작을 '순서대로' 독자안내를 써주신다.
토지와 노동을 부가 형성되는 조건으로 정의하고, 토지소유의 형태에 따라 계층을 지주, 차지농, 노동자로 설정한다. 노동자, 장인, 업종별 보수차이와 인구 문제에 대한 언급을 통해 노동의 수요와 공급, 노동이 갖는 자연적 부로써의 속성을 정의한다. 토지와 노동의 교환을 정의하며 양자간의 등가교환을 생활비와 아르팡당 생산량으로 비교한다.
정상수준에 대한 논의에서 그는 정상상태와 그것과의 괴리를 인식하지만, 이는 수요 공급의 문제에 국한되고 일반적인 고찰로 받아들여지지는 않는다. 다른 모든 소득항목은 비용에 의해 상쇄되는 반면 지주의 지대는 그렇지 않다는 언급에서 왜 중농학파인지 새삼 느끼게 된다. 순수지대는 희소한 자연적 요인의 생산성에 의해 설명되는 순수익이라는 정리가 이를 잘 요약한다.
그는 차지농을 기업가의 개념에서 설명하며, 그의 거래를 '확정'소득의 지주와 노동자에 대한 지불로, 생산물의 '불확정'소득의 판매로 정의한다. 상인도 포목상도 같은 과정을 수행하고, 본질적으로 위험을 주담하는 생산과 거래 감독자이다. 이는 스콜라철학으로부터 발원한 학설이지만, 캉티용에 의해 처음으로 정식화된다.
현금지불과 현물인도에 의한 거래의 연쇄, 차지농에서 시작해 차지농에게로 돌아가는 상품과 가치의 흐름은 경제과정을 지배하는 일반원칙에 대한 선구적인 진술로 가치를 갖는다. 다시말해 그는 경제표(Tableau économique)를 그린 최초의 인물이었다.
3절 중농주의자
케네와 친구들에 대한 신상명세로 시작한다. 이들 중농주의자는 학파를 이루고 저널을 통해 의견을 개진하며 이론적 연대를 구축한 최초의 사례이다. 외과의사이자 마담 퐁파두르의 주치의로 수많은 경제학 저서를 집필한 케네로부터, 미라보, 리비에르, 보드 신부, 피에르 뒤퐁까지 이들은 <경제학 잡지, Journal Oeconomique>, <농업, 상업, 재정평론>, 그리고 <새로운 현상>등으로 경제학적 연구를 누적시킨다. 특히 <새로운 현상>과 마르크스주의 잡지 <신시대, Neve Zeit>와의 비교가 흥미롭다.
"즉 동일한 열정의 확신, 비슷한 논쟁적 기질, 정통파적 견해와는 다른 것을 다루지 못하는 아주 동일한 무능력, 신랄한 불만을 토로하는 유사한 능력, 동일한 자기비판의 부재 등이 그것이다. 이것은 특히 비평논문에서 보인다. 그려나 견고한 장점은 이들 오점을 제거하고도 남음이 있다. 물론 그 자체만으로 우수한 튀르고의 <고찰>과 <경제표>에 대한 해설을 별도로 하더라도 이 잡지에는 아주 훌륭한 재료가 다수 들어 있다."
케네의 국가와 사회에 대한 이론은 스콜라 철학을 답습한다. 케네는 스콜라 학자들의 상대적인 태도를 기각하고, 이를 불변의 위치에 올린다. 이는 무비판적이고 무역사적인 방식으로 전제주의적인 절대주의로 향한다. 그는 토지의 순지대가 기존 순소득의 유일한 원천이며, 조세란 모두 어떤 경우든 궁극적으로 토지의 순지대에 적용된다는 이론 하에 토지에 대한 단일세를 주장한다.
"케네는 완전경쟁의 극대화설(Maximum Doctrine of Perfect Competition)의 창시자들 가운데 가장 중요한 인물이다. 즉 그는 완전경쟁 조건이 지배적인 상황에서 모든 사람이 자유롭게 자기 자신의 개별적인 이기심에 따라 행동할 수 있다면 모든 사회성원의 욕구의 최대만족은 전체적으로 보면 달성될 수 있으리라고 주장했다."
