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식민지기로부터 1980년대까지 한국 경제사를 바라본다는 것은 식민지기의 영향이 어떠했는지, 해방 이후 한국의 성장은 어디에 근원했는지, 한국의 성장은 어떤 요인들에 의해 가능했는지를 밝혀나가는 과정이다. 한국이 겪은 식민지배는 주권의 상실이라는 점에서 다른 국가들과 공통적인 맥락이 있지만, 한국이라는 국가가 지나온 경로는 그 속의 특수성을 구축한다.
일제 강점기 일본유학의 비중은 타국에 비교했을 때 조선의 낮은 자본을 반증하지만, 높은 보통교육률은 강점기에도 불구하고 적극적인 교육에 대한 열망을 보여주고, 그 속애서 설립된 회사들과 전반적인 민생의 발전은 전후 경제를 재건하고 폭발적인 성장으로 나아갈 수 있는 원동력이 된다.
식민지시기 조선인들의 생활은 어떠한가. 신장은 영양상태와 전반적인 복리후생을 단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지표이다. 따라서 신장에 대한 연구는 그간 다각도로 진행되어왔다. 그러나 저마다 모집단의 선정, 그리고 추세적 변화에 대한 해석에 있어 이론이 있다. 해당 부분에서는 행려사망자 남성의 신장변화를 통해 그 경향성을 짚어본다.

- 인구학적 자료들 역시 비슷한 모습을 보여 준다. 1910년대 초부터 1910년까지 식민지 조선의 총인구는 1,600만 명에서 2,400만 명으로 50% 가량 증가했다. 조사망률은 1910-1915년에 34명이던 것이 1910-1945년에는 23명으로 낮아졌다. 남성의 기대수명은 1925-1930년 37.9세에서 1940-1945년 42세로 높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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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무라의 연구는 식민지 지배기 조선인들의 신장이 감소하지 않았다고 분석하고, 길인성, 최성진의 개인수준 자료에 대한 연구는 이를 반박하며 1920년대까지 증가했으나, 이후 감소하는 역U자형 분포를 보인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해당 자료는 모집단의 추세적 통일성이 부족한 문제가 있다. 하여 25-30세 행려사망자 신장분석을 통해 당대의 생활상을 확인한다. 지역별, 신원별, 사망원인별로 1881년으로 1920년 행려사망자 공보를 취합하여 정리한 결과, 신장에 있어서 158.4 cm에서 160.2 cm로 증가가 확인된다.
행려사망자의 계급구성이 변화하여 이와 같은 결과가 나타난 것이 아니냐는 의문에 대해서는, 이들 집단의 모수가 기간 내 큰 변동이 없었음을 통해 변수를 분리할 수 있다. 신원이 확인된 이들과 미확인된 이들, 지역별 분해 경향에서도 동일한 추세는 확인된다. 신장의 증가값이 유의미한 생활의 개선을 보여주지 않는다고 지적할 수는 있겠다. 유전적 신장한계치를 봤을 때, 여전히 반도의 생활이 낙후로부터 크게 진전되지는 않았음을 논할수도 있다. 그러나, 추세적으로 신장은 증가해왔다.
한국 제조업의 기원에 대해 일본 자본에 의한 이식된 근대화, 서북지방 중공업 투자에 의한 중후장대 산업 중심의 국가주도적 개발이라는 프레임은 전통적인 인식의 근간을 이루고있다. 그러나 실제 정책변화는 1931년 흥남질소비료 공장의 생산과 1936년 10월 농공병진 추진에 따라 진행되었고, 이전 시기는 민간의 진출과 자생적 발전을 통한 적정기술 산업화에 가깝다.