그는 매우 포괄적인 분석도식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인구, 이자, 화폐 간의 상관관계를 밝혀나가며, 단순한 사실간의 관계에서 나아가 잔체 체계의 구성요소간의 상호관계를 큰 틀에서 도시한다. 그는 모든 사란이 즉시 소비재에 그의 순수입을 지출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몇몇 사람이 그들의 개인적인 화폐재고량을 늘리기 위해 저축한다면 이는 총수요의 감소로, 또 총산출의 감소로 이어질 것이라 생각한다. 이는 '케인스적' 측면으로 연결된다.
그는 자본에 대한 분석에서 기업농이 이용할 수 있는 자본이 기업농의 활동에 중요한 요소임을 간파한다.
"그 직접적인 결과는 차지농의 자본수요를 토지선대(avances foncieres) -개간, 배수, 울타리, 건물 등 초기 지출로 전혀 반복되지 않거나 장기적으로만 반복된다 -. 원선대(auances primilives)-소 나 말을 포함한 장비에 대한 지출ㅡ. 연선대(avances annulelles)씨앗, 노동 등에 대한 경상지출-로 분류한 것에 구체화되어 있다."
이 선대는 화폐로 구매되어야만 하고, 이는 자본에 의해 중개된다. 생산적 활동을 위한 확정적 자본의 지출, 불확정 소득의 수취를 통한 차익의 실현이라는 도식이 기저에 깔려있는 것이다.
"이 이론은 토지지대가 존재하는 유일한 순수익이고 사회의 가처분 순소득 전체와 공존한다고 주장한다. 다른 모든 수익은 비용품목이 생산에 의해 사용되었던 것을 충분히 보상하는 이상은 아니라는 의미에서, 그 품목과 수지균형을 이룬다는 것이다. 노동자는 그의 노동능력을 재생산 하기에 필요한 것 이상을 획득하지 못한다. 자본가는 위험을 고려하여 그의 자본과 그의 노동능력음 보상하는 데 필요한 것 이상을 얻지 못한 다. 즉 노동, 관리. 자본은 효용을 낳지만, 어떤 잉여가치도 생산하지 못 한다는 의미에서 '비생산적'이다.
이 이론은 일반적인 사고(conception)에서 마르크스의 이론과 놀라 움 정도로 유사성윤 갖는다. 케네가 토지만이 잉여가치에 대해 생산적이라고 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마르크스는 노동만이 잉여가치에 대해 생 산적이라고 했다."
결국은 토지와 노동용역이라는 본원적 생산요소로의 분해이다. 가치의 원천이란 어디에서 나오는것인가에 대한 탐구이고. 정태적 균형은 어떻게 구축되었는가에 대한 탐구이며, 그 과정에서 분석적 도구는 어떻게 축적되는가에 대한 확인의 과정이다.
그의 경제표는 이러한 이론을 경제 요소들간의 관계에 대한 정리들을 하나의 틀로 묶어 도식화한다. 이는 개별 단계를 종합하는 수량적 이론의 가능성을 크게 열어주며, 경제균형의 성질에 대한 명시적 개념을 전달하기 위해 고안된 최초의 방법이다. '국지적' 관계에 대한 탐구의 누적을 통한 일반이론의 도출은 이전의 경제학자들에게도 명백한 징후로 존재했지만, 그것의 정식화는 케네로부터 시작되었다. 이는 동시에 과학적 분석의 한 분기이기도 하며, 경제의 연쇄를 보여주는 방법이었다.
제5장 인구, 수확, 임금 그리고 고용
1절. 인구의 원리
인구문제는 과잉인구의 발생과 함께 인지되기 시작한다. 유럽에서 이는 근세로 들어오며 발생한 문제였다. 17~18세기의 국가적 팽창과 기존 패권국 및 중부유럽의 인구감소는 인구팽창에 대한 긍정으로 드러난다. 즉, 인구의 증가는 국민경제의 성장이며 부 그 자체라는 것이다. 물론 당대의 인구에 대한 분석이 정밀하지 않았기에, 이는 관념론적 전개로 시작된다.
그 국가별 전개는 각국의 상황에 따라 달라진다. 독일과 에스파냐는 인구감소를 겪은만큼 인구팽창론에 기반한 논의가 활발하게 일어나고, 프랑스는 그 확장이 저지당하며 반-인구팽창론적 학설의 발달, 농업에 대한 고려와 성숙에 대한 지향으로 드러난다. 역설적인 것은 영국의 상황이다. 확장일로의 영국에서는 왜 멜서스주의가 발흥했는가. 이는 18세기 말의 산업혁명과 이로 인한 경제발전의 보폭이 빨라진 것에 기인한다.