- 이와 관련해서 주익종(203)은 1926년부터 1937년까지의 기간 동안 쌀 생산과 제조업에 대한 정부 보조금 규모를 추정하였다. 쌀에 대한 보조금총액은 1926 -1929년에 310만 엔 , 1930-1933년에 470만 엔, 1934-1937년에 240만 엔이었다. 반면 1926년부터 1937년까지 기간 동안 제조업에 대한 보조금은 연 평균 17만 엔에 불과하였다. 이러한 사실들은 1930-1937년 동안의 제조업 투자 급증을 정부가 의도한 정책의 결과라고 설명하는것이 과도한 일반화의 오류를 범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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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1914년으로부터 1937년까지 연평균 공장 생산 증가율은 11%로, 1931-1937년간의 연평균 17%에 비하면 낮은 편이나 결코 무시될만한 수치도 아니다. 식민지기 공업생산은 연속적으로 증가해왔으며, 집중투자 이전의 성장 역시 간과하기 어렵다. 공장 노동생산성 연평균 증가율 역시 1913-1020년 동안 1.0%, 1921-1928년 사이 1.8%, 1929-1937년 동안 4.0%로 증가한다. 이는 초기 산업혁명 단계에서 서구의 생산성 증가율과 다르지 않은 수치이다. 1840-1900년 기간 동안 영국, 프랑스의 연평균 제조업 노동생산성 증가율은 각각 1.4%, 1.0%, 1860-1900년 기간 동안 독일과 벨기에의 연 평균 증가율은 각각 2.0%, 2.1%이다. 일본인 소유 공장 대비 조선인 소유 공장에서의 노동생산성 비율 역시 1910년 중반부터 1920년 후반까지 상승세를 보인다. 이처럼 식민지기 조선인들에 의한 자발적인 사업의 구축과 경영, 생산성 증가의 경험과 근대적 노동관의 구축은 이 인적 자산이 해방 이후 경제성장의 요소 중 하나였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식민지기간 조선의 회사 수 역시 증가일로를 걷는다. 전체 기간을 1910년으로부터 1918년 회사령이 있던 시기와 1919년으로부터 1941년까지 전시경제 체제 이전, 그리고 이후로 구분해보면, 회사령 기간동안 신설회사수는 연평균 15-50, 해산 회사수는 10-20 수준으로, 이후 기간동안은 신설 연 700개, 해산 연 400개로 나타난다. 여기서 특기할만한 점은 남한 지역의 회사 비율이 전기간 약 70%로 일정하게 나타난다는 점이다. 남한의 회사수는 1921년 511개에서 1942년 4,400여개로 8배 증가한다.

왜 식민지기 자생적 근대화 역량에 대한 객관적 검토가 중요한가. 그 원인이 식민지배로 인한 제도의 정비이건, 자생적 역량축적에 의한 적응의 결과이건 이는 해방 이후 남한의 경제발전에 내재적 요인으로 작용한다. 산업화는 기기의 도입만으로 이루어지지 않고, 숙련은 하루아침에 쌓이지 않는다.
해방 후 한국의 근대적 경제성장은 어느 시점애서 아루어졌는가. 전통적 해석은 박정희 정권 이후 1962년부터 수입대체 산업화가 수출주도 산업화로 채질변환하고, 이후 기록적인 성장이 이어졌음을 피력한다. 원조에 의한 종속적 성장 역시 지적된다. 그러나 1950년대로부터 1960년대까지 자료를 면밀하게 검토해보면, 이와 같은 수출주도형 산업화는 원조에 의한 내생적 역량의 축적으로부터 기인함이 확인된다. 해방 이전 식민지기의 산업성장과 해방 이후의 산업성장 사이에는 625라는 거대한 단절이 있었다. 그러나 전후 체제가 정비되고 원조가 정책금융을 제공해주며, 한국의 성장은 궤도에 오르게된다. 산업의 성장은 전력 생산량의 증가와 이 중 산업용 사용량의 증가로도 확인된다.
1954년으로부터 1964년까지, 전체 발전량은 연간 12.9% 상승하고 그중 산업용 발전량은 연간 19.1% 상승한다. 1961년을 기점으로 나누어보아도 산업용 발전량은 1954년으로부터 1960년까지 연간 17.3%, 1961년으로부터 1964년까지 연간 22.2% 상승한다. 인프라의 구축과 산업역량의 축적에 걸리는 시간을 고려해보면, 이와 같은 제조업의 성장은 박정희 정권 단독의 업적이라기보다는 이전부터 축적된 내생적 성장의 연속으로 파악하는 것이 더 정합적이다. 이와 같은 발전이 국제적으로 어느정도의 위상에 있었는지는 1953-1958년 기간동안 UN의 경공업, 중공업 연평균 산업 생산 증가율 산포도에서도 확인된다. 한국의 산업 생산 증가율은 각각 20%로, 산포도의 서유럽국가들은 물론 인도, 파키스탄, 페루, 말레이시아, 남아공과 비견해도 괄목할만한 성장을 보인다.