최초의 인구센서스는 미국에서는 1790년, 영국에서는 1801년에 이루어진다. 당대 기준으로 인구통계에 대한 믿을만한 자료는 19세기 초반에서야 제공되기 시작한다. 이 이전의 연구들은 애매한 지표와 미시적 추이를 통한 인상비평에 기반한다. 페티로부터 프라이스 등 여러 저자들의 논의가 이어지고, 하울렛의 기여가 특기할만하다. "그는 종획운동(인클로저)를 인클로저의 결과이자, 인구증가 때문에 필요한 몇몇 농업개량의 '원인'으로 파악했다."
멜서스에 이르는 경로로 1589년 보테로의 연구를 제시한다. 그는 인간의 생식능력과 생계수단의 관계가 인구 증가의 유일한 요인임을, 전쟁, 전염병에 의한 인구압의 해소 외에는 이로 인한 결핍이 인구 억제의 조건임을 드러낸다. 멜서스의 기여는 '인구의 기하급수적 증가'와 '식량의 산술급수적 증가', 그리고 그 격차로 인한 인구압의 팽창으로, 과학적 정식화로 나타난다.
2절. 수확체증과 수확채감 그리고 지대이론
인구론자들의 견해는 인구의 증가가 부의 증가로 이어진다는 것, 수확체증의 원리를 전제한다. 그러나 페티는 사회적 간접비 지출은 다른 조건이 동일하다면 인구규모에 비례하여 증가하지 않음을 주장한다. 이는 수확체감에 대한 인식이다. 스미스 역시 분업과 기술진보를 통한 제조업에서의 수확체증을 언급한다.
스튜어트는 <원리, 1767>에서 외연적 한계지(Extensive Margin)으로 불리게 될 사례를 통해 인구증가에 따라 노동력이 더 열등한 토지에 투입되고, 그로인해 인당 생산성이 감소함을 제시한다. 튀르고는 내포적 한계지(Intensive Margin)를 통해 동일한 자본이 연속적으로 투입될 경우 변곡점 이전에는 그 성장률이 수확체증하지만, 이후로는 수확체감하여 궁극적으로는 균형점에 다다름을 지적한다.
그렇다면 이 수확체증, 체감의 곡선이 기술진보로 상향이동한다면 어떻게 되는가. 정태에서 동태로의 전환이 일어나며, 새로운 수확증가가 일어난다. 이와 같은 진보가 연속된다면, 그 단계에 따른 격차의 감소는 일어나지 않는다. 즉 "기술진보에 대한 수확체감 법칙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를 역사적 수확체증이라고 한다.
"새로운 기술 수준이란 비가역적인 역사적 과정 속에서 도달되는 것이며, 그 수준에 실제로 도달하기 전까지는 우리에게 감춰져 있기 때문이다."
지대의 문제는 그 본원적 성격으로부터 출발한다. 이는 지주의 투자에 대한 이자지불이자, '자연적이고 파괴될 수 없는 생산력'으로 인식되는 것으로 시작한다. 스미스는 비용이 들지 않는 것은 가격을 가질 수 없음을, 토지는 비용이 들지 않지만 가격을 가짐을 지적하며, "토지의 지대는....... 토지의 사용에 대해 지불되는 가격으로 간주되며, 자연적인 독점가격인 것이다."라고 이야기한다.
반면 앤더슨은 <고찰, 1777>에서 "특정량의 목화에 지불되는 지대는 이 목화를 재배하는 데 든 비용과 같은 양의 목화를 재배하는 데 드는 최대비용 사이의 차이와 동일하다."고 주장한다. 지대를 상이한 비옥도를 지닌 토지의 이윤을 균등화시키는 '장치'라고 말한다.
논의가 축적되고 분석의 기반이 되는 데이터와 분석의 도구로써의 개념이 성숙한다. 인구론에서 학자들은 저마다의 지역적 조건에 기반하여 논의를 전개하지만, 이들이 창조한 개념은 세계 속에서 공명하며 다음 과정을 밟아나간다. 멜서스, 스미스, 페티, 튀르고, 앤더슨등이 각자의 조건에서 세계를 분석하고 결과를 쌓아나간다.
 
3절 임금
 
차일드는 "전 세계의 문명화된 대다수 국가는 인구의 많고 적음에 비례해서 상대적으로 부유하거나 가난하다"라고 주장한다. 그의 입장은 '고용'을 중심으로 노동용역에서 수요와 공급을 이끌어내고, 당대의 경향을 반영하면서도 최저생계비 법칙과는 거리를 둔다. 고임금과 저임금 사이에서 당대 경제학자들의 논의는 갈린다. 저임금이 산업 성장의 원동력이라는 소리 역시 상당히 유래가 깊다. 페티는 이 입장이었음. 스튜어트나 흄 역시 고임금이 경쟁조건을 저해한다고 주장한다.
 
스미스는 "노동생산물은 노동에 대한 자연의 보상이나 임금을 구성한다."는 명제를 통해 노동용역으로 구성되는 임금의 성분을 드러낸다. 여기에 사적소유로부터 초래되는 지대를 엮어 그 성분을 분해하며, 노자관계의 비례성이 이에 영향을 미침을 논증한다. 19세기의 착취와 교섭력 임금이론들 역시 같은 구조에서 출발한다. 여기에서 임금의 조건, 곡물가격에 따른 비례를 부정하며, 이를 부의 절대적 수준이 아닌 '그것의 연속적 증가'의 함수로 설정한다.
 
4절 실업과 '빈민의 상태'
 
중세의 빈곤으로부터 출발한다. 빈곤하기 전에 죽으면 빈민도 없다. 정적 사회구조는 양적으로 의미있는 규모의 실업 역시 유발하지 않는다. 사회 외로 밀려난 사람들은 거지, 부랑자, 노상강도가 되고, 이는 치안에 의해 규율된다. 이는 15세기 이후 변화한다. 농업혁명이 농민들을 도시로 내몰고, 프롤레타리아가 유효수요보다 빠르게 증가한다. 경제의 성장은 이를 흡수하지만, 당대 사회의 이동성은 증가하는 빈민들이 이와 결합될 수 없게 하는 방벽으로 작용한다. 18세기 후반 산업의 팽창은 고용마찰로 나타나며 이를 가속한다. 영국에서도 나타난 실질임금의 감소경향은 그 증거이다.
 
이러한 빈민문제에 대해 영국으로부터 대륙까지 다양한 정책적 대안이 시도된다. 빈민법으로부터 식민지 사업까지 정챡들이 도출된다. 구빈세는 교구세로, 그 집행의 권한이 선출된 명예직 지방관리들에게 있었다. 중앙통제와 지방통제, 외부구호 그리고 구빈원 내의 부양 간에 입장의 차이가 생기고, 시대의 흐름은 후자 쪽으로 기운다.이에 대한 주요 처방은 대륙에서 중상주의로, 적자재정을 통한 경기부양으로 나타난다. 물론 적자재정의 목적이 구빈사업은 아니었다.
 