1950년대의 성장률은 전후 연평균 5.3%로 나타난다. 이후 10%를 넘는 고도성장에 비하면 낮은 감이 있지만, 당대 유사한 수준의 저개잘국들이 겪었던 빈곤의 덪과 비교해보면, 결코 낮은 성장률은 아니다. 이와 같은 성장률에는 1950년대부터 1960년개까지 이어지는 미국으로부터의 원조가 적지 않은 역할을 했지만, 이후 원조 챕터에서도 드러나듯 그 원조의 규모가 성장을 모두 설명해주지는 못한다. 전쟁으로 인한 파괴 역시 빠른 전후 회복을 주도적으로 설명하는 인자는 되지 못한다. 개발경제학의 사례들을 보면, 저개발국의 내전으로부터의 회복은 원조에도 불구하고 많은 경우 유의미한 장기적 성장을 구축하지 못한다. 내생적 동력은, 1950년대의 성장과 이후의 경제발전에서 큰 부분을 차지한다.

도시화율은 이와 같은 산업화를 추동할 수 있었던 한 원인이기도 하다. 1955년으로부터 1966년까지 도시화율은 24.5%에서 33.5%로 증가한다. 인구 10만 이상 도시의 총인구 대비 비율은 19.5%에서 26.9%로 증가하고, 서울과 부산의 비율은 12.2%에서 17.9%로 증가한다. 인구 증가율 역시 도시로의 집중을 보여준다. 동기간 총인구 증가율이 연 2.8%, 10만 이상 도시의 증가율은 연 5.9%, 서울과 부산의 인구증가율은 연 6.5%로 나타난다.
면산업의 발전과 수출로의 변모는 당시 산업의 변화, 연속적 경제성장의 동인을 보여주는 한 예가 된다. 면방업계는 전후 빠르게 산업역량을 복구하여, 1959년에는 내수 수요를 충족하고도 남을 정도의 설비역량을 증설한다. 이에 따라 1955년 수출입품목 사정위원회를 통해 40수 이상의 면사 수입을 금지하고, 적극적으로 해외 진출을 도모하여 1960년 미국으로부터 면 수출에 동의를 받고 해외 시장 진출을 시작한다.
- 아울러 박정희 정부가 도입하거나 실시하였다고 언급되는 주요 수출 촉진 정책 가운데 상당수를 이미 1950년대부터 실시하였다. 195년에 수출보상금을 도입하고 1956년에 수출장려보조금을 마련하였다. 일정수준 이상의 수출을 한 사람에게 수입 권한을 주는 수출입연동제 혹은 수출 실적 링크제는 이미 1951년부터 실시되고 있었다. 수출은 늘리기 위한 보세가공무역 지구는 1960년대에 본격적으로 설립되었지만 이것을 설립하는 방안에 대해서는 1950년대 말부터 논의가 이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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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의 성장이 너 내일부터 수출해 명령한다고 예 수출하겠습니다 하며 뿅 수출물량이 튀어오르지 않는다. 1950년대로부터 1960년대까지 무역추이에서 무역적자의 축소는 1950년대 산업역량의 축적이 수출의 허용과 정부의 정책적 지원과 맞물려 기하급수적으로 성장한 결과이며, 이미 1950년대로부터 계획되어왔던 정책들이 주도적으로 집행된 경로의 누적인 것이다.
- 새로운 해석은 우리나라의 경제 발전에서 산업화와 수출 간의 관계를 새롭게 조명해야 함을 시사한다. 근대 경제 성장을 가능하게 하는 핵심 요소는 산업화인데, 개별 산업의 발전 과정을 들여다보면 내수 시장을 기반으로 성장한 뒤 수출 산업으로 나아가는 방식으로 진화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본장에서 살펴본 면방직 산업뿐 아니라 1980년대의 철강 산업과 자동차 산업, 1990년대의 전자 산업 등 우리나라의 많은 주요 산업들이 이러한 경로불 거쳤다. 이같은 산업의 진화 과정을 도외시한 채 수출 여부 혹은 수출 비중을 기준으로 산업의 성패를 고려하는 것은 실상을 제대로 평가하지 못할 뿐 아니라 잘못된 정책적 개입을 야기할 수 있다.