자선이라는 명제 하에 후기 스콜라학자들응 걸인들, 그들의 '구걸권'을 옹호하며 온정적 입장을 취한다. 유럽의 행정자문가들 역시 '빈민(Das Armenwesen)'에 대한 연구를 통해 관방학 속에서 이를 다룬다. 고용과 부양의 책임이 국가의 의무가 된다.
 
당대 저자들은 우선 빈곤을 개인책임 문제로 접근했다. 이는 구빈원 체계에 대한 옹호로, 그 생활의 질이 사회적 최저선보다 낮아야 한다는 주장에 대한 암묵적 지지로 그 처벌적 의도를 드러낸다. 여기에서 한발 더 나아간 사람들은 그 구조적 원인, 농업에서의 종획운동과 이로 인한 생산성향상, 마찰실업, 고금리에 대해 고찰한다. 차일드는 고금리가 조기 사업철회를 촉진하여 고용마찰로 나타난다고 주장한다. 더하여, 인구압과 실업을 연결시키는 논지 역시 하나의 흐름을 이룬다. 인구의 '과잉생산'이 고통의 근원이라는 것이다. 이는 구빈법이 그 자체로 인구 증가의 요소로 기능하고있다는 주장과 연계된다. 18세기 참 하드보일드하다.
 
18세기에는 아동노동이 상식이었을 뿐만 아니라 가내에서, 면직 매뉴팩쳐에서 부모와 함께 일함으로써 자연히 숙련을 쌓을 수 있는 하나의 자연상태이자 축복으로 여겨졌다. 재차 말하지만 참... 하드보일드하다. 그러나 에덴과 데이비스, 번의 <빈민법의 역사, 1764>등에서 현실에 대한 사례조사가 축적되고, 이후 19세기 입법상의 발전으로 연결된다.
 
6장. 가치와 화폐
 
실물적 분석으로부터 출발한다. 실물적 분석이란, 화폐는 교환수단이며 결국 경제는 생산수단간의 교환으로 정립된다는 관점이다. 반면 화폐적 분석은 화폐 요소가 경제의 구성성분으로, 그 자체로 독립적인 성분임을 직시한다.
 
"화폐가격 화폐소득 그리고 이러한 화폐소득과 관련된 저축과 투자의 결정은 더 이상 재화와 서비스의 양의, 그리고 그것들 사이의 교환비율의 표현 -때로는 편리하고 때로는 왜곡된, 하지만 항상 비본질적인 -으로 나타나지 않는다. 그것들은 독자적인 생명력과 중요성을 획득하게 된다. 그리고 자본주의 과정의 본질적 특징은 그 베일에 달려 있을수도 있으며 그것(화페 -유인이) 없이는 '그 배후의 얼굴도 불완전하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이는 집계분석, 또는 거시분석으로 연결된다. 경제시스템의 변수들을 총소득, 총소비, 총투자 같은 소수의 사회적 총량들로 환원시키고, 이들간의 관계를 규명하기 위해서는 그 동등 가치기준인 화폐적 집계치가 필요하다. 화폐란 생산요소간의 관계이며, 동시에 독립적인 요소인 것이고, 거시 분석의 핵심 기초인 것이다.
 
그렇다면 고가의 풍요와 저가의 풍요 중 무엇이 경제 시스템에서 지향해야 할 바인가. 전자는 인플레이션이고 후자는 디플레이션이다. 이는 결국 성장의 문제와도 연결된다. 케네의 인용구가 새삼 떠오른다.
 
"물가가 하락해서는 안 되는데 왜냐하면 그 것은 시장가치이자 소득이기 때문이다.(XVII) 저가가 빈민들에게 유리하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단지 그들의 임금올 하락시킬 뿐이다. 또한 최하층 계급의 재산이 줄어들어서도 안 된다.(XIX) 왜냐하면 그렇게 될 경우, 그들의 소비(즉 화폐나 지출을 기준으로 한 총수요)가 감소될 것이며, 이는 다시 생산과 소득을 감소시킬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인플레이션이란 무엇의 반영인가 하는 점이다. 그는 성장의 결과이다. 반대로 디플레이션은, 총수요의 파괴이다. 경기변동에서, 그리고 대공황에서, 다시 대차대조표 불황에서 이는 반복적으로 검증된다.
 