보다 큰 틀에서 보자면, 우리나라의 산업들은 다양한 경로를 밟아 성장하고 성장 단계에서 수출이 차지하는 역할 역시 상이하였다. 조선 산업처럼 초기단계부터 국내 수요와는 큰 관련 없이 해외 시장을 대상으로 해서 시작된 산업도 있었으며, 면방직, 자동차 등과 같이 내수로부터 수출로 발전한 경우도 있었다. 수출산업단지 등에 기반하여 국내 산업과는 연관성 없이 발전한 분야가 있는 반면, 농산물 관련 산업들처럼 수출로 확장하기보다는 내수 시장을 지향한 산업들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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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의 유기적 발전은 수입대체, 수출주도 양자로 판가름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오늘날의 수출주도 산업의 지주들도 어제의 수입대체를 통한 역량축적 없이 세계시장에서 경쟁할만한 제품이 되기는 어려웠다. 무엇보다 세계시장에서의 수출을 담보할만한 숙련역량의 축적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가공산업으로부터 노동집약적 산업으로, 기술중심적 산업으로의 이관은 각각의 단계에서 요구하는 숙련도 다르고, 품질의 기준도 다르다. 지속적으로 산업 수요에 맞는 인력의 양성과 공급이 폭넓은 교육 저변을 갖춘 다수 대중의 투입 없이는 가능하지 않았다. 이를 일원적으로 판단하기보다는, 개별 산업의 발전경로 각각에 대한 축적과, 산업간 연계가 낳은 상승효과, 그리고 제조업의 군집효과 구축을 통한 선순환과 고도화가 오늘날 발전에서 수행한 역할에 대해 다층적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이와 같은 경제성장에서 해외원조는 어떤 역할을 했을까. 한국의 순 원조 금액은 시기별로 양허성 공공차관에서 차관으로, 그 증여비율에 따라 1945년으로부터 1960년대까지, 그 이후로 1985년부터 수증국으로 타 국가들에 개발원조를 하기 시작하는 순간까지 시기에 따라 다른 성격을 갖는다. 1970년을 기점으로 전기와 후기를 나누어보면, 명목액과 실질액으로 비교해봤을 때 1945년으로부터 1970년까지의 순 ODA가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이후 시기는 조ODA(net ODA)에 비해 순 ODA는 낮은 특성을 보인다. 전후 복구의 시기 원조액은 높은 증여비중을 보였지만, 1960년 이후 이 비중은 점차 낮아져 차관으로 대체된다. 전체 액수에 대해 국제비교로 보면 전체 181개국중 18위로 나타나지만, 이를 인당으로 나누어보면 HPNODA(1인당 5년 평균 ODA의 최대값)순위는 74위로, HGNODA(GDP대비 5년 평균 ODA의 최대값)로 보면 49위로 나타난다. 원조 자체의 총액은 적지 않았으나, 인구, 경제규모에 대비한 원조규모는 평균보다 조금 많은 수준이었다.

박정희 정권의 수출주도정책이 공식적으로 회람되고 공표되는 기구로 수출진흥 확대회의가 있었다. 해당 회의는 거의 매월 개최되며 상공부의 주도하에 진행되었다. 경제기획원은 월간경제동향회의를 통햐 거시경제정책을 조율하고, 상공부는 이 회의를 통해 수출진행현황과 정책사례를 공표하고 의견수렴과 정책 방향 공유를 통해 수출 전반을 지도한다. 확대회의는 실질적인 논의 기능을 수행하기보다는 정부의 정책을 공표하고 이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사전 조율을 통해 의견을 수렴하며 정책에 반영하는 과정을 거친, 일종의 피드백 장치였다.