금속주의와 표권주의란 무엇인가. 화폐는 그 상품의 교환가치나 구매력, 즉 화폐를 구성하는 금속의 가치로 환원될 수 있는 물질적 실체를 지녀야만 하는 상품이라는 것이 이론적 금속주의다. 반면, 화폐의 가치는 실질가치가 아니라 국가와 시장이 정한 구매력과 명목가치에 귀속된다는 것이 표권주의다.
 
금속이 갖는 이중적 성격, 상품으로써의 성격과 화폐로써의 성격이 이 구분을 한층 모호하게 한다.
 
"이렇게 해서 수량정리는 다음의 세 가지를 의미한다. 첫째. 수량정리는 화폐적 기능이 화폐로 선택된 상품의 가치에 영항을 미치리라는 사실과 이 기능이 논리적으로 구분되는, 독립적이지는 않지만, 금교환가 치의 원천이라는 사실을 인식했다. ( 물론 우리는 다음 단계를 승인하지 않고도 이것을 인정할 수 있다.) 둘째, 유통 중인 금의 가치를 결정하는 메커니즘은 산업에서의 금 가치나 다른 상품의 가치를 결정하는 메커니즘과 다르다는 사실을 인식했다. 셋째, 수량정리는 그 메커니즘에 대한 특별한 도식(schema)-원시적일 뿐만 아니라 매우 단순한-을 제공해준다. 이렇듯 실제로 단순한 문제가 어렵게 보이는 것은 완전한 금 단일본위제의 경우에, 당연하게도, 두 상이한 매커니즘들이 화폐적영역이나 산업영역에서 동일한 금 가치를 형성해야 한다는 시실에서 비롯된다."
 
여기에 더해서, 화폐의 유통스톡은 유통 속도에 따라 팽창한다. 이 '속도'는 화폐의 고유한 성질로, 다른 생산요소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종류의 것이다.
 
신용이란 무엇이냐. 자본을 낳는 화폐의 흐름이다. 화폐의 고유 속성, 속도란 무엇을 의미할까.
 
"그러나 당연하게도 이것은 옳지 않다. 그 형태나 종류가 어떠하든지 간에. '신용'기능은 화폐체계의 작동에 영항을 미친다. 더욱 중요한 것은 이 기능이 자본주의의 본질적인 부분이 되어서 그것을 제외하면 나머지 부분이 전혀 이해될 수 없을 정도로, 자본주의 원동력(engine)의 작동에 영향을 미친다는 집이다. 이것이 바로 경제학자들이 17세기에 발견하고 18세기에 원성하고자 했던 것이다. 자본주의가 발견된 것도, 우리 식대로 말하자면, 자본주의가 자신을 발견하고 자신을 분석적으로 인식하게 된 것도 바로 이때있다. 그럼 이제부터 이러한 발전이 어떻게 나오게 되었으며, 어디까지 나아가게 되있는지 살퍼보자. 두 방향의 발전이 명확하게 드러난다."
 
그러니까, 이 과정에서 은행은, 신용의 창조자는 어떻게 역할하는가.
 
"따라서 은행가들이 속도를 증가시키는 게 아니라 화폐량을 증가시킨다-거나 일정한 한계 내에서 화폐처럼 기능하는(우리가 화폐라는 용어를 주화 또는 주화나 정부지페에 대해서만 사용하고자 한다면) 여타 지불수단들의 양을 중가시킨다 -고 말하는 편이, 아마도 훨씬 더 자연스러워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이것은 관행에도 정확히 부합되며, 여기서 차입자들은 스스로 정상적인 경우에 화폐 못지않은 유동수단을 추가적으로 얻었다고 느낀다. 은행은 더 이상 '자신의 예금'이나 다른 사람의 돈을 대부한다고 말한 수 없으며, 예금이나 은행권을 '창조'한다고 말해야 한다. 은행은 화폐의 속도를 증가시키거나 예금주를 대리 한다-이는 완전히 비현실적인 생각이다-기보다 화폐를 만드는 것으로 나타난다."
 