- 오히려 녹취록은 우리나라의 수출 증대를 가져온 핵심이 보조금 정책이나 수출입 연계 같은 유인 체계나 제도 개선을 적절하게 수행한 점에 있음을, 그리고 이러한 유인 체계의 적절한 작동에 있어서 '확대회의'가 큰 기여들 했음을 시사한다. 정부가 어떤 유인 체계를 도입했을 때, 이것이 적절하게 작동하고 있는지 여부를 점검하는 작업은 매우 중요하다. 아울러 유인 체계가 예상했던 결과를 얻지 못할 경우, 왜 문제가 발생했는지를 파악하고 이것을 수정하는 작업이 수반되어야 한다. 매달 정기적으로 이루어진 '확대회의'에서 보고된 내용들은 비로 이러한 과정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지도록 함으로써 유인 체계 도입과 제도 개선이 현실과 동떨어지지 않고 잘 작동하도록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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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재란 무엇이냐, 자본재와 생산품 사이의 산출물들이다. 강판 벨트 패킹 기소류로부터 엔진 베어링 센서 반도체까지, 제조업에서 소용되는 가치 사슬 전반의 소재부품이 이 영역에 속한다. 한국의 중간재 수입과 수출은 경제성장과 함께 모두 증가해왔다. 이를 거시지표로만 판별한다면, 산업 구성에서 실질적으로 그 위상의 변화를 파악하기 어렵다. 한국의 제조업은 강대국 종속적이라는 명제는 참인가, 가공산업으로부터 산업전반에 이르기까지, 한국이 걸어온 길은 세계 분엊 체제 속에서 어떤 위상의 변화를 겪어왔나. 이와 같은 키워드를 산업별 중간재의 구성 변화로 따라가본다.
- 한편, 종속이론 또는 세계체제론 등에 입각한 연구들은 중간재 생산의 확대를 자본주의적 세계경제 체제의 확대 또는 심화의 맥락에서 이해한다. 선진 자본주의 또는 이 나라들의 초국적 기업들이 지배하는 국제경제 체제하에서 개발도상국들은 부가가치가 낮은 단계의 영역을 담당하게 됨으로써 선진국들 에게 착취를 당하게 되어 정상적인 경제 발전을 수행하지 못하게 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이론에 따르면 중간재의 국제교역을 줄이는 수입대체공업화를 통해 국내에서 생산을 완결하는 경제 구조를 형성하는 것이 바랍직하다는 명제가 도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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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한국은 그 가장 큰 반례이다. 한국의 중간재 수입 증가는 산업의 내적 완결성을 갖추는 과정이었고, 오늘날 이는 원자재에 대한 의존과 중간재 가공 및 수출을 통한 제조업 내부 생태계의 구성을 통해 반박된다. 총생산에서 제조업의 비중은 1980년 이후 50% 내외에서 일정하게 유지된다. 중간재의 수출과 수입 역시 1990년대 이후 각각 60%, 80%내외로 나타난다.

그렇다면 과연 이 과정에서 각 산업들은 어떤 내재적 변화를 겪었나. 1990년, 2000년, 2009년 각각의 년도에 대해 자동차로부터 기계장비제조업, 농림축산업에 이르기까지 업종별로 중간재 수입수출비를 도시한 결과, 자동차에서는 0.25 이하로 나타나던 수입수출비가 0.7, 2.9로 증가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전자기기 제조업 역시 이 비는 0.4에서 1.0, 1.5로 성장한다. 기계장비 제조업은 2.2에서 3.5로 폭증한 후 1.1정도로 하락하고, 화학제품은 0.7, 0.8에서 1.4로 상승한다. 산업에 따라 중간재를 수입하는 입장에서 수출하는 입장으로, 수출하던 입장에서 균형을 이루는 입장으로 각각 변화한다.

즉, 한국 산업은 저마다 고도화의 과정에서 무역상대국간 비중의 변화, 주요하게는 대중교역과 대미교역의 양상변화에 따라 업종별로 부침을 겪었으나, 전반적으로 고도화를 통해 중간재를 단순 수입하는 입장에서 원자재를 수입하고 가공하여 수출하는, 제조업의 핵심 물류체인으로 도약하였음을 간접적으로 보여준다. 이 과정은 중간재에 대한 자체적 생산을 촉구한 산업정책의 결과이며, 동시에 이의 정책적 표현인 관세율의 변화로도 드러난다. 명목보호율과 실효보호율의 차이는 중간재에 매겨진 관세 차이를 최종 제품 관세로 통핮하여 계산한 것으로, 그 차는 중간재에 대한 관세의 비중을 보여준다.

- 명목관세율과 실효보호율의 크기를 비교해 보면 관세 구조의 특성을 유추해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어떤 나라가 그 나라에 수입되는 모든 제품에 20%,의 동일한 관세율을 적용한다면, 모든 제품의 실효보호율은 명목관세율인 20%와 동일할 것이다. 하지만 최종재의 관세는 그대로 둔 채 중간재의 관세를 낮추어 누진 구조를 만들면, 해당 최종재가 누리는 실제 보호 정도, 즉 실효보호율은 명목관세율보다 높아지게 된다. 반대로 중간재에 대한 관세가 최종재보다 높으면 최종재의 실효보호율은 명목관세율보다 낮아진다. 이처럼 실효보호율은 한 나라의 관세 구조가 얼마만큼 이러한 누진 구조를 가지고 있는지 살펴볼 수 있는 지표라고 할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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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중반까지 몀목관세율과 실효관세율의 차이는 크지 않았다. 그러나 이는 이후 벌어지기 시작하여 1980년대에는 최대 30%의 격차를 보여준다. 석유화학등 중공업에 대한 보호가 산업 발달을 촉진하며 자국 중간재의 가치사슬과의 결합을 강화하고, 산업의 내적 완결성을 높이며 세계 경제에서 위상을 제고하게 된 것이다.

한국의 산업은 1970년대 초까지 중간재수입과 가공산업 중심의 종속적 구조로부터 이후 정책적 견인과 수출을 통한 성장 속애서 하도급 생산을 통한 최종재 수출의 구조로, 이후 1990년대 중반부터 다시 산업 고도화를 통햐 제조업의 내적 완결성을 높여가며 원자재를 수입하고 이를 가공하여 수출하는 오늘날의 형태로 변환되었다. 그 과정은 수입대체와 수출주도의 혼합으로, 산업의 육성과 고도화라는 대전제속에 진행되었으며, 오늘날 한국의 제조업은 내적 완결성을 갖춘, 수위의 제조업 국가로 부상하였다.
오늘날까지 한국의 국가전략은 제조업을 중심으로 보호와 적극적 육성을 통해 산업의 내재적 역량을 갖추고 수출시장에서 경쟁하며 가치 사슬을 내재화하는, 산업국가로써의 면모를 보였다. 이는 2000년대까지 유효한 성장전략으로 제조업 고도화에 기여했으나, 전반적으로 부진한 서비스업은 산업 다각화의 걸림돌이 되어왔다. 세계화와 자동화가 서비스업, 정보산업의 시대를 개척했고, 적절한 이행정책은 이 분야에서 어느정도 자체 역량의 축적으로 이어졌지만, 본래적으로 서비스업은 이전과 같은 정책적 드라이브로 육성할 수 없는 종류의 산업이다.
그 자발성을 추동하기 위해 숙련 축적에 기여하고 성장에 대한 인센티브를 줄 수는 있어도, 국가주도적으로 자본투자를 통해 난관을 돌파했던 기존의 산업정책적 접근으로는 원하는 목표를 이루기 난망하다. 더하여, 이를 위해서도 단위 제조업 클러스터 규모의 유지와 가치사슬 전반에 대한 내재화의 지속이 필요하다. 결국 서비스업, 정보산업이란 자국의 제조업 역량으로부터 발원하는 것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리저널 금융, 제조 허브로써 도시를 구축하고, 그 속에서 일할 숙련 인력을 양성하며 꾸준히 생태계를 조성하고, 법제도적 개혁을 통해 성장을 촉진하는 것이 오늘날 서비스업, 정보산업의 성장을 위해 요구된다.
식민지기와 이후의 산업발전에 대해 개괄적으로 정리하며 산업연쇄를 기준으로 중간재를 통해 한국의 산업발달을 전체적으로 조망할 수 있었다. 특히 근대적 성장의 기점을 전후로 잡고, 1950년대와 이후의 연속성을 규명하는 부분이 인상깊었음. 수출확대회의나 명목보호율과 실효보호율의 비교를 통한 실질적인 정책 드라이브가 제조업 고도화에 끼친 영향, 특히 한국 제조업의 내적 완결성에 대한 수치적, 역사적 분석이 돋보인다. 여전히 과제들도 산적해있고, 시대는 다시 블록화로 회귀하고 있지만, 산 목숨이 죽으란 법 없다. 주어진 조건 속에, 최선을 찾아 경주할 수 있을까. 다 오늘날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손에 달린 일이다. 과거를 돌아보는 일은, 미래를 향한 지침을 얻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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