"자본이라는 단어는 경제학자들이 사용하기 오래전부터 법률용어이자 사업용어였다. 로마의 법학자와 그 계승자들에게 이 말은 대부업자의 이자나 그밖의 청구권과 구별되는, 대출의 원금을 지칭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사실과 분명히 관련된 것이겠지만, 이후 자본은 동업자들이 회사에 출자한 화폐나 그 등가물의 총합, 즉 기업자산의 총합을 지칭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이 개념은, 실제 화폐나 화폐청구권 또는 화폐로 평가된 재화 중 그 어느 것을 의미하든지 간에, 본질적으로 화폐적인 것이었 다."
 
"튀르고는 이점을 지체하지 않고 포착해서 그에 상응하는 자본이론의 윤곽을 그려냈다. 그는 지연요소 외의 부(richesse mobllère amassée d'avance)가 모든 생산에 필수불가결한 전제조건(Réflexion, LllI)이라고 강조했는데, 이에 대해 후자는 그가 "짓궂을 정도로 되풀이했다고 말하는 정도였다."
 
화폐로부터 가치, 신용, 그리고 자본까지. 관리화폐와 수량화폐, 신용과 화폐의 '창조', 그리고 화폐로써의 자본. 생산의 요소들은 자본으로 결합되며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고, 요소가 확장되며 생산의 새로운 결합은 연속적으로 성장한다. 그리고 이를 다루는 분석의 틀도, 세월속에 잊혀지고 주류에서 밀려났다 다시 등장하며, 읽는 사람의 정리를 통해 흐름 속으로 재초환되며 면면부절하게 이어진다.
 
"1690년에 바본이 자신의 책(Discourse of Trade)에서 다음과 같은 중요한 진술을 법허기 전에는 애매모호한 지적들만 존재했다. "이자는 통상 화폐에 대한 보상으로 평 기된다. (...) 그러나 이것은 오류다. 왜나하면 이자는 스톡에 대해 지불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자는스 독의 지대(the Rent of Stock)이고, 토지의 지대와 동일한 것이다.전자가 가공되었거나 인공적 스톡의 지대라면, 후자는 가공되지 않았거나 자연적 스톡의 지대다." 만약 독자가 19세기의, 심지어 20세기의 처음 40여 년 동안의 이자이론의 역사를 이해하고자 한다면. 이것의 의미를 완전히 이해하는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그리고 이자는 생산적 이윤과 연결된다.
 
"자본가에 의해 공급된 자금(fonds)은 유동자산이나 선대물 의미하며. 이것은 생산에 필수불가결한 조건이다.(LIII) 즉 자본은 생산적 노력과 생산물 사이의 시차를 연결시켜주기 때문에 이자를 낳는다.(IR, X)"
 
고로 자본은 생산의 새로운 결합의 원천이며, 생산적 이윤은 그로부터 출현한다. 화폐가 순환하고 신용이 창조되며 기업가의 지도적 역량이 숙련과 결합하며 시장에서 약동하고, 성장이 탄생한다.
 
나는 아직도 화폐도 신용도 잘 모르겠다. 하지만 생산의 새로운 결합은, 그 사이 어딘가에서 혁신과 경제를 매개하며 창조적 파괴로, 경제의 확산으로, 더 폭발적인 결합으로 연쇄되며 비가역적인 변화를 역사적으로 축적해왔다. 그리고 분석의 역사 역시, 튀르고와 흄과 케네와 캉티용, 부야기유베르... 수많은 학자-관료들의 누적 속에서 전진한다. 읽을수록 왜 우리 교수님이 튀르고를 그렇게 좋아하는지 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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